▲ 곽승국 자연과사람들 대표
논은 우리 민족에게 삶의 원천이었다. 매일 먹는 쌀은 논에서 나왔으며 모든 가치와 기준은 논에서 비롯되었다. 논과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함께하는 한 몸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논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가고 있다. 논농사는 돈도 안 되고 힘들기만 하다. 논은 땅으로서의 가치도 낮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논을 메워 공장이나 도시를 만들기를 바라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곳이 그렇게 되고 있다. 김해도 예외는 아니다. 넓디 넓던 김해평야가 이제는 절반 이상 줄어 평야라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천대받고 있는 '논'이 과연 식량을 생산하는 일만 하는 것일까? 좀 더 하나하나 따져보며 논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보자.
 
논의 첫 번째 역할은 댐이다. 논은 대개 바닥에서 10~20㎝ 가량 물을 담는다. 일본의 경우 논에 저수된 물의 양이 약 36억t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댐인 소양강댐의 최대 저수량이 26억t 정도이니 엄청난 양이다. 논은 물을 저장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하천의 유지용수를 공급해주고 지하수를 함양시키며 토양 침식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는 물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역할이다. 특히 녹조를 일으키거나 토양을 산성화시키는 질소를 매우 잘 제거한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고도처리정수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세 번째는 기후를 조절하는 역할이다. 물이 없는 땅은 쉽게 가열되고 쉽게 식으며 매우 건조해진다. 논이 있는 곳은 주변보다 1~2℃ 온도가 낮다. 논은 대기에 수분을 공급해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게 한다. 논이 없다면 큰 일교차와 건조함을 느끼게 된다. 논이 없는 도시가 그렇다. 벼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온실가스의 농도를 낮춰주기도 한다.
 
이런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 2008년 제10차 람사르 당사국 총회에서는 논을 습지로 인정했다. 그 가치 중 하나는 바로 생명의 서식처라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논에 사는 생물을 수십 년 동안 모니터링했더니 무려 6천800여 종이 살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김해에서도 지난 수 년 동안 조사를 했는데 200여 종의 저서생물이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름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수많은 새들이 논을 휴식처로 삼는다. 김해에서도 기러기나 오리 류, 비둘기 류, 참새 류 등이 논을 매우 잘 이용한다.
 
또 논은 자연교육과 체험 장소로서의 역할도 한다. 도시의 아이들은 자연에 대한 감성이 결핍된 상태로 자라고 있다. 아이들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편안함, 다양함 등을 직접 느끼지 못하면 생명과 환경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없다. 논은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환경 및 생명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논의 부가적인 기능과 역할은 이처럼 엄청나다. 이런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친환경 농업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논은 이런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한다. 김해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귀향한 이후 오리농법, 우렁이농법이 시작되면서 친환경농업이 확대되었다. 화포천습지를 중심으로 봉하뜰은 8년, 퇴래뜰은 4년이 넘었다. 면적도 165만㎡(50만 평)에 이른다. 친환경 논농사가 이뤄지자 주변이 모두 바뀌었다. 물을 댄 논에는 물고기, 수서곤충들이 지천이다. 여름밤에 반딧불이를 볼 수 있으며, 개구리 소리도 우렁차다. 겨울이면 수천 마리의 철새가 찾아 와 먹이를 먹고 쉰다. 심지어는 멀리 일본에서 황새도 찾아왔다. 먹이가 아주 풍부해야 살 수 있는 황새가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을 놔두고 화포천습지 인근에서 1년이나 살았다는 것은 바로 친환경 논농사 덕분이다.
 
이제 논을 단지 식량을 생산하는 곳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논을 건강하게 지킴으로써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게 하고, 농민들을 잘 살 수 있게 하고, 우리의 아이들도 지켜내고, 자연을 살릴 수 있다. 논은 지구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논은 우리의 미래이며 우리에게 남아있는 자연의 마지막 보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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