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작가회의 소속 시인 47명
철길구간 보존 염원 담은 사화집 펴내

동해남부선,
이곳은 당신 구간

강영환 외 지음
전망 펴냄
110쪽/8000원

"그러니까 이곳은 폐선이 아니라 '당신 구간'으로 개통된 길/ 그러니까 이 곳은 경쟁을 접어두고 혼자 걸어도 안전한 길."

이민아 시인이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의 길이 남아있기를 바라며 쓴 시 '그러니까 이곳은, 동해남부선 당신 구간'의 첫 구절이다.

동해남부선은 부산 부산진구와 경북 포항 사이를 잇는 철로이다. 현재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사업이 진행 중이라 사업이 끝나면 더이상 기차가 달리지 않는 폐선 부지가 발생한다. 그 중에서도 해운대 미포와 옛 송정역을 잇는 철로 4.8㎞는 바다와 접하여 천혜의 풍경을 자아내는 공간이다. 이 폐선 부지를 둘러싸고 보존과 개발의 논리가 충돌했다. 그런 가운데 부산작가회의 소속 시인 47명이 철길구간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달라는 강렬한 염원을 담아 사화집 <동해 남부선, 이곳은 당신 구간>을 발간했다. 페이지를 넘기면 녹슨 철로, 기차에서 보던 바다, 철로를 걷는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차창 밖 풍경처럼 펼쳐진다. 동해남부선, 그리고 그 위를 달리던 기차에는 어떤 역사와 추억이 흐르는 것일까.

김점미 시인의 시 '單線(단선)으로 오는 사랑'은 기차를 타던 설렘을 다시 떠올려준다. "출렁이는 설렘으로 올라탔던 동해남부선 완행열차 개나리 어지럽던 차창 밖으로 칙칙 폭폭 밀려오던 파란 바다, 와, 와아~ 파도타기에 열중이던 어린 목소리들 덜컹거리는 기억은 선로를 빠져나가도 계속되었지."

이 시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 이어 청춘의 열정도 담았다. "한 번은 이쪽에서 또 한 번은 저쪽에서 들끓던 청춘, 서로가 서로에게 마주칠 수 없었던 애끓는 가슴. 해풍에 삭히며 부산에서 포항까지 왔다가 갔다가 반세기 너머로 꿈으로 미래로 쭉 뻗어주었지."

김요아킴 시인은 '삼포를 지나며'에서 한 할머니의 삶과 함께 한 동해남부선을 노래한다. "구덕포를 지나 귀향하는 낡은 열차엔/ 새벽녘에 흩어놓은 체취가 창가로 맴돈다/ 풋풋하게 흙 묻은 쪽파와/ 막 건져 올린 미역들, 서둘러/ 부전시장 좌판으로 상봉을 시도했고/ 남겨놓은 몇 줌의 햇살과 해풍은/ 다가올 어둠을 수소문하고 있다."

▲ 해운대 미포와 엣 송정역을 잇는 동해남부선 4.8km. 이 구간은 천혜의 풍경을 자아내는 공간이다.

박정애 시인은 '동해남부선 철로 위에서면'에서 더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로의 운명을 읊었다. "푸른 파도 이끌고 오르내리기 팔십 평생/ 굽어 휘어진 허리론 더는 달릴 수 없어/ 목침 베개에 두 다리 길게 뻗고/ 솔바람 파도소리 위에 누웠는데/ 언제나 돌아누운 등 서럽고 애틋하여/ 부지할 명목을 잃고 옆구리 들이친 바다가/ 생사경계를 긋듯 수평을 잡고 귀엣말 한다."

상업적 논리를 내세워 폐선 부지를 개발하자는 목소리에 맞서는 이 시집 한 권의 목소리는 얼마나 큰 힘을 가질까 하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 이 시집에 담긴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철길 하나에 이만한 시가 바쳐진 적이 또 있었던가 하는 생각도 하면 좋겠다. 족히 한 세기동안 기차가 바닷가 철로를 달렸고, 이제 사람들이 그 길을 걷겠다는 마음을 읽는 것이 먼저이다.

시집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김해에도 경전선 옛 진영역사 일대가 있다. 김해의 예술인들도 진영역을 오가던 기차와 사람들, 주변 풍경을 기억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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