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민주 김해문인협회 회장·인제대 행정실장
천명에는 대략 세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첫째는 하늘로부터 받은 목숨이고, 둘째는 타고난 운명이며, 셋째는 하늘의 명령이다. 이 뜻을 두고 볼 때 두루 사람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하늘로부터 받은 목숨이라고 했을 때 죽음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죽음은 삶에서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부분으로, 어떻게 아름답게 살다가 죽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삶에서 후회하지 않을 죽음을 하나하나 준비해야 된다. 후회 없이 죽을 때 우리는 천명을 누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할 수 있다. 천명을 누리고 눈을 감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천명이 타고난 운명일 때에는 두 가지 길이 생긴다. 천명을 따르는 길과 거스르는 길이다. 만사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던가! 따르든 거스르든 결정된 마음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 요즘같이 힘든 일이 곰비임비 일어날 때 "이게 내 운명이야" 하고 천명으로 받아들여 열심히 이겨낼 때와 "이건 내 운명이 아니야" 하면서 천명을 거스르며 도전정신으로 이겨낼 때를 두고 봤을 때 이겨낸다는 점에서 결과는 같다. 이런 의미에서 '천명'이란 말은 인간에게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하늘의 명령이라는 뜻이다. 이 경우는 직업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직업에서 사람들은 '천직'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천직은 하늘이 내린 업(業)으로 하는 일이 적성에 잘 맞아 "내 길이다" 하고 주어진 길을 갈 때이다. 이는 하늘의 명령에 순응하는 일로 문학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고자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로 시인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쓴 시이다. 진로를 고민하며 시인은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하는데 과연 주어진 길은 무엇이었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본다는 것은 하늘을 숭배한다는 뜻이다. 유교에서는 천명사상(天命思想)으로 나타나는데 쉽게 말하자면 하늘로부터 받은 목숨으로 하늘의 명령에 따라 삶을 사는 일이다.
 
윤동주 시인은 처음부터 시인이 되길 원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의사가 되길 원했기 때문에 부자간의 갈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에 시인의 할아버지가 중재하여 윤동주 시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시인이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업으로 시인의 삶을 살아 주어진 길을 간 것으로 보인다. 윤동주 시인의 마지막 작품 '쉽게 씌어진 시'에서는 '천명'이라는 말이 직접 언급되어 짐작할 수 있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줄임)/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줄임)/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천명으로 시인의 꿈을 이루어 시는 쉽게 써지는데 일제 하 남의 나라에서 나라 잃음을 부끄러워하며 자신이 자신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시인으로서 최초의 악수를 하게 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시인 윤동주지묘'. 이것은 윤동주 시인의 묘비명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천명에 따른 것으로 그 뜻하는 바가 크게 나타난다.
 
우리는 천명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길이 무엇인지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천명은 자신의 묘비명에 무엇을 새길 것인가를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천명의 세 가지 뜻에서 보았듯이 천명을 떠난 사람의 삶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어렵고 힘들 때는 슬쩍 천명에 기대어 봄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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