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

<우리 읍내>를 다섯 번 만났다. 맨 처음은 배우로, 또 한 번은 성신여대 영문과 원어 작품 지도로, 나머지 세 번은 연출로 만났다. 그 중에서 배우로 만났던 <우리 읍내>가 가장 가슴에 오래 남아 있다.
 
3막으로 구성된 <우리 읍내>는 일생을 아침, 한낮, 저녁의 하루로 축소시켜 보여준다.
 
1막 아침에서는 이웃집 마을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삶의 탄생을, 2막 한낮에서는 일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사랑과 결혼을, 3막 저녁은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연극은 아무런 무대장치가 없이 텅 빈 무대로 시작한다. 그리고 관객 개개인이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산을, 마을을, 집을, 식탁을 상상하여 끄집어내게 한다. 관객들에게 무엇보다 당신이 머물렀던 기억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하는 것이다.
 
망자가 된 여주인공 에밀리는 단 하루 살아 있던 시절로 돌아갈 기회를 얻게 된다. 자신의 열두 번째 생일을 택한 여주인공은 주어진 단 하루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무덤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이 대사를 내뱉는다.
 
"몰랐어요. 모두가 그렇게 지나가는데, 난 그걸 몰랐던 거예요. 이제 그만 데려다 주세요, 산마루 무덤으로요. 아, 잠깐만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고요. 안녕, 대지. 안녕, 우리 읍내도 잘 있어. 엄마 아빠, 안녕히 계세요. 째각거리는 시계도, 해바라기도 잘 있어. 맛있는 음식과 커피도, 새 옷과 따뜻한 목욕탕도, 잠자고 깨는 것도. 아, 너무나 아름다워 그 진가를 아무도 모르는 것일까?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일분일초의 소중함을 깨달을까요?"
 
이 대사가 영화판에서 전전긍긍하던 나를 연극판으로 끌어 들였다. 이 대사를 읽으며 지나고 나면 싹 다 없던 일이 되는 찰나 같은 인생에서 일상의 일분일초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지난 일들은 수백, 수만 번 떠올려도 아련하다.
 
죽고 나서 삶의 가치를 깨닫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올 겨울에는 <우리 읍내>와 여섯 번째의 만남을 시도해 보아야겠다.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 서울에서 연극을 하다가 고향 김해로 돌아와 극단 번작이와 가인소극장을 운영하고,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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