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열기와 소음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린 '한 편의 시'


장현정 글·그림
반달/40쪽
1만 3000원

어느 시인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소리'를 녹음한다 했다. 하루 종일 휴대전화 녹음 기능을 켠 채 걷다보면, 낡은 연립주택에서 들려오는 리코더 연주나 버스 뒷좌석에서 나지막히 부르는 낯선 언어의 자장가가 기기에 담긴다 했다. 녹취를 푸는 과정이 여행기이자 시가 된다 했다.
 
한 편의 시를 닮아 있는 그림책 <맴>을 소개한다. 짧고 아련한 봄이 어슴푸레 옅어지는 무렵부터 여름의 기운이 슬며시 비치다가 스리슬쩍 한여름 절정의 순간을 지나 얌전히 더위가 한 풀 꺾이기까지 순환과 흐름의 '소리'를 담아 '그림'으로 펼쳐 보이는 공감각적인 책이다. 
 
표지에서부터 나무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소리 끝에 묻어 있는 짧지만 분명한 소리 '맴'! 이번 여름 처음 듣는 매미 소리에 귀를 쫑긋하게 되는 순간이다. 면지를 넘기면 얇고 여린 분홍빛 진달래 꽃이 하나 떨어져 있다. 봄의 흔적으로부터 한 장을 지나면 세상에 나와 처음 우는 것 같은, 아직은 연약한 '맴'이 들려온다. 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시험방송을 하듯 조심스레 소리를 내어보는 어린 매미들의 '맴'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한 나무만 해도 가지가지에 붙은 여러 마리의 매미. 그런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모여 이루는 숲에는 모든 여리고 부드러운 것들이 겹치고 스쳐, 현이 얇은 악기를 세심하게 다룰 때의 합주가 들려오는 것 같다. 매미와 나무와 바람이 서로를 품으며 점점 더 볼륨이 높아질 때, 이제 숲의 소리는 회색빛 도시로 건너간다. 아스팔트도 녹여버릴 것 같은 덥고 뜨거운 도시의 열기와 소음에 섞여, 여름이 그저 짜증나고 정신없고 지치기만 하는 사람들에겐 다소 심드렁하게 수신된다. 더 이상 참기 힘든 폭발 직전 최절정 더위에 다다른 순간, 잠깐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비가 시작된다. 덕분에 더위는 씻겨 내려가고 허물처럼 남은 '맴'이 보인다. 온 힘을 다해 울고 전소한 상처딱지 같기도 한 마지막 '맴'에는 편지같은 작가의 말이 담겨 있다.
 

남을 해치지 않는 매미, 나무의 수액만 빨아 먹는 온순한 매미를 좋아했던 장현정 작가는 자유를 얻은 이가 기쁨에 겨워 지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삶을 마쳐야 하는 이의 마지막 몸부림 같기도 한 매미 소리를 들으며 오랜 시간 어두운 땅속에 있다 세상 밖으로 나와 겨우 몇 주만 살다 갈 시간만 주어졌으니, 자신이라도, 세상 사람 누구라도 그렇게 목청껏 소리를 질렀을 것이라고 헤아린다. 자연이 주는 설렘과 떨림, 고요와 평화,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고스란히 담아낸 작가의 첫 책 <맴>은 "여름을 더 여름답게 하는 매미에게" 바치는 작품이다. 강렬한 색의 대비와 향연을 선보이며 작가의 바람처럼 '시원하면서도 뜨거운 책'이 되었다.
 
혹시라도 여전히 '그림책'을 유아용 책으로 오해하는 이가 있다면 꼭 권하고 싶다. 표지와 면지에서부터 시작해 열여섯 페이지 안팎의 컷으로 압축적이고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시각적인 경험은 글과 그림의 화학적 조합이 가능한 그림책 장르이기에 가능하다. 판형과 종이, 폰트와 여백 하나하나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각기 다른 볼륨과 질감의 '맴'을 캘리그라피처럼 표현해 생생하고 풍부하게 매미소리를 전한 것도, 제목이 '매미'가 아닌 '맴'인 것도 유연하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 탁월하다.
 




김은엽 
화정글샘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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