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글
김진환 그림
웃는돌고래
172쪽/1만3000원

시대별 대사건 휘말려 고통받는 가족
친일파 문제 등 과거사 청산 되짚어야

<수난 사대>라는 제목 앞에서 하근찬의 <수난 이대>를 떠올렸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단편소설에 조예가 깊어서라기보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의 국어 교과서에 실린 <수난 이대>를 아들과 함께 소리 내어 읽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낭독은 우리 모자의 시험공부 방법이다.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가 팔 하나를 잃은 박만도 씨와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다리 하나를 잃은 아들 진수 씨의 이야기가 <수난 이대>의 줄거리다. '이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을 잘못 만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이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더라면 나았을 낀데….' 만도와 진수 씨 부자의 가슴 속 말이 잊히지 않는다.
 
윤정모의 <수난 사대>에는 일제 강점기 때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끌려갔던 증조할아버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월남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 유전된 고엽제 때문에 성장이 멈춰 버린 난쟁이 아버지, 급식비조차 제때 내지 못하는 15세 소년 진기가 등장한다. 부인의 가출 후 자살해 버린 아버지. 이제 진기에게 남은 건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뿐이다.
 
할아버지의 급식비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던 진기의 노력은 꼬이고 꼬여 학교 폭력으로 오해를 받는다. 1주일 정학 처분을 받고 할아버지와 창원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 탄 진기는 할아버지가 건넨 얇은 책 한 권을 읽게 된다.
 
증조할아버지의 수기였다. 일본군에 끌려가기 전에 후손을 보기 위해(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서둘렀던 혼사, 군함을 타고 도착한 태평양 뜨거운 섬에서의 전쟁, 그곳에서 만난 순영이라는 어린 소녀. 그 인연이 이어져 지금 창원으로 만나러 가는 중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35년간의 일제 강점기와 1945년 8월의 광복, 1950년 6·25전쟁과 1960년대 베트남 파병. 그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 모습까지 겹쳐 보이는 책이다.
 
일제 강점기 말 학도병으로 징집된 4천500여 명 중 고관대작과 친일파의 자손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인사청문회가 떠올랐다. 지도층 인사들의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는 본인과 자녀의 병역 문제. 그들은 왜 그토록 군대에 가지 않으려 했을까. 훈장이나 위인전 한 귀퉁이에서 박제가 되고 있는 독립 운동가와 그 후손들에 비해 지금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 친일파 일족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엄마! 신격호라는 사람 알아요?" "모르겠는데. 왜?" "시게미쓰 다케오라는 일본 이름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고 대기업 창립 총수라는데요." "시게미? 뭐라고?" "엄마! 윤봉길 의사가 1932년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 던진 건 알죠? 그 폭탄에 다리 한쪽을 절단한 사람이 시게미쓰 마모루." "아까 한국 사람이라고 했잖아" "아니. 내 이야기를 더 들어봐요. 1945년 시게미쓰 마모루가 윤봉길에게 잃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항복 문서에 서명해요. 그런데 신격호라는 한국인이 이런 시게미쓰 마모루의 혈족과 결혼한 후에 시게미쓰 다케오라는 일본 이름을 가졌다는 이야기예요."
 
한겨레신문의 칼럼을 읽은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의 설명이었다. 아들은 역사에 관심이 많아 수능의 사탐과목도 한국사를 선택했다. 윤봉길의 폭탄에 목숨을 잃었던 '시라카와 요시노리'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백선엽이 일제 강점기 때 창씨개명한 이름이 바로 '시라카와 요시노리'였단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친일 인명사전 하나 펴내는 일에도 숱한 반목과 질시를 겪어야 했던 우리가 새겨야 할 말이다. 벌써 8월이다.


김해뉴스

어영수
북스타트 코리아 상임위원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