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인 4세 장 알브티나 씨가 '나 어가녁'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1937년 연해주 한인 중앙아시아로 추방 때
증조부·가족들도 '고난의 열차' 탑승
우즈벡 정착 후 고려인 식당 차려
김치·된장찌개 등 먹으며 우리 문화 지켜

장 씨, 4년 전 서상동에 '나 어가녁' 문 열어
식초·간장 육수에 민물생선으로 고명
돼지내장·부산물과 밥 섞은 순대 '별미'

온 세상을 삶아 버릴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일 서상동의 러시아 식당 '나 어가녁'. 점심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하나 둘 음식점으로 들어온다. 겉모습만 보면 내국인과 다름없는 손님들은 러시아어로 적힌 메뉴를 찬찬히 살피더니 자연스럽게 러시아어로 주문을 한다. 이들은 김해에 정착한 고려인 4, 5세대 들이다.
 
식당 주인 장 알브티나(47·여) 씨가 손님들 앞에 음식을 내놓는다. 푸근한 인상을 가진 장 씨는 러시아 국적을 가진 고려인 4세다. 하얀 그릇에는 돌돌 말린 소면과 양배추, 고기, 지단, 토마토 등이 담겨 있다. 얼핏 보기에 국수와 똑같은 이 음식은 고려인의 역사와 한이 담긴 '국시'다. 고려인들 사이에서 여름철 별미로 통하는 이 음식에는 고려인의 이주 역사가 담겨 있다.
 
1937년 8월 21일 옛소련 공산당의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은 블라디보스토크 등 연해주 지역에 살던 한인들에게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이주하라고 명령한다. 한인들이 일본 간첩행위를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게 이유였다. 명령서가 떨어진 지 불과 열흘만인 9월 1일부터 연해주 지역 한인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
 
강제 이주가 시작되던 날 고려인들은 블라디보스토크의 기차역으로 몰려 들었다. 보채는 아이를 등에 업고 가슴에는 보따리 짐을 꽉 움켜진 한인들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기차역에서는 눈을 부릅뜬 러시아 경찰들이 한인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 직접 만든 국시를 보여주는 장 알브티나 씨.
열차는 50여 개의 화물칸으로 구성됐다. 출입문만 있을 뿐 창문은 찾아볼 수 없는 열차였다. 아늑했던 보금자리와 여물어가는 벼 이삭을 뒤로 한 채 한인 17만 명은 한 달 동안 열차를 타고 달렸다. 화물칸 안은 비좁고 더럽고 더웠다고 한다. 무려 1만 여 명이 열차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마침내 도착한 곳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6천㎞ 떨어진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였다. 열차에는 장 씨의 증조할아버지와 가족들도 있었다. 이들은 우즈베키스탄으로 갔다. 이후 증조할아버지는 돈을 벌겠다며 미국으로 간 뒤 소식이 끊겼다. 홀로 남은 증조할머니는 우즈베키스탄의 척박한 황무지를 일구며 다시 삶의 터전을 꾸렸다. 장 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다. "식탁에는 매번 된장찌개와 밥이 올라 왔습니다. 두부, 배고자(만두), 짐치(김치) 등을 먹으며 자랐지요. 사는 곳은 우즈베키스탄이었지만 고려인들은 우리들만의 문화를 지켜 나갔습니다."
 
장 씨가 7세 되던 해 그의 가족은 러시아의 스탈린그라드(현재 볼가그라드)로 이사를 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를 기다린 건 언어 장벽이었다. "학교에 입학했는데 모두 러시아어만 쓰는 겁니다. 말을 알아들을 수없어서 어린 나이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 저를 보고 부모는 집에서도 러시아어를 쓰기 시작했답니다."
 
그 때부터 장 씨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한국어는 러시아어로 바뀌어 갔다. 그는 고려인이 아니라 러시아인으로 변해 갔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입맛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러시아 기숙학교에 다니던 시절, 주말마다 집에 다녀올 때면 그의 양 손에는 김치와 각종 반찬이 들려 있었다. 그가 집에 가지 못하는 날에는 우편으로 김치가 배송됐다. "저도 김치를 좋아했지만 기숙학교의 러시아 교사도 참 좋아했습니다."
 
고려인들이 정착한 이후 육류 중심이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음식 문화는 조금씩 바뀌었다. 우즈베키스탄 수도인 타슈켄트 곳곳에는 고려인 식당도 생겨났다. 고려인 음식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 됐다. 식품 매장에는 당근에 식초, 소금, 고춧가루를 넣고 무친 마르코프자와 오징어회, 생선회 등 고려인들이 즐겨 먹는 반찬들이 진열됐다.
 
▲ 돼지 내장에 쌀, 돼지 부산물을 넣어 만든 순대와 우즈베키스탄의 여름 별미인 국시
이런 음식들 가운데 하나가 국시다. 한국의 잔치국수 비슷한 면에 식초, 간장으로 맛을 낸 시원한 육수를 붓고 양배추, 토마토, 오이, 계란 지단, 고기 등을 넣어 먹는 음식이다. 국시는 우즈베키스탄의 냉면으로 통한다. 차가운 국시는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여름철에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장 씨는 7년 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 경기도 안산에 살던 중 역시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김 빅토르(42) 씨를 만나 결혼했다. 그러다 '김해가 살기 좋다'는 김 씨 사촌형의 권유에 따라 4년 전 김해에 내려왔다. 장 씨는 20대 때 언니에게서 배운 요리 실력으로 서상동에 '나 어가녁'을 차렸다. "대학교를 중퇴한 뒤 요리학원에서 요리를 배웠어요. 결혼한 언니를 졸라 고려인 음식을 하나 둘 배웠죠. 김해에 오니 동상동과 서상동에 우즈베키스탄 식당이 하나 밖에 없더라고요. 언니에게 배운 요리 실력을 믿고 러시아 음식점을 차렸어요."
 
'나 어가녁'에서는 국시부터 회, 배고자(만두), 순대, 가자(개장) 등 다양한 고려인 음식을 판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만드는 법과 맛은 확연히 다르다. 국시 육수는 식초와 간장만으로 만든다.
 
회는 바다가 없는 중앙아시아의 지리적 특성 때문에 민물생선을 이용한다. 생선을 식초, 소금물에 한 시간 정도 담가 숙성시킨 뒤 고춧가루, 마늘, 양파 등 양념에 무쳐 낸다. 이런 방식으로 재료만 바꿔 소고기회, 버섯회, 닭똥집회 등을 만들어 먹는다.
 
순대는 돼지 내장에 피와 당면을 섞어 만드는 한국과 많이 다르다. 고려인의 순대는 돼지 내장에 쌀과 돼지의 각종 부산물을 섞어 찐다. 가자는 보신탕과 비슷한 음식이다.
 
고려인 음식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1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달라진 문화 때문이다. 장 씨는 "한국에서 고려인으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문화 차이였다. 러시아인은 '좋다', '싫다'를 분명하게 말하는 반면 한국인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솔직한 저의 사고방식과 말 때문에 한국에서 크고 작은 오해로 다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상들이 살았던 한국에 돌아온 고려인들은 대부분 낯선 문화에 적응하기가 힘들다. 지난해는 고려인 이주 150주년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고려인들이 좀 더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이 보듬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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