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 납치사건
김고은 글·그림
책읽는곰/40쪽
1만 2000원

어린이·어른 함께 즐길 수 있는 동화
가족 찾은 '평화의 바다'서 여유 만끽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특권이 아니라 누구든 어디서든 누릴 권리가 있건만 우리는 언제나 그림의 떡 보듯이 군침만 삼켜야 한다. 해도 좋을 이유보다 그 특권을 누릴 수 없는 이유들이 더 많이 우리네 몸과 마음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일탈을 꿈꾸지만, 가슴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걱정과 두려움은 일탈의 자유가 고개를 들 때마다 매서운 눈초리로 경계를 하곤 한다. 그럴 때 누군가가 나를 일탈의 세계로 데려다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가는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보게 되는 일탈에의 상상을 책속에 펼쳐놓았다. 유쾌하고 통쾌하고 시원한 판타지 세계이다.
 
<우리 가족 납치 사건>은 어린이책이면서 동시에 어른에게도 잠시 쉴 수 있는 여가를 주는 책이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고픈 소망을 담아낸 사건(?)이어서 보기만 해도 한번 웃을 수 있는 환타지 그림책이다.
 

아빠는 일상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한 전철을 타려다가 가방에 의해 사라지고 만다. 가방에게 애걸복걸 해 보지만 가방은 들은 체 만 체 열차소리 속으로 아빠를 삼켜 버리고 만다. 잠깐 동안이지만 단잠을 잤다고 생각했는데, 어딘가에서 가방은 '왝'하고 아빠를 토해 냈다. 거기는 바로 아무도 없는 바닷가! 보는 사람도 없고, 일을 시키는 사람도 없고, 다그치는 사람도 없고, 옷을 홀라당 벗어도 뭐라 할 사람 없는 드넓은 바다였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듯 바쁜 엄마는 힘들고 지친 걱정, 근심, 모든 일상과 함께 치마폭에 꼭꼭 싸여진 채 또 어디론가 이끌려 간다. 도착해 보니 아빠가 있는 평화의 바다! 엄마는 걱정, 근심 모두 잊고 신나게 놀아 보기로 한다.
 
엄마 아빠 못지않게 어려운 수학 문제로 머릿속이 바쁘고 복잡한 주인공 전진해. 알쏭달쏭 숫자랑 기호로 꽉 들어 찬 머리가 풍선처럼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어느 순간 숫자바람이 머릿속에서 빠져 나가기 시작한다. 엄청난 속도로 빠져나간 숫자바람은 진해를 엄마 아빠가 있는 평화의 바다로 데려가 준다. 진해의 머릿속은 숫자랑 기호가 모두 사라지고 신나는 생각들로 반짝인다.
 
아빠 가방은 아빠를 대신하여 먹거리를 구해 오고, 엄마치마는 맛있는 과일과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 준다. 진해네 가족은 회사, 집, 학교를 다 잊고 신나는 시간을 보낸다. 큰일이 생길 줄 알았던 회사나 집, 학교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원래 그대로 그 자리에서 별일이 없었다.
 
작가의 유쾌하고 발랄한 기지가 돋보이는 이 책은 다소 엉뚱한 듯 하면서도 거침없는 표현이 통쾌함을 자아낸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보면, 그림의 역동성이 눈을 치켜뜨게 만드는 놀라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어른의 눈높이에서 보면,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와 놀아 주지 못한 그 많은 날들을 부끄럽게 한다. 그래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아마도 여름 더위가 시원하게 날아갈 것이다.
 
미화하지 않고 아이들의 심성을 척척 그려 낸 우리 가족의 표정은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하다. 읽지 않고 보기만 해도 마음 한 켠이 시원해진다. 책을 통해 무언가 얻으려 하기 보다는 아이에게는 즐거운 위안을, 함께 보는 어른에게는 바쁜 일상에 잠시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하는 책을 권한다. 찜통더위 속에서 시원하게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여행지의 초대권 같은 책으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 한다.


김해뉴스

임홍자
영운초등학교 전담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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