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가구 밖에 안 되는 산골마을
대부분 지하수 이용하며 식수 해결
구제역 파동 이후 수도시설 들어와

3년 전 통수식했으나 아직 사용 안해
지하수 '물 적합' 판정, 선택 고민 없어
수도 기본료 부담에 주민들 '요지부동'

아래마당에서 오토바이가 소리가 들렸다가 멀어진다. 우편집배원이 다녀가는 소리다. 계단을 내려가 우체통에서 우편물을 꺼내보니 수도요금 고지서다. 붉은색 고딕체 글자가 눈에 띈다. 독촉장이다. 미납액을 보니, 겨우 1천100원이다. 쪽팔리게 이게 뭔가? 1천100원 받겠다고 독촉장 발송우편료를 들이고 행정력을 낭비하고…. 이를 경제적으로 환산해본다면 속된말로 남는 게 없는 장사다, 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만사를 제쳐놓고라도 오늘 당장 납부하러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마을은 가구 수를 다 합쳐봤자 60여 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3년 전까지 만 해도 시수도(상수도)가 들어오지 않았다. 식수는 물론 생활용수를 지하수로 해결하였다. 그땐 마을사람들 여럿이 모이면 "아무리 그래도 요새 세상에 수돗물 안 들어오는 마을이 어디 있나, 수돗물은 들어와야지"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꺼내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추진하지는 않았다. 아니, 추진할 생각조차 없었다는 게 맞다. 말만 그랬지, 그저 푸념에 그쳤을 뿐이었다.

시수도를 들이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엄두도 못 낸 것이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강 알기로는 사용자당(가구당) 수백만 원 넘게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수도관로가 깔려 있는 시내 지역과 달리 우리 마을 같이 가구 수가 적고 외진 마을은 수도관로를 먼 데서 끌어오고 다시 각 가구로 연결하자면 그만한 비용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 비용은 사용자 부담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장이 시에서 무상으로 시수도를 넣어 준다며 원하는 가구는 신청을 하라고 했다. 마을사람들은 영문은 모른 채 거저라니까 '이게 웬 떡인가'하며 모두 신청을 했다. '마을 앞산 기슭에 공장이 많이 들어서더니 공업용수 공급을 하려고 저러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나중에 어렵사리 들은 소문으로는 구제역 침술수 때문에 마을 지하수가 오염될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 구제역 창궐 때 저 산 7부 능선 어느 지점에 가축 수백 마리를 묻었다. 침출수 유출로 마을 지하수의 오염을 염려한 탓인지 시수도가 마을 입구까지 들어왔다.

몇 해 전 구제역이 창궐했을 때, 병이 들었든 안 들었든 간에 의심구역 내의 가축이란 가축은 모조리 살처분을 하느라 온 나라가 난리를 친 적이 있었다. 우리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앞산 중허리로 부랴부랴 길을 내어 눈 뜨고 안 뜨고를 가리지 않고 수백 마리의 가축을 실어다 묻었다. 그 당시 마을주민들이 '가축 매몰로 지하수가 오염될 수 있다'고 염려했지만 관계자들은 '침출수 유출 방지 장치를 단단히 해 놓았으니 염려 말라'고 했다. 다들 '관에서 하는 그런 말을 누가 믿나'라며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그 북새통에 길게 시비를 걸고 할 계제가 아니라서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2~3년이 지나 침출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에 대비한다며 집집마다 시수도를 공짜로 넣어준다고? 그때 방비를 잘해 놓았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다던 말은 말짱 입에 발린 소리였던 모양이다.

얼마 전 무용가 최은희 교수의 생림 마사리 스튜디오에 간 적이 있다. 거기에도 전에 없던 시수도가 들어와 있었다. 그 마을도 산기슭에 축사가 있다. 우리 마을과 인접한 마을에는 시수도가 안 들어왔다. 그 마을에는 축사가 없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아무래도 구제역 침출수에 대비한다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참, 시도 답답하다. 마을주민들에게 '구제역으로 매몰한 가축 침출수가 지하수를 오염시키게 될까봐 예방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 될 것을 아무런 사전 설명도 하지 않는다. 공짜로 넣어주니 감지덕지 하란 것인가? "암튼 구제역 덕분(?)에 시수도는 공짜로 들어왔으니 마을주민들로선 덕 본 셈"이라는 이장의 말에 그냥 웃고 넘어가긴 하였다.

공사가 끝나고 통수시험을 마친 지도 3년이나 지났다. 그러나 마을에 있는 공장은 몰라도 아직 수돗물을 쓰는 가구는 하나도 없다. 여전히 지하수만 그대로 쓰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수도 공사를 하면서 마당 초입에 계량기를 묻고 딱 거기까지만 파이프를 연결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파이프는 연결을 안 해주었다. 손댄 김에 Y자 이음쇠 하나 연결하면 뚝딱 하고 해결될 것을 법이 그렇고 공사계약이 그렇다나. '젠장! 지랄 같은 법도 다 있고 지랄 같은 계약도 다 있네'라고 투덜거리고 말았다. 시수도가 들어왔긴 해도 사용은 원천봉쇄돼 있는 셈이다. 시수도를 쓸래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다.

요새 시골에는 주민 대다수가 노인들이다. 우리 마을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대부분이 홀로 사는 할머니들이다. 고령의 할머니들이 수도를 어떻게 연결할 수가 있겠나? 마을노인회는 올해만 관광여행을 두 차례나 다녀왔다. 마을 이장도 참 답답한 사람이다. 마을에 있는 공장에서 '삥' 뜯어와 노인들을 관광 보낼 게 아니라 사람 한 명이라도 사서 이런 거 해결하면 좀 좋을까? 수돗물을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연결은 해놓는 게 맞지 않은가? 이장의 역할이 마을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첫째 아닌가 말이다.

여담이지만, 마을에는 마을기금이라는 적잖은 돈이 있다. 시에서 마을회관 난방비나 전기료는 지원하지만 가욋돈을 준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 주민들이 마을회비 같은 것을 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마을기금이라는 뭉칫돈이 있다. 알다시피 마을에 있는 공장이나 식당 같은 곳에서 협찬이라는 명목으로 삥 뜯어 모은 것이다. 그 돈을 노인회에 얼마, 청년회에 얼마 하는 식으로 일정금액씩 배분하기도 한다. 웃기는 수작이다. 그 돈을 배분 받은 청년회원들이라도 나서서 밝은 눈으로 수도 연결 좀 하면 안 되나? 돈을 받아 먹었으면 시수도를 연결하는 일이라도 해야 옳지 않은가. 돈만 받아먹는 청년회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각설하고…. 수도공사가 끝나고 통수시험이 끝났을 때 이장은 마을 지하수의 수질검사 결과에 따라 시수도 연결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마을사람들은 수질검사 결과가 '먹는 물 부적합'으로 나올까 봐 염려하고 있었다. 만약 지하수를 먹지 못한다는 판정이 나오더라도 시수도가 들어왔는데 무에 걱정인가 라고 하겠으나, 실상은 그게 아니다. 가구당 1년에 몇천 원 될까 말까한 마을지하수 전기세에 비해 시수도 요금은 엄청 비싸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두 번째 이유다.

▲ 마을 각 가정에는 수도계량기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시수도용, 다른 하나는 지하수용이다.
그러던 중 마을노인회가 4대강 관광을 다녀왔다. 그 때 녹조로 뒤덮인 썩은 강물을 목격했다. 아무리 약품을 포대기로 쏟아 붓는다 한들 강물이 옳게 정수가 되겠나? 약 냄새는 또 얼마나 나겠나? 그 강물을 보고는 다들 수돗물은 차마 못 먹겠더라고 했다. 마을사람들의 마음에 '혹시 수돗물 먹고 탈나는 거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생긴 것이다. 사실은 비싼 시수도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핑계이지만, 세 번째 이유다.

어느 날 끄르륵 끄르륵 마을회관의 스피커 켜는 소리가 나더니 마을이장이 방송을 했다. "주민 여러분! 우리 마을 지하수 수질검사 결과 먹는 물 적합 판정으로 나왔습니다. 다시 한 번 알려 드리겠습니다. 주민 여러분, 지하수를 종전대로 안심하고 사용해도 좋습니다. 뚝." 이미 시수도 사용을 안 하겠다고 작정을 하고 있는 주민들에겐 아무 의미없는 판정 결과였다.

그 참에 공교롭게도 TV 뉴스에 이런 뉴스가 나왔다. 우리 마을처럼 시수도와 지하수가 다 있는 어느 마을의 노인 이야기였다. '노인이 지하수 계량기 밸브를 열어야 할 것을 헷갈려 시수도 계량기 밸브를 열어 생활용수로 쓰고 마른 밭에 물도 주었다. 게다가 수도꼭지 잠그는 것을 깜빡 잊은 채 몇날 며칠을 그냥 두어 수도요금 폭탄을 맞았다. 노인은 기초생활수급자인데 나라에서 나오는 생계비 전액을 다 넣고도 모자라는 낭패를 당해 수도요금 고지서를 들고 망연자실하고 있다.' TV를 본 마을노인들의 입장에서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난 노인들은 시수도를 연결할 생각일랑 아예 접어 버렸다. 나머지 주민들도 '물 좋은 마을 지하수를 두고 비싼 수돗물 왜 쓰냐'고 했다. 시수도 연결은 물 건너 가버린 셈이다. 네 번째 이유다. 이런 것들이 우리마을 사람들이 시수도 사용을 안 하는 대강의 이유다.

시수도의 경우 물 한 방울 안 쓰더라도 기본요금이라는 것이 나온다. 시내지역은 수도요금에 하수요금을 합산하여 징수한다. 하수관이 매설돼 있고 하수처리 비용이 드니까 수요자에게 물 사용량에 비례한 하수처리 비용을 얹어서 부과하는 것이 맞다. 시골은 별달리 하수시설이 없다. 그냥 고랑을 거쳐 강으로 흘러간다. 그러니 하수요금을 징수하지 않는다. 시골에 집을 짓고 준공검사를 받으려면 가스계량기를 설치해야 한다.

산골에는 도시가스도 안 들어오는데 왜 비싼 가스계량기 설치를 강제하는지? 행정 편의주의나 탁상행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떻든 현재까지 우리 마을사람들은 기본요금을 그냥 물더라도 시수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하수만 사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민의 혈세로 건설한 수도시설이 소용없이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참 딱한 일이다. 물론 우리 집은 아니다. 우리 집은 연결해 놨다. 마을 지하수 저장탱크의 위치가 우리 집보다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수압이 시원찮다. 가뭄 때 집 뒤 언덕에 있는 나무에 물을 주거나 키 큰 나무에 웃물을 주자면 수압 센 시수도가 있어야 한다. 자기가 아쉬우면 땅을 판다 하지 않던가? 나는 아쉬워서 땅을 팠지만 마을 사람들이야 아쉬울 것 없으니 땅 안 팠다고 할까?

은행에 가서 수도요금을 내고 미뤄 왔던 자동이체 신청도 했다. 얼마 전 의사가 나더러 걷기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했다. 은행에 갈 때 일부러 걷기운동을 하느니 이럴 때 걷자 싶어 왕복 20리 길을 걸어서 다녀 왔다. 길섶에 허물어지듯 주저앉기를 수없이 거듭했다. 척추협착증이 있는 주제에 까불다가 죽는 줄 알았다. 어휴!





주정이 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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