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좋아했으나 미술을 전공할 수 없었던 옥도윤(46) 씨. 그는 우연히 들른 갤러리에서 한국화를 본 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화를 만났다. 좋은 의미와 상징을 담고 있는 예쁜 그림을 꼭 자신의 손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민화를 가르치는 곳을 찾아다니고, 인터넷에서 정보도 찾아보고, 책도 찾아보면서 그는 민화를 그렸다. "좋은 의미가 담긴 그림, 보는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보는 그림을 그리는 일, 저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민화를 그리는 옥도윤(46) 화가의 작은 그림방을 방문했다.

▲ 민화 화가인 옥도윤 씨가 그림방의 작업대에서 민화를 그리고 있다.
집에서 그림그리며 놀았던 어린시절
미대 진학 못했지만 그림 계속 그려
좋은의미·상징 담은 민화에 푹 빠져
아파트에 작업실 꾸며 작품 활동 매진

옥도윤은 아파트의 방 한 칸을 그림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림방에 호를 붙여 '하경그림방'이라 부른다. 하경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말고 빛나라'는 뜻이다. 그림방에는 민화가 걸려 있다. 겹쳐 세워져 있기도 하다. 작업대는 옥도윤의 몸에 꼭 맞게 그리고 작업하기에 편하게 특별히 제작됐다. 어려서부터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밤샘작업도 많이 한 탓에 허리 디스크를 앓았다. 결국 민화를 그리는 작업대를 주문해서 맞추었다. 작업대 위에는 화구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그림판이 가장 인상적이다. 그림판은 고무판과 모포를 붙여 만들었다. 고무판은 작업대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모포는 종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한다. 손닿는 곳에 물감, 붓 씻는 그릇, 붓걸이 등이 놓여 있다.

옥도윤은 1968년 부산 대신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셋째 딸이었다. 오빠, 언니에 여동생, 남동생이 있다. 그의 집은 별 어려움 없이 살았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영도로 이사를 가서 결혼할 때까지 영도에서 살았다. 결혼 후 시댁에서 몇 년 살다가 김해로 이사를 왔다.

"어릴 때 몸이 약해서 밖에 나가서 놀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집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지요. 초등학교 5학년 생일 때 이젤과 스케치북, 파스텔 등 화구를 선물로 받았어요. 그때 스물이었던 오빠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사 준 선물이었어요. 아픈 여동생, 그림을 그리는 여동생을 위하는 오빠의 마음이 지금도 제게 따뜻하게 남아 있어요."

언니, 오빠들이 사용하는 화구를 부러워하던 그에게도 자신만의 화구가 생겼다. 그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크레용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위에 파스텔을 문질러 그림을 그려보고….

초등학교 시절 교실에는 항상 옥도윤의 그림이 붙어 있었다. 미술학원에도 다녔다. 미술대회에 나가면 늘 상을 받곤 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용두산공원에서 열린 사생대회에 나갔다. 공원 일대에 학생들이 흩어져 그림을 그렸다. 옥도윤은 저만치 보이는 나무를 표현하고 있었다. 햇살을 가득 받아 잎이 반짝이고 있는 나무였다. 친구들이 면적을 채우듯 색칠을 하고 있을 때, 그는 붓에 물감을 묻혀 찍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었다. 미술교사가 지나가다가 그의 옆에 서서 어느 나무를 그리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표현을 잘 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다른 아이들하고 좀 다르게 그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일이 있고 난 뒤 미술부에 들어갔다.

여러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 그러나 3학년 때 그림을 그만 두고 공부를 하라는 부모의 조언에 따라 그림에서 손을 뗐다. 학교 미술부에는 전문미술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의 그림 실력은 뛰어났다. 친구들과의 실력 차이는 점점 커졌다. 거기에 어릴 때부터 계속 그림을 그린 탓에 그림이 서서히 지겨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그림이 계속 생각났다. 다시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동아리 활동을 미술부에서 했다. 미술시간에 그의 그림을 본 미술교사도 그림을 계속 하라고 권했다. 고등학교 미술부에는 미대 진학을 꿈꾸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과의 실력 차이는 더 많이 났다. 그는 미술부 친구들이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 궁금했다. "어쩌면 저렇게 잘 그릴까, 그림을 제대로 마음껏 그리는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림은 여전히 가슴에 살아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자존심이 상해서 못 물어봤어요."

결국 옥도윤은 미대에 진학하지 못했다. "부모의 권유대로 유아교육과에 입학했어요. 미대생이 된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어요. 그래서 혼자서 그림을 계속 그렸지요." 그는 대학 졸업 후 유치원교사로 4년간 근무하다 결혼했다. 이후 입시학원에서 중등부와 고등부 국어를 7년여 가르치기도 했다. 김해에 와서는 미술학원 유치부 선생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동심미술학원의 유치부 전담교사로 취직했지요. 그 학원의 원감이 화가 윤소남 선생이었어요. 처음 학원에 갔을 때는 그렇게 유명한 화가인줄 몰랐어요."

어린이들을 위한 교구 교재, 환경판 등을 만들고 있으면 멜빵바지를 입은 윤소남 선생이 뒤에서 지켜보곤 했다. "옥 선생, 뭐 하노? 그 작업은 어떻게 하는 거고?" 유심히 지켜봐 주고 칭찬도 했다. 윤소남과 옥도윤은 그렇게 원감과 교사로 만났지만, 무의식중에 서로의 예술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건 아닐까. "윤소남 선생은 참 다정다감한 성격이었어요. 저를 믿어 주고 또 좋아해 주었죠. 제가 들어갔을 때 학원은 좀 침체기였어요. 저는 유치부 재롱잔치도 열고, 웅변대회도 열며 열심히 일했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저를 '우리 학원을 일으켜 준 옥 선생'이라 불렀어요. 2년 정도 근무하다 그만 두었지요. 직접 공부방을 하기 위해서였어요. 집에서 그림도 계속 그려야 했구요."

옥도윤은 당시 혼자서 한국화를 독학하고 있었다. "김해에 오기 직전이었어요, 부산 롯데백화점의 롯데갤러리에서 열린 한국화 전시회를 보았어요. 거기서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예쁜 꽃그림을 보았답니다. 그 순간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화구를 다시 꺼냈지요. 그리고 한국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는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미술학원에 다녔다. 그러나 미술학원에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취미로 그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한국화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인제대학교 평생교육원의 한국화반을 알게 됐다. 그리고 싶던 그림을 배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러다 드디어 민화를 만났다.
옥도윤은 전시회에서 민화를 봤다. 너무 예뻐서 마음을 뺏겨 버렸다. '평생 그려야 할 그림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인터넷에 들어가 민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책도 샀다. 민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는 일도 시작했다. 김해한옥체험관에서 열린 민화과정에도 참여했다. "2008년부터 민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 이전의 일들은 어쩌면 민화를 그리기 위해 겪어야 했던 긴 방황(?)이었는지도 몰라요. 2010년부터는 혼자서 본격적으로 민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민화가 내 길이구나, 민화가 내 그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민화에 빠져들었지요."

그는 한국민화협회에서 발행하는 도록과 관련 도서를 매년 샀다. 그 책들을 보면서 그리고, 또 그렸다. 책을 보면서 모사하고, 참고하고, 변형해서 창의적 표현을 보태기도 하면서 꾸준히 그렸다. 민화는 원화가 있고 일정한 형식이 있는 그림이라서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화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옥도윤 역시 그만의 민화를 그리고 있다. "한국화를 오래 그린 덕분에 붓놀림이 자유롭지요. 색감, 농담 등도 익숙해요. 그 밑바탕이 저만의 만화를 그리게 했어요. 그림을 그리는 옥도윤, 그림을 그리지 않는 옥도윤. 저의 정체성입니다. 붓을 잡고 있거나 놓고 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는 현대적 민화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 "전통민화와 달리 현대민화에는 작가 정신, 철학 세계가 반영됩니다. 저는 전통과 현대를 함께 그려 나갈 생각입니다. 제 마음을 담아 그림 속에서 날고 싶어요. 비상을 꿈꾸는 거지요."

옥도윤이 민화를 그리는 이유는 민화가 좋은 기운, 행운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저는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민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표현하고 싶은 색을 만들어내고, 하나씩 칠하면서 종이를 채우고, 꽃·나무·바위가 생기고…. 그러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민화는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어요. 그러니, 그리는 저도 행복한 거지요. 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참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제 그림을 보면서 행복하길 바랍니다."  

>>옥도윤/한국미술협회·김해미술협회·김해여성작가회 회원, 김해미술대전 운영위원. 전국소치미술대전 특선, 전일국제전(일본 국제서화공모전) 우수상, 대한서화예술대전 우수, 김해미술대전 특별상 등 수상 다수. 경남·김해선면예술가 협회전, 대한서화예술협회전, 아름다운 동행전(묵연회), 김해미술협회전, 김해여성작가회전 및 그룹전 100여회.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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