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시인 30명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9천500원

딱딱한 책표지를 여는 순간 연초록 작은 잎사귀 하나를 만난다. 특정한 사람에게서 책을 선물받은 기분이 든다. 만든 이의 정성이 느껴진다. '커뮤니메이션북스'에서 출간한 시집 <동시> 첫 장을 넘긴 느낌이다. <동시>는 우리나라의 대표동시 9천940편 중에서 시인 30인의 35편을 골라 묶은 책이다. 주옥 같은 동시와 백지가 만나 만들어진 이색 동시집이다.
 
제목이 적힌 첫 장을 넘기고 두 장의 백지를 더 넘겨야 한 줄의 동시를 만날 수 있다. 호기심이 가득 찬 마음은 다음 장에 더듬이를 세우게 된다. 그렇게 해서 만나는 동시 구절은 '나에겐 사랑하는 새 한 마리 있다네'이다. 김구연 시인의 동시 '귀여운 나의 새'의 첫 행이다. 그리고 또 종이를 넘겨야 다음 행을 읽을 수 있다.
 
한 편의 동시에서도 많은 것을 건져낼 수 있다. 짧은 동시라도 그 안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거기에 또 백지의 여운을 둔다. 한 편의 동시를 읽고 많은 경험을 하게 한다. 시 한 편을 읽고 나면 주어진 여백에 무엇인가 쓰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코딱지를 돌돌 말아서, 꼭꼭꼭 눌러서, 빈대떡처럼 꼭꼭꼭 눌러서, 그래선 강아지 밥그릇에 수제비처럼 탐방 넣었어. 그랬더니 강아지 밥 먹다 말고 그러잖니. 오늘은 밥이 짭짤한데. 왠지 간이 맞어.' 권영상의 '강아지만 모르게'이다. 그리고 다음 쪽은 백지다. 독자들이 이 시를 읽고 백지에다 무엇을 할지 필자도 자못 궁금해진다.
 
'감동을 글로 보관할까?' '그림을 그려볼까?' '시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볼까?' '모방시를 써 볼까?' 백지는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또 시각적으로 편안함을 주어 책을 읽는 부담감도 사라진다.
 
"종이를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시는 시 아닌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시는 인쇄되어 보여지고 독자의 시는 빈 종이 위에 쓰여진다. 시인의 시가 씨앗이 되어 독자의 시를 싹 틔운다. 독자의 시는 시인의 시를 꽃피운다. 열매는 그러고 나서 익기 시작한다. 빈 종이를 빠르게 넘기지 말기 바란다." 에필로그의 내용이다.
 
편집자는 빈 종이를 빠르게 넘기지 말기를 바란다. 빈 공간은 사유하는 시간이다. 빈 종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공백은 상상의 세계로 가는 징검다리다. 시 한 편의 여운에 깊게 빠져들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백지의 공백은 여유를 주면서도 긴장감을 동반한다. 다음 쪽에는 어떤 동시가 나올까 두근대는 마음으로 다음 장을 열게 만든다. 지루함이 자리할 틈이 없다.
 
이 책이 주는 매력은 또 있다. 표지를 빨강, 파랑, 검정 등 세 가지 색상으로 만들어 아이들의 심리까지 배려한 세심함을 보인다. 동시는 재미있는 책이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정말 재미있다. 동심이 살아 있다. 어린이들만 읽는 동시가 아니다. 어른들에게도 동심이 있다. 동시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이다. 아련하기에 더 큰 감동을 받는다.
 
오순택의 '눈 오는 날'도 재미있다. '버스 정류장에/헌 옷 입은 아저씨가/빈 깡통 옆에 놓고 졸고 있다/사람들은 못 본 척/버스를 탄다/하느님은 아까부터/내려다보고 있었나보다/싸락눈을/빈 깡통에 담아 주고 있다.'
 
이 시집은 '짧은 동시에 이다지도 큰 세상이 들어 있다니' 하며 독자를 감동시킨다. 이것이 동시의 매력이다.
 


김해뉴스

이애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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