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걸쳐 길가 환경 적응
밝히고 눌려도 질기게 살아남아


주위에 흔한 식물들의 일상을 보면 한가롭기 그지 없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식물들도 서로 경쟁, 공생, 기생 등 다양한 형태로 얽히고 설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식물들도 어찌 보면 치열한 삶의 현장에 있는 것이다. 식물들도 추위, 바람, 더위 등 나쁜 자연환경을 견뎌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잘 견디는 식물이 바로 질경이다.

질경이는 전국 곳곳의 빈터나 인가 주변에 흔하게 자라는 다년초다. 잎은 뿌리에서 뭉쳐나고 비스듬히 퍼진다. 잎자루가 길고 줄기는 없다. 질경이는 길가나 빈터는 물론 높은 산에서도 살아간다. 이처럼 분포 범위가 넓은 식물은 흔치 않다. 김해의 대표적인 산인 신어산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질경이가 등산로를 따라 쭉 이어져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질경이를 독일에서는 '길의 파수꾼'이라고도 부른다. 질경이가 등산로를 따라 산에 올라간다는 뜻이다.

▲ 질경이.

질경이는 다른 식물들도 모두 좋아하는 영양분이 풍부한 숲처럼 좋은 환경에서는 살지 않는다. 대신 항상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 보도블럭 틈 사이, 등산로와 같이 사람들이나 동물들의 발에 밟히기 쉬운 곳에서 주로 살아간다. 질경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끈질기고 억척스럽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길바닥에서 사람이나 동물에게 밟혀도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질기고 질겨서 질경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질경이는 좋은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그런데도 왜 하필이면 척박하고 밟히기 쉬운 길가를 삶의 터로 삼을까.

아마 다른 식물들과 싸우며 경쟁하는 게 싫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질경이의 형태를 잘 살펴보면 오랜 세월에 걸쳐 길가 환경에 적응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잎의 줄기가 거의 땅에 붙다시피 해 동물이나 사람에 의해 다칠 염려가 적다. 잎은 모두 뿌리에서 나와 지면에 붙어 있으면서도 잎맥이 평행한 모양이어서 사람이나 동물, 차바퀴 등에 짓밟혀도 쉽게 손상되지 않는다. 또 작고 많은 종자를 생산하고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 붙어 먼 곳까지 이동해 자손을 퍼뜨린다.

질경이는 이와 같이 다른 식물들이 살기 힘든 어려운 환경에 잘 적응하여 살고 있다. 경쟁에서 뒤떨어진다고 조급해하고 주어진 환경이 나쁘다고 남을 탓하는 사람들이라면 척박한 환경에서도 지혜롭게 살아가는 질경이의 모습을 한 번쯤 되새겨 볼 만하지 않을까.

최만영 자연과사람들 책임연구원

김해뉴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