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우리 쉼터의 김성함(51) 목사의 얼굴에서 약자를 돕는 이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고물 줍는 목사' 김해 상동 한우리 쉼터의 김성함(51) 목사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김 목사는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했다. 연락처도 알려져 있지 않아서 여러 곳을 수소문해야 했고, 쉼터를 찾아가는 데도 묻고 물어 험한 길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이렇게 그를 만나기 어려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1998년 오갈 데 없고 배고픔에 시달리던 한 필리핀 노동자를 두 달 반 동안 돌봐 준 것을 계기로 소문을 타고 전국 각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김 목사를 찾아왔다. 그 당시 외국인들을 보호할 시설이 극히 드물었던 때라 그는 그들을 내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나 둘 모이더니 100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모였고 그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김 목사는 매일 새벽 이슬을 맞으며 고물을 줍기 시작했다.
 
전국서 몰려온 100여명 노동자
내칠 수 없어 고물 수집 시작
"작은 후원 끊겨 고전 하는 중"

김 목사는 "후원을 받으러 다니지 않고 고물을 모으기 시작한 이유도 작은것들을 모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부담 없이 내다 버릴 수 있어서 좋고, 부담 없이 가져와서 좋기 때문에 고물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이젠 그것마저 서로 가져가려고 다들 경쟁을 하니 더욱 각박한 세상이 되었다는 증거겠죠."
 
고물을 주워 외국인을 돕는 목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2002년부터 언론사들이 찾아오길 시작했다. TV와 신문사에서 4년 내내 번갈아가며 취재를 위해 찾아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김 목사는 그때를 회상했다 "남을 돕는 일은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지요. 98년부터 4년 간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마을주민들이 작은 정성을 모아줄 때 더욱 봉사할 맛이 났었지요."
 

언론을 통해 김 목사의 선행이 보도 되었을 때 역설적이게도 그를 도와주던 정성은 끊어져 버렸다고 한다. "유명해졌고 잘 살게 되었으니 보잘 것 없는 것을 보태줘봤자 크게 도움이 안 될 거라 사람들이 생각했는지 작은 후원은 점차 줄어들었어요.
 
물론 큰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은 들어왔죠. 하지만 큰 후원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큰 손길보다 작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손길이 사람들이 먹고 살아가는 데 더욱 중요한 법이죠."
 
2008년 한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사회봉사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김 목사는 더욱 힘들어졌다. 이제는 사람들은 김 목사를 만나면 첫 마디가 "요즘도 후원 많이 들어오냐"라는 묻는다고 한다. 그럴 때 김 목사는 속이 많이 상한다고. 그래서 그는 자신을 숨기기 시작했다. 언론사에서 연락이 오면 이제 봉사활동을 하지 않고 외국인도 한 명도 없다고 말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에도 주말만 되면 외국인 노동자 100명 정도가 쉼터를 찾고 목사는 남모르게 그들을 위해 매일매일 살아간다. 그는 변함없이 고물을 주워 끼니를 해결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또한 아픈 외국인 노동자를 병원까지 태워다 주고 회사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하면 함께 찾아가서 항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도 힘이 달린단다. 소소하게 이어지던 지원이 끊어져 겨우 살아간다고 한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있지만, 10년 전에 비해서 세상 살기가 더 어려워졌고 사람들은 인색해져 간다는 걸 느낄 때마다 안타까워요. 경제는 성장하고 다들 잘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10년 전보다 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쥐고 있는 돈이 없어서 어렵다기보다 서로 돕지 않아 어려워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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