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발견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사계절/40쪽
1만1천 원

구슬꿰기·종달기·볏집묶기·낚시 등
사람과 자연 위해 본연의 역할 충실

익숙하고 친밀한 것들을 새삼스럽게 호출해 낯설고 새롭게 인식하도록 하는 게 시의 일이라면 그것들의 내력과 맥락을, 과거와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건 철학의 영역이다. 시적인 발상을 여백 있는 이미지를 통해 펼쳐 보이며 '그림으로 사유하는 철학자'라 불리는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신작 <작은 발견>이 나왔다.
 
흐미엘레프스카는 2003년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에서 그림책 기획자 이지원 씨와 만난 것을 계기로 한국에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 작가 김희경 씨와 공동 작업한 그림책 <마음의 집>으로, 2013년에는 <눈>으로 어린이책 부문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볼로냐도서전의 라가치상을 두 차례 받았다. 작품마다 일관되게 사물의 이력을 통해 보는 시간성과 각자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상대성을 성찰하게 한다. 
 
이번에는 5g 감칠실로 보여주는 평범하고 아름다운 세계다. 도톰하게 감겨있는 실이 한 가닥 풀리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이들이 필요한 바로 그 순간 그곳에 있었다는 거예요." 이들, 곧 실은 단추를 달거나 터진 솔기를 꿰매고 목도리나 장갑을 잇거나 신발을 여미는 끈으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마땅히 할 일들을 한다.
 
또 구슬을 꿰거나 빗자루와 쓰레받기의 고정 고리처럼 대부분 평범한 일을 한다. 주로 사람을 위한 일이지만, 식물의 지지대나 소의 목에 종을 달 때도 쓰이고 특별한 날을 꾸미는 장식이나 볏짚을 묶는 것처럼 큰 일을 해낼 때도 있다. 가끔은 노인들이 쉬는 벤치의 줄로, 꼬마의 줄넘기로, 청년의 낚시줄로 활약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하거나 기분 좋게 만드는 일도 하지만 낚시줄에 걸린 물고기나 그물에 걸린 나비의 입장에서 보면 늘 좋은 일만 하지는 못한다.
 

실로 하는 일은 천천히 풀어내야 할 때도, 다급하게 풀어내야 할 때도 있지만 언제나 대가를 바라면서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열심히 일을 하면 할수록 누군가를 돕고 도울수록 실은 더 많이 풀려 나간다. 책이 끝날 무렵 작가는 말한다. "이들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해 왔다는 것을 믿을 수 있나요? 적어도 이 책에 나온 모두는 이들이 해 온 일을 알아줄 거예요. 나도 그래요. 이들이 다 풀려 버리기 전에 이렇게 소개하게 되어 다행이에요."
 
마지막 면지에는 이제껏 여러 가지 쓸모와 용도로 풀려나가느라 얼마 남지 않은 실이 있다. 완전히 다 써버린 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두어 번은 더 쓸 수 있을 만큼 남은, 이제는 도톰한 실 대신 아기자기한 그림이 드러난 실패가 더 잘 보이는 실을 통해 '한 때는 제 몫을 충분히 했을' 모든 것들을 '발견'하게 한다.
 
낡은 주전자와 도마, 색이 바랜 화분받침, 손잡이가 너덜해진 우산, 언제 또 쓰일지 몰라 모아둔 짜투리 종이와 천…. 독보적으로 특수한 일을 하기보다는 복잡하지 않은 일에 반복적으로 쓰이며 대체가능한 흔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없으면 당장 아쉽고 불편한 것들. 분명 그 평범한 것들 덕분에 누군가의 작은 순간들이 편리해졌고, 따뜻해졌고, 즐거워졌고, 아름다워졌고, 특별해졌을 것이다.
 
비단 사물에 한정되지 않는다. 진작부터 다정하게 '이들'이라 부른 덕분에 감정이입 되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마냥 즐겁지도 않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 자리에서 덤덤하고 묵묵하게 하고 있는 이웃들에게 건네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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