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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첫 중국집 옛맛 그대로 … 짜장면의 담백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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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5.09.02 09:34
  • 호수 237
  • 15면
  • 남태우 기자(leo@gimhaenews.co.kr)

창업자 故 곡소득 씨의 아들 조명 씨
예전 자리에 부인과 1년 전 재개업

튀긴 요리 느끼하지 않아 즐겨 찾아
조미료 거의 사용 않는 게 '맛의 비법'

'경화춘'이란 음식점 이름을 듣는 순간, 김해의 40대 이상 '어른'들은 거의 다 대동소이한 반응을 보인다.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에 먹었던 추억의 찌장면을 떠올리거나 친구, 고객 들과 '청요리'를 즐겼던 빛바랜 기억을 끄집어내기 일쑤다. 왜 그럴까? 경화춘은 김해 최초의 중국식당이자, 맛 하나로 김해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곳이기 때문이다. 
 

   
▲ 장충남 가야대학교 교수가 경화춘에서 탕수육을 젓가락으로 집어들고 있다.
2010년 12월 20일자 <김해뉴스> 5면 기사를 한 번 보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부인을 이 곳(경화춘)에서 처음 만났다는 김홍진 할아버지는 부인의 수줍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는 '당시 중매로 만난 아내와 짜장면을 먹는데 가슴이 설렜다. 지금도 아내와 싸우고 나면 이 곳을 찾아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고 고백했다."
 
식당 창업자인 화교 곡소득 씨가 1990년대 말에 세상을 떠난 뒤, 경영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경화춘은 문을 닫았다. 그러면서 김해 사람들한테서도 서서히 잊혀 갔다. 

그랬던 경화춘이 지난해 6월 원래 자리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곡소득 씨의 아들 곡조명 씨와 부인 왕소현 씨가 영업을 재개한 것이다. 당시에 비해 규모는 작아졌지만, 옛 이름을 보고 우연찮게 식당을 찾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맛이 옛날 그대로다"는 평을 하고 있다. 
 
늦여름의 기세가 만만찮았던 어느 날, 가야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장충남 교수(전 김해중부경찰서장)와 경화춘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중국음식을 무척 좋아한다는 장 교수는 최근에야 경화춘의 '맛'을 접했고, 단박에 반해버렸다고 했다.
 
기자는 이미 경화춘 요리의 매력에 빠져 있던 터라 장 교수의 "경화춘으로 가자"는 말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사실 전날 저녁에도 김해의 여러 문화예술인들과 경화춘에 들렀던 터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광고를 안 한 탓에 경화춘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왕 씨에게 탕수육과 깐풍육을 주문했다. 그리고 곡조명 씨의 조카가 운영하는 인근의 만두 전문점 '만리향'에서 찐만두를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경화춘에서는 손님들이 원하면 만리향 만두를 배달시켜 먹을 수 있도록 해 준다.
 
   
 
주문한 요리는 금방 나왔다. 음식에서 온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경화춘 요리의 장점은 느끼함이 별반 없다는 것이다. 탕수육과 깐풍육도 마찬가지였다. 장 교수는 "둘 다 기름으로 고기를 튀겼는데도 전혀 느끼하지 않다. 많이 먹었는데도 입안이 개운하다"고 감탄했다. 나아가 고기의 식감은 쫄깃했고, 피는 바삭한 편이 아닌데도 고소했다. 탕수육 소스는 달착지근 하다기 보다는 달콤했고, 깐풍육 소스는 깔끔했다.
 
왕 씨에게 경화춘 요리의 '비법'을 물었다. 그는 "조미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설탕 같은 달달한 조미료도 많이 넣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요리들이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게 느껴질 것"이라면서 "고기도 신선한 생고기를 사용한다. 다른 재료도 싱싱한 것들을 골라 요리할 때 쓴다"고 설명했다.
 
만리향 만두는 이미 <김해뉴스>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때 편집 담당자는 만리향 만두의 맛을 두고 '촉촉하고 쫄깃한 만두피 사이로 포근한 소의 육즙'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이 제목 외에 더 이상 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 교수는 경남 남해 고현면 출신이다. 남해중학교와 진주고등학교를 나온 뒤 경찰대학교에 1기로 들어갔다. 1985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밀양, 진주기동대에 소속됐지만 주로 서울에서 파견 근무를 했다고 한다. 당시는 각종 민주화 시위가 끊이지 않았던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전국의 전경대 150개 중대가 서울에 모였다. 나는 청량리경찰서에 배속돼 경희대와 한국외대 시위를 주로 담당했다. 2년 동안 경찰 본연의 업무는 하지 못한 채 시위만 진압했다"며 웃었다.
 
장 교수는 이후 진주경찰서로 발령을 받았고 '진짜 경찰 업무'을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여러 경찰서를 거친 뒤 경남지방경찰청에 들어가 11년 간 근무했고, 창녕경찰서에서 처음으로 서장 직무를 수행했다. 그런 뒤 김해중부서장을 끝으로 2010년 12월 퇴직했다. 그는 "고향 친구들은 나를 보고 '왜 경찰이 됐느냐, 어릴 때 이미지와 안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찰은 내게 정말 잘 어울리는 직업이었다. 힘들거나 불편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요리를 다 먹고 난 장 교수는 짜장면 한 그릇을 주문했다. 이미 요리로 배를 채운 터라 더 이상 음식을 넣을 공간이 없었지만 "중국음식점에서는 반드시 짜장면 맛을 봐야 한다. 그래야 그 집의 요리 실력을 알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장 교수는 짜장면 한 그릇을 받아들더니 반으로 나눠 두 그릇을 만들어 기자에게도 권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게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이미 탕수육, 깐풍육에서 확인된 경화춘의 요리 실력은 짜장면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장 교수는 "보기 드문 짜장면 맛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게 일품"이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경화춘 전경.
식사를 마친 장 교수는 오후 수업이 있다면서 서둘러 일어섰다. 밖으로 나오는데, 옆방에 지인들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지인들은 오향장육과 유산슬을 주문해 두고 있었다.
 
장 교수를 배웅한 뒤 지인들과 합석을 했다. 삶은 오리알과 함께 나온 오향장육도 맛이 일품이었다. 생고기를 사용해서인지 돼지고기는 부드러웠고, 고소했고, 담백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지만, 유산슬도 마찬가지였다. 싱싱한 재료에다 깔끔한 소스 맛이 더해져 '이게 평소 맛보던 중국음식 이 맞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맛있는 '청요리'와 함께 이야기도 깊이 있고 즐겁게 무르익어 갔다.  

▶경화춘/동상동 981-8. 055-326-5168. 탕수육 1만~2만 원, 유산슬 2만~2만 5천 원, 깐풍새우 2만~3만 원, 라조육·깐풍육 1만 5천~2만 원, 짜장면 3천 원, 짬뽕 4천500원.

김해뉴스 /남태우 기자 le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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