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 글·그림
철수와 영희/44쪽
1만 2천 원
음독·분신·보상금 등으로 마을 흉흉
사람·짐승 못 견디는 고향 절대 안돼
강의를 하다 보니 여러 도시로 다닌다. 그 중에서 제주와 밀양은 쉽게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죄'를 물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송전탑이 세워지고 있는 밀양. 이 두 도시를 방문했던 건 순전히 그 지역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강의 일정이 아니었다면 굳이 그 곳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의 밥그릇은 딱 그만큼이었다.
송전탑 문제로 시끌벅적할 것 같았던 밀양 시내는 의외로 조용했다. 강의를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먼저 송전탑에 대해 물었다. 그 자리에 있던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장의 안내로 송전탑 반대 시위현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어머니 같은 분들이 천막에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두 손을 살갑게 잡고서 어디서 왔느냐 물었고, 와주어 고맙다, 했다. 마음 따뜻한 누군가가 두고 갔을 간식거리를 내놓으며 먹어보라 권하셨다. 사 간 두유 상자가 부끄러워 몸만 배배 꼬꼬 있다가 돌아왔다.
일부 언론에서는 지역이기주의라고 했다. 보상금 더 받아내려는 계산이다, 외부 불순 세력의 개입이 만들어낸 사건이라 했다. 자기들도 전기 사용하면서 나라하는 일에 너무 그러면 안 된다고 떠들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딱 꽂힌 말은 밀양 할매의 말씀이었다.
"내는 이 때까정 텔레비전에서 데모하는 거 나오몬 모두 빨갱이라 했다. 그라고 정말 빨갱인 줄 알았데이. 그런데 내가 이 나이 묵고 송전탑 세우는 거 반대해보이 빨갱이 아니더라. 내가 잘못 알았다 아이가. 내가 이제 그걸 알았는기라."
그림책 <밀양 큰 할매>에도 똑같은 말이 나온다.
"나라가 있어야 우리가 있는 기라. 나랏일 하는 양반들이 백성들 잘살게 해 줄라꼬 얼매나 연구하겠노. 그라이 나라에서 하는 일은 다 이유가 있는기라." 할매는 나라 잃은 설움을 당해본 할매 아부지한테서 어릴 적부터 태극기 그리는 걸 배웠고, 나라 중요한 것도 뼛속까지 새겼다. 그리고 한평생!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밭을 살피며 자식을 키웠다.
그런데 송전탑 때문에 그 소중한 나라와 나랏일 하는 양반들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할매의 일상도 달라졌다. 논밭을 돌보는 대신에 산에 올라야했다. 송전탑 세우는 포클레인 앞에 주저앉아 송전탑은 안 된다고 목이 쉬도록 외쳐야 했다. 사람도, 짐승도, 농작물도 못 견디는 고향을 물려줄 수 없다며 꺼이꺼이 목 놓아 울어야 했다. 이웃끼리 등 돌리게 만드는 송전탑을 막아달라고 늦은 밤까지 촛불을 들어야 했다.
학교도 못 다닌 할매지만 생명보다 중한 것은 없다는 걸 안다. 우리나라 정기를 끊으려 일본이 산 정수리에 박았던 쇠말뚝과 지금 세워지는 송전탑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안다. 송전탑은 그렇게 밀양 큰 할매들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송전탑은 정말 우리 일이 아닐까? 송전탑은 핵발전소와 연결된다. 핵발전소라는 말이 거슬린다면 원자력 발전소로 바꾸어 들어도 좋다. 하지만 핵이 분열하면서 내뿜는 에너지를 전기로 만드는 것이니 '원자력발전'보다 '핵 발전'이 더 맞지 않을까.
여하튼 핵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대도시로 보내려면 송전탑이 필요하다. 핵발전소를 지을 때마다 더 많은 송전탑을 세워야 한다.
그러니 송전탑 문제는 바로 핵발전소의 문제다. 님비현상도 아니고 사상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의 안전과 미래가 달린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에 운영 중인 핵발전소는 23기다.
김해뉴스
어영수
북스타트코리아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