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식당 접근성 조사활동 하던 중
'어부지리' 출입구 경사로에 좋은 인상
불편함 없어 가족·지인들과 즐겨 찾아

2006년 교통사고로 하반신 불구 아픔
장유 편의시설 등 부족해 단체 만들어
"문턱 낮아지는 음식점 더 많아지기를"

"바다낚시 경력만 20년입니다. 낚시를 워낙 좋아해서 먼바다까지 나가 고기를 잡습니다. 배에서 직접 회를 떠서 먹기도 하지만 더러는 삼문동 '어부지리'로 가져와 사장에게 회를 떠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지요. 사장의 칼질은 회 맛을 한층 북돋워 줍니다."
 

▲ 김증섭 장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회 한 점을 집어들며 껄껄 웃고 있다.

장유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증섭(39) 소장은 삼문동에 위치한 '어부지리'가 자신의 맛집이라고 소개했다. '낚시광'을 자처하는 사람이 소개하는 횟집이니 정말 괜찮겠지 하면서 '어부지리'로 향했다. 가게 앞 현수막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수족관을 내부에 설치해 손님이 직접 활어의 상태를 확인한 뒤 주문한 고기를 썰어 드립니다.'
 
▲ 어부지리김봉석 대표.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김봉석(42) 대표가 김 소장을 반갑게 맞이했다.
 
2010년 '어부지리' 인근에 장유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개소한 김 소장은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갈 만한 식당이 드물어 고민했다. 그는 식당에 대한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조사 활동을 벌이던 중 '어부지리'를 발견했다. "어부지리의 출입구는 지체장애인을 배려해 경사로로 돼 있다. 그래서 가족, 지인 들과 즐겨 찾는 곳 중의 하나가 됐다. 5년 째 단골손님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의 고향은 진주다. 그는 20대 때부터 굴삭기, 덤프트럭, 트레일러 등의 사업을 했다. 2006년 건설장비를 옮기던 중 차가 뒤집히는 사고가 나 척추를 다쳤다. 이후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지체장애인이 됐다.
 
그럼에도 김 소장은 모든 일에 적극적이다. 장유로 이사를 한 뒤에는 높은 경사로, 불편한 편의시설 등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런데도 이런 불편을 개선시켜 줄 장애인단체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직접 단체를 만들었다. 그는 "장유는 신도시인데도 장애인들이 정보를 얻거나 활동하기에는 너무 불편했다. 2008년부터 2년 간 서울 등의 장애인 관련 단체들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했다"면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장유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만들었다. 4명이 매달 20만 원씩 부담해 1년 7개월 동안 일하면서 고생한 덕분에 지금의 센터를 만들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장유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주말농장, 동료상담, 장애인활동지원 등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농어와 참돔이 가지런히 담긴 회 한 접시와 가을이 제철인 전어가 상에 올랐다. 부침개, 계란찜 등 밑반찬도 함께 차려졌다. 김 소장은 "고기의 싱싱함 못지않게 회를 써는 방법이 중요하다. 얇게 썰어야 하는 복어를 제외하고, 활어는 식감이 제대로 느껴지도록 적당한 두께로 썰어야 맛이 있다"고 설명했다.
 
▲ 모듬회와 전어회, 밑반찬이 고루 갖춰진 상.

김 소장의 설명을 듣고 난 뒤 회 한 점을 고추냉이를 살짝 푼 간장에 톡 찍어서 먹어보았다. 김 소장의 말대로 두께가 적당해서 식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전어회로 젓가락을 옮겼다. 전어를 집어 참기름과 쌈장, 잘게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를 넣은 양념된장에 찍어 먹었다.
 
여기서 잠깐. 가을 전어가 유명한 이유는 겨울을 나기 위해 몸에 지방을 축적하기 때문이다. 전어는 잔뼈가 많아 먹기 불편한데 뼈째 먹으면 칼슘을 다량 섭취할 수 있다. 전어의 불포화지방산은 혈액을 맑게 하기 때문에 성인병도 예방한다.
 
김 소장은 "봄에는 도다리와 볼락, 여름에는 병어, 가을에는 전어다. 제철 과일과 채소가 몸에 좋듯이 생선도 철에 따라 먹는 게 좋다. 가을 전어의 고소함은 가을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며 웃었다.
 
김 대표는 "장유 관동동 팔판마을에서 친척이 '어부지리'를 운영했었다. 거기서 일을 배워 삼문동에 가게를 차렸다. 맛의 비법이라면 매일 활어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고 질 좋은 것으로만 손님 상에 올린다는 것이다. 다른 횟집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다"고 말했다.
 
한 점 한 점 줄어드는 회를 보고 있으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에는 소주가 빠질 수 없다며 김 소장이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싱싱한 회 한 점에 소주 한 잔을 걸치면서 김 소장은 장애인 자립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 어부지리 삼문점 건물 전경.
김 소장은 "비장애인은 누구나 자기결정권이 있지만 장애인은 이동권과 자기결정권이 보장돼 있지 않다. 항상 부모들이 장애인을 대변해 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폐장애, 다운증후군 등을 앓는 장애인은 부모가 나이가 들면 공동생활시설로 보내진다. 장애인에게 자기결정권이 주어지면 책임감이 자라고 삶이 더 풍요로워 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어부지리처럼 장애인에게 문턱이 낮아지는 음식점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들은 가고 싶은 음식점이 있어도 높은 문턱 때문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작은 배려'가 필요하다. 음식점, 편의시설 등의 문턱이 낮아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도우며 잘 사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어부지리/삼문점-번화1로 114번길 7(055-313-8842), 관동점-계동로 23번길 25(055-313-0248). 자연산 모듬회 4만~6만 원, 모듬회 3만~5만 원.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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