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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라고 붙이나"… 빈객들 마음속에 이름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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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5.09.16 09:23
  • 호수 239
  • 12면
  • 주정이판화가(report@gimhaenews.co.kr)

'아주 작은 집' 오두막보다  더 작은 집
 차 마시고 술 마시고 책 읽고 잠자고
 한 몸 건사할 수 있는 '너와지붕 휴식처'

 이오 선생 빈 묘비 생각에 이름 안 지어
 비어 있어도 텅 빈 것이 아닌 나무판 제멋
'안금다실'·'시 읊는 주막'으로 부르기도

   
 
우리 집 위채와 아래채 사이에 두어 평 남짓한 토굴 하나가 있습니다. 토굴은 말 그대로 땅 파서 만든 굴이지만 통상 작은 흙집을 뜻합니다. 아주 작은 집을 오두막이라고 합니다. 토굴은 그보다도 더 작은 집에 해당할 것입니다. 흔히 선승이 안거하는 구도처를 일컫기도 합니다. 언감생심! 오해마시라. 내가 뭐 선승처럼 살거나 선승 흉내라도 내겠다고 토굴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내겐 얼토당토 않을 뿐더러 만약에라도 그런 구도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그리 사느니 죽고 말지, 할 정도로 전혀 그럴 깜냥이 아닙니다.
 
내가 작은 토굴을 마련한 것은 단지 차 마시고 술 마시고 책 읽고 그러다가 졸음이라도 오면 벌러덩 드러누워 코골며 낮잠 한숨 즐길 수도 있는 고만한 공간을 마련하고자 한 것일 뿐입니다.
 
토굴이라는 것이 본시 한 몸 건사할 수 있는 거처일진데 요샌 뒷방 안거스님 중에 수행은커녕 말만 토굴이지 아방궁 지어놓고 에어컨 틀고 대형냉장고에 온갖 음식 채워두고 그도 성이 덜 차 시중보살까지 곁에 두고 호의호식하는 스님도 있다고 합니다.
 
처음 토굴을 지을 때 지붕을 볏짚으로 이었습니다. 지금은 너와지붕으로 바뀌었습니다. 너와지붕이 초가지붕에 비해 시골정취는 덜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초가지붕은 매년 새로 이어야하는 것이 너무 성가십니다. 적어도 장정 넷은 붙어야 할 만큼 품이 많이 듭니다. 지금은 품앗이를 하는 시절이 아닐뿐더러 이웃끼리라 할지라도 일손 빌리면 품삯을 제대로 쳐줘야 하는 만큼 품삯이 만만찮게 들어갑니다. 그리고 품삯도 품삯이지만 그에 비해 실용성은 그다지 좋은 편이 못됩니다. 너와지붕은 초가와 달리 한 번 얹으면 한 십 년은 끄떡없습니다. 너와지붕은 박 넝쿨 못 올리는 것 빼고는 때깔이나 정취 면에서 별 차이가 안 납니다. 너와지붕은 원래 볏짚 귀한 산골에서 지붕을 얹는 방식입니다. 앞들 너른 평지가 아닌 산골 둔덕 위에 있는 내 집 토굴에는 너와지붕이 맞기도 합니다. 그래저래 바꾼 것입니다.
 
토굴을 지어놓고선 정자 흉내라도 내보련 듯이 잘 손질한 피나무 판때기를 준비하고 한학을 하는 친구에게 청하여 그럴싸한 당호도 하나 받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판때기에 당호를 새길 참에 불쑥! 함안 고려동(高麗洞)에 은거한 모은(茅隱) 이오(李午) 선생의 백비 생각이 났습니다. 이오 선생은 고려가 망하자 조선의 벼슬을 마다하고 고려인들이 모여들었던 경기도 땅 두문동에서 뜻을 같이하는 만은(晩隱) 홍재(洪載) 조열(趙悅) 등과 함께 남쪽으로 유민의 길에 오릅니다. 그들은 경상도 함안군 신안 모곡에 터를 잡고 고려동이라 이름하고 고려전(高麗田) 3천 평을 일구어 자급자족하며 평생 담장 안을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고려인의 절개를 대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생은 수가 다해 임종을 앞두고는 나라 잃은 백성의 묘비에 무엇을 쓰겠냐며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백비를 세우게 일렀습니다. 이오 선생의 백비 생각이 나자 퍼뜩 내가 뭐라고, 이거 가당찮다, 는 생각이 들어 당호 새기기를 그만두고 빈 나무판때기 그대로를 걸었습니다. 토굴 따위에 웬 당호냐? 그것도 빈 나무판때기를? 그래도 안 건 것보다 보기에 그럴 듯 해보입니다. 토굴에 빈 판때기를 건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팔삭 기와지붕의 향가나 멋진 정자의 고색창연한 당호 판의 멋에는 못 미치더라도 그럭저럭 때깔은 좀 납니다. 참, 애써 당호를 짓고 글씨까지 써 준 한학을 하는 친구는 당호를 새기지 않은 채 빈 판때기만 걸려 있는 것을 보고는 쓰지도 않을 것 뭐하려 부탁했나,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뭐야, 하면서 삐쳐서 한동안 발길을 끓기도 하였습니다.
 
   
▲ 주정이 화백이 당호가 비어 있는 토굴 앞에서 꽃들을 살피고 있다.

사람이나 사물에 붙이는 별호를 명호라고 하며 집은 당호라 하고 사람은 아호라 합니다. 옛 서화가들은 여러 개의 아호를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김정희는 추사 외에도 완당(玩堂)·예당(禮堂)·시암(詩庵)·노과(老果)·농장인(農丈人)·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 600여 개의 아호를 사용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 유배에서 해제되고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에는 용정이라 썼는데, 이는 은총으로 해방된 느낌을 표현한 것입니다. 추사의 아호 변천을 보면 당신의 사념(思念)과 심회(心懷)에 세계관과 인생관까지 얹어 세상과의 소통의 방편으로 사용 한 것이 아닐까, 라고 짐작합니다. 성리학자 조식(曺植)의 아호 남명(南冥)도 장자에 나오는 용어로서 노장사상에 관심을 가진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듯 아호는 단지 칭하기 위한 별호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담아냅니다. 당호도 다를 바 없습니다. 토굴의 용처나 풍광 그리고 주인장의 심상 따위를 담아냅니다. 반면에 명호는 그 의미에 따른 하나의 이미지로 갈무리되는 한계가 있기도 합니다. 추사가 많은 아호를 사용한 연유가 어렴풋이나마 짐작가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 대목이 내가 토굴에 빈 판때기를 걸어 놓은 속내 그중의 한가지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사람의 감성이라는 것이 차 마실 때 다르고, 술잔 기울일 때 다릅니다. 창가에 앉아 아침 해를 맞이하거나, 마당에 깔리는 땅거미를 바라볼 때가 다릅니다. 계절마다의 정취 또한 다를 것입니다. 그때그때에 걸맞은 토굴의 당호를 지어본다면 재미있고 흥미롭지 않을까요? 아무튼 우리 집 토굴의 당호 판때기는 아직 빈 그대로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당호 짓고 글씨 써왔다가 시근 없는 내 말투에 삐쳐서 발길을 끓었던 그 친구가 요즈음엔 가다오다 한 번씩 들릅니다. 역시 내 말투야 원래 그러니까 개의치 않았고 빈 판때기를 달아둔 연유를 들어보니 터무니없는 소리 같기도 하고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며 오해가 풀렸다고 허허 웃었습니다.
 
지난 세월동안 우리 집 토굴에는 많은 빈객이 납출하였습니다. 당호 판때기야 빈 그대로지만 빈객의 마음속에는 구구각색의 당호가 새겨지고 지워지곤 하였습니다. 간혹 빈 판때기를 물끄러미 쳐다 볼라치면 그냥 빈 판때기가 아닙니다. 온갖 당호가 새겨졌다 지워지고 하는 것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그 수량과 사연을 책으로 엮어도 몇 책은 될 성 싶습니다.
 
   
▲ 토굴에는 아궁이가 있어 나무로 불을 땔 수 있다.

우리 집 토굴에서 차 마시는 이들은 마을 이름을 빌어 '안금다실'이라 합니다. 자주 드나드는 술꾼 누구는 토굴에서 술 마실 때마다 모은 이오와 김후, 두 선비가 한 구절씩 지은 시를 읊는 것이 18번이기도 합니다. 그는 '시 읊는 주막'이라 하기도 합니다. 그가 왠만큼 주기가 오르면 읊는 18번은 토굴 분위기에 그럴싸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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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이 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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