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월곶을 기억해야 한다. 곶이란, 육지가 바다 쪽으로 가느다랗게 뻗어 있는 곳, 그러므로 월곶이란, 달이/그것도 초승달이 놓여 있는 모습이어서, 마치 그리움이 살며시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지. 그러면 그 눈가에서/기러기가 날아 왔단다'
 
삶에 뿌리 내린 문학이 얼마나 큰 감동을 자아내는지 작품으로 보여주는 김신용 시인의 신작시집 '바자울에 기대다'에 수록된 시편 '월곶에서'의 첫 구절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월곶이 어떤 모양으로 바다를 향해 뻗어나갔는지 눈에 보일 듯하다.
 
1988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자신이 거처하고 있는 '장소'를 과거의 기억에 대한 수단으로 삼는다. 그렇게 얻은 과거의 기억과 현실의 체험을 담아, 머물고 살았던 땅을 매번 시에 담아냈다. 전남 완도군 신지도에 살던 시절인 2005년, 시집 '환상통'을 냈다. 충북 충주의 산골마을인 도장골에 살면서는 '도장골 시편'을 묶어냈다. '도장골 시편'은 2006년 도서출판 '작가'가 시인, 평론가, 편집인 등 150명을 대상으로 한 해 전 발표된 시편 가운데 가장 좋은 시를 설문 조사한 결과 20회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기도 했다.
 
가족들은 이사하는 데 넌덜머리를 낼 정도라 하지만, 시인은 거처를 옮길 때마다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시집을 낸다. 이번에 나온 시집 '바자울에 기대다'는 2006년부터 시인이 살고 있는 경기도 시흥시 인근의 소래포구가 펼쳐진다. 그래서 시마다 '섬말 시편'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는다. 시에는 광활하고 장엄한 포구가 아니라 소외되고 잊혀져 가는 작은 해안가의 사물과 풍경들이 보인다.
 
시인이 주변의 사물과 풍경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는 걸 시를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제비와 겨루다'에서는 처마 끝에 와서 집을 짓는 제비의 습성을 전해준다. '섬에 살 때,/비만 오면 요란스러운 양철 지붕 밑으로 무시로 제비들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제비들은 빈집에는 둥지를 틀지 않았다. 꼭 사람이 사는, 인적기가 있는 집의 처마 밑에 집을 지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에서는 빈집에 둥지를 만들어 보내고 싶은 시인과, 깨끗한 새집 마다하고 끝까지 시인의 집 처마에 둥지를 트는 제비의 한 판 겨루기가 담겨 있다.
 
시집 표제시인 '바자울에 기대다'에서도 시인이 세상과 어우러지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대·갈대·수수깡 따위로 발처럼 엮은 것을 바자라 하고, 바자로 엮은 울타리를 바자울이라 한다. 말이 울타리지 골목의 집의 경계를 알려주는 정도일 뿐인, 도시적 개념으로 보면 허술한 이 바자울에 기대는 시인의 속마음은, 그 속에서 원초적인 따뜻함과 생명을 찾고 있는 것이다.
 
김신용 시인은 그의 삶 때문에도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45년 부산에서 태어나 14세의 나이에 부랑을 시작한 시인은 다양한 인생경험을 했고, 마흔이 넘어 1988년 무크지 '현대시사상'으로 등단했다. 등단한 해에 지게꾼 등 밑바닥 생활체험을 다룬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로 문단에 충격을 주었다. 두 번째 시집 '개 같은 날들의 기록', 세 번째 시집 '몽유 속을 걷다'에서 김신용 시인 특유의 '부랑의 미학'을 통한 악마적인 삶을 묘사해 집중조명을 받은 바 있다.
 
거처를 옮기며 시를 쓰는 까닭을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한다. 시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사물을 잠시 보고서는 알 수 없지요. 그 속에 들어가 살며 육화된 시, 만져볼 수 있는 시를 쓰야 제 스스로 공감이 갑니다." 시인 스스로 주변의 자연과 사물에 녹아들어 하나가 된 뒤 얻은 것을 찾아내 시로 빚어내는 것이다. 시인은 또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길 궁리를 하고 있다. 동해안이나 남해안의 작은 어촌마을을 물색 중이라니 몇 년 뒤에는 그 곳에서 길어 올린 시를 읽을 수 있겠다.

▶김신용 지음/천년의시작/164p/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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