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소를 하는 아버지 옆에서 작은 도끼와 칼을 직접 만들던 소년이 있었다. 불에 달군 쇠를 다루느라 데기도 하고, 망치에 손가락을 찧어 멍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쇠로 뭔가 만들기를 좋아했던 소년은 훗날 나무를 다루는 서각인이 됐다. 김해에서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이 농기구를 구하고 수리하느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는 '동상동 동광철공소집 아들'이었던 서각인 배기도(58) 씨다.
그의 떳다리 공방을 찾아가 보았다.

부친 옛 '동광철공소' 40년 간 운영
어릴 때 대장간서 칼·도끼 등 만들어

나무옹이에 원앙 새겨 '서각 인연'
한지공예가 부인과 전시회 여는 게 꿈

배기도의 떳다리 공방은 주촌면 천곡리 용덕마을 소망길 247에 있다. 공방 앞은 용덕마을의 옥답이다. 어느새 누렇게 익어가는 벼가 강물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빛이 더 짙어졌네요. 금세 황금들녘이 되겠어요." 배기도는 논을 멀리까지 돌아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담한 집 한 채가 있다. 서각 작품을 진열하고 손님을 맞는 공간이다. 작업실은 마당 오른쪽에 따로 있다. "용덕마을 앞에 떳다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름을 따서 떳다리 공방이라고 지었지요." 지금은 없어진 마을의 한 지명을 배기도의 작업실이 오래 이어갈 모양이다. 작업실에는 나무를 자르는 큰 기계, 잘라둔 나무판, 작업도구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눈에 보이는 곳마다 서각작품이 걸려 있었다.
 

▲ 서각인 배기도 씨.
배기도는 1958년 동상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배찬환)가 열여섯에 일본에서 철공업을 배우고 돌아와서 대장간을 열었지요. 동상동 516번지 본가에서 대장간을 40여 년 간 하다가 돌아가셨지요. 동광철공소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대장간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겠어요."
 
김해에서 농사를 지었던 사람이라면 대부분 동광철공소를 기억한다. 낫이나 호미 등 농기구는 물론 식칼을 이곳에서 안 사 간 김해사람이 없단다. 그리고 이곳에서 안 만든 물건이 없었단다. "지금도 동상동시장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네 부친이 만든 식칼만한 칼이 없네. 아직도 쓰고 있네'라는 인사말을 들어요."
 
대장간에서는 작은아버지, 어머니도 함께 일했다. 그도 형과 함께 아버지를 도왔다. 그러면서 가지고 싶은 걸 혼자 따로 만들기도 했다. 아버지가 칼이나 도끼를 만들 때 옆에서 보고 있다가 똑같이 만들었다. 장식용 미니어처처럼 작은 칼과 도끼였다. 크기는 작지만 만드는 과정은 같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연장을 만든 셈이었다. 아버지는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해 주고 많이 예뻐해 줬다.
 
배기도는 지금도 서각 작업 도구로 사용할 칼을 직접 만들어서 쓴다. 쇠를 가스에 담금질하면서 열 도장 처리하고 망치로 두드려서 만드는 것이다. "금속공예도 해보고 싶어요. 쇠를 불에 달구고 두드리고 하는 걸 좋아해요. 화개장터에 가면 꼭 대장간에 들러 한참 머물곤 해요. 아버지가 그리워서요."
 
경남농기구장려대회에서 아버지가 만든 파종기가 도지사상을 받아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김해에 그 기계가 많이 보급됐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농기구를 수리하거나 사기 위해 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김해는 물론이고 경남 소식을 알려면 동광철공소에 가라는 말도 있었다. 장날이면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머니는 그들의 식사 준비로 바빴다. 김장을 500포기씩 담그곤 했다.
 
'서각인' 배기도를 인터뷰하러 갔는데 대장간 이야기가 훨씬 더 재미있었다. 김해는 물론이고 인근 고장에서도 사람이 밀려들었다는 동광철공소는 배기도의 아버지가 환갑 나이에 세상을 떠난 1983년까지 영업했다. 다른 사람이 철공소를 넘겨받았지만 대형공장에서 농기구들을 대량생산하는 시대가 되자 없어지고 말았다.
 
▲ 떳다리 공방의 응접공간.
배기도는 김해농공고등학교 전기과에 연구생으로 입학했다. 3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3학년 때 경남학생기능대회에서 2등을 차지했다. 학교가 생긴 이래 첫 출전이었다. 전국대회에도 나갔지만 낙선했다. 저런 기계도 있구나, 저렇게 사용하는구나, 라며 공부하러 간 기분이었다. 그는 전문대를 졸업한 뒤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했다. 근무를 하면서 공부를 해 부경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배기도가 나무를 만지기 시작한 것은 산에 오르다 나무옹이 하나를 눈여겨보았던 일 때문이었다. "아내와 함께 무척산을 오르고 있었어요. 발밑에 나무뿌리 하나가 걸렸습니다. 옹이 박힌 소나무 뿌리가 하나 뒹굴고 있었어요. 특이한 형상에 시선이 끌렸습니다. 그걸 칼로 깎아 새 모양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원앙새를 만들었지요. 자연을 이용해 무엇을 만든다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아내가 나무를 한번 다루어보지 보지 않겠느냐고 권하더군요."
 
배기도의 부인은 한지공예가이며 한지화가인 박경희 씨다. 그는 주말마다 등산을 다니며 나무를 주워 와 조각을 계속했다. 옹이와 가지 등 원래의 모양을 살리면서 만드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부인의 소개로 2005년 곡산 이동신 선생을 찾아가 배움을 청했다. "곡산 선생 작업장에 처음 갔을 때 이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할 수 있다,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이동신의 가르침을 받아 나무를 파기 시작하면서 배기도는 그의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처음에 나무판에 동그라미부터 파기 시작했지요. 창칼 쓰는 법을 익히는 기본이지요. 원의 둘레선을 팔 때는 나무를 파내는 각도를 45도로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 작업을 하면서 전통각의 기본인 음각, 양각, 음양각, 음평각을 착실하게 익혔습니다." 그는 기본을 배우지 않고 서둘러 작품을 욕심내면 세밀한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떳다리 공방의 작업공간.
배기도는 자정께에도 궁금한 게 있으면 이동신을 찾아가 물어보았다. 제발 좀 가라고 할 때까지 옆에 버티고 앉아 배웠다. 이동신은 서각을 하려면 글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옥편을 찾아 그 의미부터 새기라고 했다. 나무를 만지면서 인생의 좌표를 새로 잡아가던 중요한 시기에 이동신은 그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는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인연이다. 지금도 제자이지만, 영원히 제자"라고 말했다.
 
발밑에 걸린 나무뿌리 하나가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 주었고, 이동신이 그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이동신은 그에게 '금촌(金村)'이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 김해의 작은 마을에서 오래 살라는 뜻을 담은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호다. 그는 2008년 내동의 집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2013년 떳다리 공방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그의 호 '금촌'은 바로 이곳이 아닐까.
 
배기도에게 기억에 남는 작품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다. 그가 진주개천예술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뒤 한 지인이 특별한 부탁을 해왔다. 밀양박씨 문중에서 진주의 재실에 걸 기문을 서각으로 만들어달라고 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서각작품 제작 의뢰를 받았죠. 문중 재실에 건다길래 정성을 다했지요. 한자 600자를 음각으로 새겼습니다.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최근에는 김해가야테마파크 왕후전 현판 작업을 했다. 갈뫼 최부림 선생이 글을 쓰고 그가 새겼다.
 
"한동안 한문서각을 했지요. 요즘은 한글 서각 작품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에도 좋은 말이 많잖아요. 또 누구나 보고 알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는 캘리그래퍼 한승찬을 찾아가 한글 캘리그라피도 배우고 있다. 작품을 위해 무언가 배우러 다니는 것은 큰 기쁨이라고 한다.
 
올해는 나무와 금속을 접목해 '어머니', '아버지'라는 단어를 작품으로 만들어 보았다. 도판, 옻칠, 금박 등 다양한 소재를 나무와 어우러지게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작품 재료와 기법을 연구해 실력을 쌓아가는 한편 주제도 매년 바꾸어가면서 작업한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저는 새로운 시도를 할 생각입니다. 현대서각이 얼마나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지 만들어 가고 싶은 거지요."
 
배기도는 서각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게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저도 이제는 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정년 퇴임이 3년 남았군요. 그 후에는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겠지요. 그때가 기다려집니다. 옆에서 많은 도움이 되어 주었던 아내와 함께 한지와 서각이 어우러지는 부부전시회를 여는 게 꿈입니다. 열심히 작업해야지요." 

>>배기도/㈔한국서각협회 이사·김해지부장, (한)한국미술협회 김해부지부장, 개천미술대전·김해미술대전·경남미술대전 초대작가. 성산미술대전 운영·심사위원 역임.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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