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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찾기'에 가슴 졸이며 보낸 1983년 가을내 기억 속의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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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5.09.23 10:05
  • 호수 240
  • 5면
  • 취재보도팀(report@gimhaenews.co.kr)

   
▲ 홍태용 새누리 김해갑 당협위원장
황해도 출신 아버지, 할아버지와 피난
가족 생사 모른 채 혈혈단신 김해 정착
내달 상봉행사, 실향민 애환 달래주길


1983년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그 해 추석은 우리 가족, 아니 아버지에게는 매우 중요하면서 가슴을 졸이게 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황해도 출신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13세의 나이로 할아버지와 함께 단 둘이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 도중 강원도에서 할아버지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강원도 어딘가에서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어린 나이인데다 전쟁 중이어서 나중에 묘소의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우여곡절 끝에 서울을 거쳐 후퇴하는 군용트럭을 얻어 타고 내려온 곳은 지금의 삼계동에 있었던 김해 공병부대였다.

아버지는 13세의 나이로 당시 동광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졸업한 후에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운전을 배웠다.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평생 가족을 위해 운전을 평생직업으로 삼았다.

다른 이산가족들처럼 아버지의 평생 소원은 이북에 남은 가족들의 생사 여부라도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1983년 6~11월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이산가족 찾기 특별생방송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일손을 놓고 하루종일 TV만 바라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산가족 신청을 해 놓고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다. 당시 생방송을 통해 이산가족 1만여 명이 상봉을 했다. 실향민과 가족들은 모두 마치 자신들의 일인 양 눈물과 환희로 밤을 지새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이산가족 신청 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초조함과 허탈함으로 나날을 보내다 두 차례 방송 현장에 다녀오기도 했다.

생방송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무렵 방송국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아버지의 사촌 형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미국에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사촌 형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일단 전화 통화를 했다. 알고 보니 실제 사촌 형이었다. 아버지는 사촌 형을 극적으로 상봉한 것이었다. 내게는 처음 당숙이 생긴 것이다.

당숙은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에 남아 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했다. 아버지의 가족들은 전쟁 통에 뿔뿔이 흩어져 당숙도 생사를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사촌 형을 극적으로 만나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희미한 기억 속의 가족사는 그렇게 끝까지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이런 이유로 그해 추석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한 평생 실향민으로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살다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일희일비의 감정표현을 다 하지 않았지만, 추석이나 설 명절 때마다 아버지의 눈빛 속에서는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외로움을 볼 수 있었다.

며칠 후면 추석 명절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5년이 지났다. 대한민국의 이산가족들은 가족들의 생사 여부라도 알기를 소망한다.

시간이 갈수록 희망의 불씨가 약해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오는 10월 또 한 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몇몇 가족들의 한은 조금이나마 풀리겠지만 다른 이산가족들의 아픔은 언제 끝이 날지 알 수가 없다. 올 추석 모든 실향민 가족들의 행운을 기원한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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