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김해시 재현 전문업체' 선정
수십 번 실패 후 성공률 60%로 올려
최근 시 예산지원 끊겨 맥 단절 우려

늘씬한 마신에 철 갑옷이 입혀져 있다. 방패를 들고 투구와 갑옷으로 중무장한 무사가 말 등에 올라 용맹을 뽐낸다. 말의 엉덩이에는 뿔잔이 좌우 대칭으로 솟아 있다. 김해시청은 물론 김해 곳곳에 설치된 김해의 상징물인 '기마인물형토기'다.
 
김해와 가야를 대표하는 기마인물형토기 등 가야토기를 재현하는 도예인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함안박물관, 합천박물관 등 전국 박물관에서 '가야토기 명인'으로 유명한 '두산도예' 강효진(63) 씨다.
 

▲ 두산도예 강효진 씨가 기마인물형토기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수미lsm@

두산도예는 김해분청도자관에서 5분 거리인 가야어린이집 뒤쪽에 있다. 김해시가 20여 년 전 지정한 '금관가야토기 재현 전문 도예 업체'다. 당시 강 씨가 재현한 토기는 바로 기마인물형토기였다. 그가 가야토기를 빚을 수 있었던 것은 부친 고 강병희 씨의 영향이 컸다. 그는 흙을 빚는 '옹기장'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란 덕에 자연스럽게 도예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어릴 때 옹기를 굽는 아버지 곁에서 흙 장난 하기를 좋아했지요. 자연스레 옹기를 빚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답니다.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았는지 4남2녀 형제 중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 도예인입니다. 우리 가족도 3대 째 '도예인' 가족이고요."
 
진례에서 강 씨 성을 가진 도예가는 대부분 강 씨의 형제, 아들, 조카 들이다. 장남인 강 씨 외에 동생인 강호용(선아도예), 강유신(용원도예), 강임선(영시흥), 강석순(영선도예) 씨도 도예인이다. 강 씨의 장남 강상석(예다움도예), 조카 강수석(수민도예) 씨도 도예공방을 차렸다. 차남 강찬석 씨는 두산도예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분청사기그릇 등 각종 도자기를 만들었던 강 씨는 금관가야토기 재현 전문 도예업체로 선정된 이후 시의 지원금 등으로 기마인물형토기를 재현하는 데 집중했다. 2천 년 전 대가 끊긴 토기를 재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신라와 백제 지역이었던 경주, 부여 등에서는 도예인들이 서로 합심해 의견을 나누고 연구하며 옛 토기를 재현한다. 하지만 기마인물형토기는 오로지 출토된 토기만 보고 혼자 연구했다. 처음에는 성공률이 10% 밖에 되지 않았다. 수십 번의 실패 끝에 지금은 성공률을 60%까지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기마인물형토기는 김해의 흙과 점토로 만든다. 나팔모양 굽다리, 말과 무사, 방패 등을 하나 하나 만들어 붙인다. 강 씨는 재료 선정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찬란했던 금관가야의 역사를 간직한 김해의 숨결을 그대로 넣기 위해 열정을 쏟는다.
 
두산도예를 둘러보면 마치 박물관에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수레바퀴모양토기, 굽다리접시, 뚜껑접시 등 다양한 가야토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재현한 기마인물형토기. 사진=이수미
강 씨는 올해부터는 기마인물형토기 등 가야토기를 굽는 게 어려워졌다고 한다. 시의 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는 "기마인물형토기 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적어 제품을 판매하기는 어렵다. 대부분 박물관 등에서 사 간다. 적지 않은 돈이 들기 때문에 시의 지원이 끊기면 가야토기를 생산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재현을 통해 발전해 오던 가야토기의 맥이 끊겨 버렸다. 시의 지원이 없다면 가야토기 재현기술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밖 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강 씨는 ㈔김해도예협회 2~5대 이사장을 맡았다. 이 때문에 매년 열리는 김해분청도자축제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크다. "다른 시·도의 경우 지자체가 축제를 기획하고 예술인은 참여하는 데 그칩니다. 김해분청도자축제는 시의 지원을 받지만 20년 전부터 축제 기획과 운영을 모두 도예인들이 도맡아 왔습니다. 도예인들이 직접 참여하고 이끄는 축제는 전국 어디에도 없지요. 김해시민과 시의 많은 관심으로 김해분청도자축제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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