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소리예술단의 '악동'들이 제26회 김해예술제에서 신나게 판굿 공연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일 김해문화의전당서 화려하게 개막
식전 '와일드크루' '정글러' 청소년 무대  
큰북 연주 '기원 굿' 모두의 안녕 기원
북소리 마루홀·김해 밤하늘 수놓아
한국무용가 강옥영 '태평무' 첫 무대 장식

시대를 이끌고 나가는 현실적인 힘은 정치와 경제다. 그러나 시대의 수준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문화와 예술이다. 긴 시간의 흐름에서 보면 한 시대의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것은 당대의 문화와 예술이기 때문이다.

지난 6~7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각종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됐을 때였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니까,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다니는 건 정말 여유있고 한가할 때나 하는 일이었다. 일상생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메르스 때문에 각종 공연이 취소되니 사는 게 재미가 없어지더라."

그렇다. 누군가가 곁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쓸 때 사람들은 행복을 얻는다. 삶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고, 일상생활의 단조로움과 노동의 힘겨움을 달랠 수 있고, 일할 맛이 난다.

▲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열린 개막제 자리를 메운 관객들.
지난 6~11일 제26회 김해예술제가 열렸다. 김해예술제는 문화, 예술 작품으로 김해시민들의 마음을 달래 온 지역 예술인들의 현재 활동과 작업을 한 눈에 보여주는 축제다. 당대 지역 문화, 예술의 수준과 예술인들의 활동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행사다. 김해예술제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김해지회(김해예총·지회장 장유수)가 주관하는 행사다. 이 단체에는 무용협회, 국악협회, 음악협회, 연극협회, 연예예술인협회, 문인협회, 미술협회, 사진작가협회, 생활예술인협회 등 9개 단체가 소속돼 있다.

6일 오후 6시 30분 김해문화의전당에서 김해예술제의 막이 올랐다. 오후 5시께 전당 로비에는 초대권과 좌석권을 교환하려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김해의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찾아왔다.

다른 일부 공연에는 개막일 만큼 관객이 찾아오지 않았다. '홍보가 미흡했다'든가, '늘 오는 사람들만 왔다'든가 하는 말이 나왔다.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 예술 현장에는 무대에 서는 사람과 가족들, 다정한 벗들이 먼저 찾아오는 법이다. 어디서나 그렇게 시작한다. 그러다 지갑을 열어 입장권을 사는 진정한 관객이 되는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많고 적음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기를. 그것이 성공과 실패를 규정짓는 것은 아닐 테니까. 모든 행사는 뒷날의 영광을 위한 한걸음 한걸음인 것이다.

개막식의 식전행사는 지난해 수로전국청소년예능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와일드크루'와 올해 대상을 받은 '정글러'의 공연으로 열렸다. 훗날 이 땅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며 살아가게 될 미래의 예술인들. 청소년들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춤은 금세 장내를 열기로 달아오르게 했다.

청소년들의 무대가 끝나자 어둠 속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두두둥, 둥둥, 두두둥…. 누가 그랬던가. 북은 사람의 심장소리를 본떠 만든 악기라고. 무대가 서서히 밝아지고 북소리가 커지자, 심장 박동도 그에 따라 반응하는 기분이었다. 무대에서는 한국국악협회 경남지회 천승호 지회장의 기원공연이 펼쳐졌다. 큰북을 연주하는 기원 굿 형태의 공연. 김해예술제의 시작을 알리며 지역 예술인들과 함께 새롭게 도약하고 화합한다는 의미와 행사기간 동안 모든 사람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모두 담았다. 북소리는 마루홀을 울리고 김해문화의전당을 울리면서 김해의 밤하늘로 널리 퍼져 나갔다.

김해예술제의 첫 공식 공연은 무용협회가 장식했다. 강옥영 한국무용가의 태평무가 첫 무대를 열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춤. 왕비의 화려한 궁중복식은 단번에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섬세하고 우아하면서 절도 있는 동작과 독특한 발 구르는 동작이 특징이었다. 부산시무형문화재 동래 한량춤 이수자인 김갑용 씨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지전춤을 선보였다. 망자를 위한 무속제례인 동해안 씻김굿에 기본을 둔 춤이었다. 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의식무였다. 양반 풍자 무용인 '희화도'는 한량과 각시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한국 무용극. 한량이 과거를 보러 간 사이 땡중이 각시를 유혹하지만 한량과 각시가 다시 만난다는 내용이다. 대사 한 마디 없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여서 관객들은 모두 무대에 푹 빠져 들었다.

예술제 둘째 날에는 국악협회의 '꽃등 들고 임 마중 가네'가 공연됐다. 모듬북, 사물놀이, 소고춤, 경기민요, 호걸양반춤. 남도민요, 판굿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전통 악기들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 공예가들이 시민들을 위해 개설한 체험부스.
공연을 보러 온 관객 중에 외국인이 있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창원 대산고로 교환교사 연수를 하러 왔다는 고등학교 영어교사 제인 호지스 씨였다. 창원 대산고 신용남 교사, 학생들과 함께 행사장을 찾은 그는 한복을 입은 국악협회 회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호지스 씨는 "한국 드럼(장구)를 치는 빠른 손동작에 놀랐다. 머리에 단 리본을 돌리는(상모놀이) 건 처음 보았다. 깜짝 놀랐다. 너무 근사했다. 저런 연주를 하자면 동작이 빨라야 하면서도 굉장히 영리해야 할 것 같다.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고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해문화의전당은 무척 아름다운 홀이다. 김해가 예전에 왕국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김해의 예술인들이 공연한 한국 전통음악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김해를 기억하겠다"고 덧붙였다. 대산고 학생들도 "국악공연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우리소리예술단의 판굿이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다른 협회들의 공연은 예술제 마지막 날까지 이어졌다. 음악협회의 '클래식과 함께 가을의 향기'는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으로 김해의 가을밤을 적셨다. 연극협회의 연극 '택시'는 택시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인생의 적나라한 단면을 보여 주었다.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무대였다. 생활예술인협회와 연예예술인협회는 음악과 노래가 함께하는 즐거운 공연으로 예술제의 대미를 장식했다.

▲ 공연을 마친 뒤 인사를 하는 국악협회 공연 출연자들.

김해문화의전당 안에서 공연이 열리는 동안 김해 곳곳에서는 다른 볼거리와 체험행사가 진행됐다. 김해문화의전당 애두름마당에서는 사진작가협회 회원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김해의 자연과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카메라 렌즈에 담은 사진작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공예가들의 체험부스에서는 아기자기한 생활소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었다.

국립김해박물관 가야누리관 전시실에서는 미술협회의 '대한민국미술대전 수상작품전'이 열렸다. 김도형 작가의 '나는 누구인가'를 비롯해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상을 받은 김해 미술인들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였다. 김해예총회관 전시실에서는 문인협회 시화전이 열렸다. 문인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무수한 마음의 흔적이 담긴 시들이었다. 시는 아름다운 사진을 배경으로 한 액자에 담겼다. 시들을 천천히 한 편씩 읽으며 걸음을 옮기는 동안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렸다.

다른 분야처럼 문화, 예술의 중앙 집중화도 심각한 상황에서 지역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가는 지역 예술가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귀하고 고맙다. 김해를 풍요롭고 윤택하게 하는 그들의 예술 활동에는 시민들의 관심이 가장 큰 힘이다. 올해 예술제는 끝났지만 내년에 무대는 다시 열린다. 예술은 끝이 없는 영원한 현재 진행형이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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