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나는
흔들리고 있다
이응인 지음
나라말/144쪽
1만 원

밀양 송전탑 싸움 어르신 외침 담은 시
편리에 매몰된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

'바람을 걸러 내고/또록또록 강물 소리/풀어 놓자/발목이 까매지도록 뛰어다니는 아이들//그새 대추는 서너 놈씩/농부의 얼굴을 닮아 가고/담장에 매달린 호박/간이 부어/속에다 금덩일 키우네//더는 못 참겠다/들판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가을 햇살/환장할 일이네'
 
경남 밀양 세종중학교에서 28년째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응인 시인이 펴낸 여섯 번째 시집 <솔직히 나는 흔들리고 있다>에 실려 있는 '가을 햇살'이라는 시 전문이다. 가만히 속으로 시를 읽고 있으니 햇살이 고운 밀양의 가을 풍광이 눈에 그려지는 듯해 절로 기분이 '쨍' 하고 밝아진다. 들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잘 익은 곡식들의 함성에 귀가 환하게 열리는 듯하다. 
 
밀양 화악산 기슭 퇴로마을에서 작은 텃밭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시인은 마을의 풍경과 이웃의 소박한 정이 담긴 이야기, 자연이 뿌려 놓은 꽃과 새와 열매, 생명이 숨 쉬는 모습을 꾸밈없이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학교와 아이들의 모습도 따뜻하게 담아내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시편들은 그 울림이 더 깊고 넓어서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특히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하는 부분은 밀양 송전탑 싸움 현장을 지키는 할머니, 할아버지 들의 외침이 담긴 시편들이다.
 
학교에서 만나는 '푸른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들려주며 '까진 아이가 좋다/학교가 갑갑하다고 소리치는 아이/시키는 대로 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대드는 아이/교과서가 왜 이리 지긋지긋하냐고/구겨 버리는 아이/남이 친 장단에 춤추지 않고/제 발 장단에 흥겨운 아이//발랑 까진 아이가/좋다'라고 살짝 고백하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연의 일부분이 되어 소소한 일상으로 삶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한국전력공사와 정부가 밀어붙인 원자력 발전을 위한 송전탑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이런 잔잔한 일상은 사라지고 말았다. 고압 전기를 대도시로 보내기 위한 송전탑 건설에 맞서 싸우는 할머니, 할아버지 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담은 글들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국가는 힘없는 국민의 행복과 안전에는 등을 돌리고 거대 자본과 권력의 편에 서서 한평생 땅을 믿고 정직하게 살아온 그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아 버렸다. 투쟁의 장에서 함께 했던 시인은 이런 '나라에 살면서, 솔직히 나는 흔들리고 있다'라고 말한다. 
 
생명줄 같은 땅에 거대한 철탑을 세우려는 것을 막으려고 '아름드리 서어나무 끌어안고/"미안하데이"/"정말 미안하데이"/중얼대며 떨고 섰'는 평밭 할매, 밀양의 진산인 화악산에 '철탑 뽑을 때까지 싸운다고 산을 끌어안고 계시는' 할배·할매 들, 한전 용역들의 폭력에 맞서 싸우다 끝내 당신의 몸에 휘발유를 부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치우 어르신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시를 읽으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문하게 된다. 도시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그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시인은 평화로운 마을, 따듯한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와 송전탑 건설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의 몸짓을 함께 보여 주며 우리에게 자꾸만 질문을 던진다. 
 
가을 햇살이 환장할 정도로 눈부신 날, 편리를 위해 안전을 내어주고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해 자꾸만 고민하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 삶의 터전, 이런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시집을 읽고 있는 지금, 솔직히, 나도 시인처럼 흔들리고 있다.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절망의 흔들림이 아니라,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조용한 희망의 흔들림이다.


김해뉴스
이은주 시인
<신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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