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태프들이 김해예술제 개막에 앞서 무대 뒤에서 조명, 음향 등 각종 장치를 서둘러 설치하고 있다.

제26회 김해예술제가 지난 6~11일 김해문화의전당과 김해예총 등에서 공연, 전시·체험, 시민참여 등으로 나뉘어 다채롭게 펼쳐졌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행사를 준비한 무대 뒤의 장면과 실제 김해시민들의 눈에 비친 무대 앞의 모습으로 나눠 김해예술제를 소개한다.

개막 앞서 밤새 "뚝딱뚝딱 쓰읍쓰읍"
보이거나 가릴 부분 밤새 조율
실연보다 더 힘든 리허설 반복 또 반복

공연 관계자와의 끊임없는 대화도 필수
"최고 예술 작품? 최선을 다한 작품"


■ 오페라의 유령같은 사람들
"공연은 두 시간이지만 준비는 스무 시간입니다."

김해예술제 개최 하루 전,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은 정신없이 분주하다. 개막식까지는 서른 시간이 남았지만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마치 방금 공연이 시작될 것처럼 바쁘게 움직인다.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무대 배치다. 무대 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덧마루(무대를 고정하거나 무대를 높이는 데 사용)의 이동이 시작됐다. 덧마루 위로 공연에 사용할 세트나 장비가 자리를 잡는다.

▲ 관객들과의 접속을 기다리며 가지런히 정리된 음향 케이블.
무대 배치가 진행되는 동안 쉴새 없이 "하나, 두울, 쎄엣, 씁씁"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연에 사용될 무대 마이크의 음질을 점검하는 것이다. "뚝딱 뚝딱" "하나 두울" "쿵쾅쿵쾅" "쓰읍쓰읍" "지이잉" 무대를 고정하는 망치질과 음향을 살피는 소리, 무대기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합주를 이룬다.

무대 배치가 끝나면 조명작업이 이어진다. 보여야 할 부분과 보이지 않아야 할 부분들을 위한 조율이 시작되는 것이다. 조명의 위치와 색깔을 결정하고 조명바텐(무대 전체를 균등하게 투광하려고 조명기구를 달기 위해 무대 상부에 설치하는 철봉)이 무대 천장과 바닥을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하고 나서야 조명은 자기 자리를 찾는다.

세 시간이 지났을 무렵 소리들이 일순간 뚝 끊기며 무대는 침묵에 빠져든다. 점심 시간이다. "조명감독. 세트 위치가 너무 앞쪽으로 나와서 조명작업에 문제가 될 거 같은데…." 네모난 식탁은 네모난 무대의 축소판이 된다. 망치 소리, 음향 점검 소리, 무대기계 소리는 멈췄지만 이번엔 스태프들의 '입의 합주'가 시작된다. 오후 작업은 더 분주하다. 오후 6시가 돼서야 무대 작업은 겨우 끝이 난다. 오페라의 유령처럼 한 번도 무대 위에 드러나지 않고 숨어사는 사람들의 하루 일과는 이렇게 끝이 났다.

■ 공연보다 더 진지한 리허설
공연 당일의 주된 일은 리허설이다. 무대 스태프들이 준비를 마치고 나자 개막축하 공연을 맡은 김해무용협회 회원들이 하나 둘 무대 위로 등장한다. "조명감독님. 상수(객석에서 바라볼 때 무대 오른쪽)에서 등장해서 상수로 퇴장하기로 했는데, 퇴장은 하수(무대 왼쪽)로 하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음향감독님. 음향은 한 부분만 빼고 전체 라이브로 진행된답니다. 각자 악기 음향 레벨 좀 맞춰 주세요." 예정에 없던 무대 동선과 요구사항들이 생기고, 스태프들은 재깍재깍 조치를 취한다. 시계바늘 소리가 왜 재깍재깍 들리는지를 아는 순간이다.

"한 번만 더 리허설을 하면 안 될까요?" 김해무용협회 이정숙 지부장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린다. 지겨우리만큼 해냈을 테지만 성에 차지 않는 그들만의 공연이 무대 위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막이 오르면 손댈 수 없는 실제 공연보다 수정을 할 수 있는 리허설이 더 진지한 이유다. 개막 공식행사와 '태평무', '지전춤', 양반풍자 극무용 '희화도'로 구성된 개막 축하공연은 이런 애타는 열정 탓인지 무사히 막을 내릴 수 있었다.

둘째 날 공연은 국악협회의 '꽃등 들고 임 마중 가네'의 무대다. 웨건(수레무대) 사용에 따른 조율로 무대작업은 시작된다. 웨건은 이동식 무대다. "사용할 수 있는 웨건이 2번 무대라서 객석에서 너무 멀지 않을까요?" 김해문화의전당 무대감독의 말에 천승호 국악협회 수석부회장은 객석과 무대를 수 차례 오가며 관객의 입장에서 거리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무대 앞쪽 조명을 어둡게 하고 웨건 무대만 조명을 집중하면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임을 맞을 꽃등을 무대에 달기 시작했다. "님 발자국 소리는 둥둥둥 북소리로 다가왔다가, 덩기덕 덩덩 장구 소리로 머물다가, 징~하고 가슴에 맺히는 울림이 되었다가, 꽹가리 소리처럼 요란스럽게 후다닥 달아나더라고." 꽃등을 달면서 던지는 그의 해학이 공연보다 더 재미있다.

셋째날 공연은 음악협회의 '가을의 향기' 무대다. 다른 무대공연과 달리 음악협회 공연은 음향반사판 설치로 시작된다. 원음의 음향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충분한 음향이 객석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무대 천장이 음향반사판으로 덮이기 때문에 조명 분야 스태프들은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음향 분야 스태프들은 정신이 없다. 엄청난 수의 악보 보면대와 악기 마이크가 제 자리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귀로 들려오는 소리를 눈으로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음악무대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김해음악협회 백승태 지부장이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는 합창단 100명이 전해주는 울림으로 막을 내렸다.

▲ 자동차 정비공장을 옮겨놓은 듯한 연극 '택시' 준비 장면.
넷째날 공연은 마루홀이 아닌 누리홀에서 펼쳐지는 연극공연이다. 무대 세트와 조명작업이 가장 세심하게 이루어지는 공연이다. "소극장 무대에서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동차를 3등분으로 나눴어요." 폐승용차 한 대를 3등분해서 무대에서 조립하는 장면이 한창이다. 배우도 스태프도 모두 자동차 정비공 모습이다. 연극 '택시'는 다른 협회와 달리 오후 3시, 7시 하루 두 번 공연했다. "마음 같아서는 예술제 기간 내내 공연하고 싶습니다. 관객이 적든 많든 잔치날이잖아요. 먹을 게 많아야 하거든요." 극단 번작이의 홍태규 부대표가 던지는 말에는 무대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예술제의 마지막 날 공연은 김해연예예술인 협회의 '가을음악회'다. 개막공연만큼이나 분주한 무대 분위기다. 조명과 음악이 쉼 없이 움직여야 하는 대중공연예술의 특징을 잘 살리려 애쓰고 있었다. "관객들은 TV에서 보던 무대를 기대하고 옵니다. 다행히 김해문화의전당 조명과 음향은 그 정도 수준을 제대로 살려낼 수 있어 좋습니다."
 
■ 숨어 사는 사람들의 정체

▲ 무대미술 관계자들이 테이프로 자료를 긴급히 고치고 있다.
김해예술제의 마지막 공연이 끝나자 어둠 속에서만 존재했던 사람들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3번, 5번, 7번 드로우 커튼 올려 주세요." 무대감독의 지시에 따라 무대 옆면을 가려두었던 커튼들이 무대 천정으로 사라졌다. 각자 위치에서 공연 중 숨어 살던 사람들의 면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의 손놀림과 발걸음이 공연 전의 순간처럼 다시 분주해진다. 엿새간의 김해예술제를 위해 맞췄던 조명과 음향장비들을 다시 제자리로 원상복구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공연을 준비하던 바쁜 움직임과 여러 소리들의 합주음과는 달리 공연이 끝난 무대 위에는 바쁜 모습 속에 정적만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볼 수 있게 만드는 무대 스태프들과 공연 준비를 위해 '다시'를 반복하며 땀 흘린 김해 예술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무대를 빠져 나왔다. "예술작품에 최고는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한 작품만 있을 뿐이다"라는 말에 공감을 느끼는 6일이었다.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