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그리울 때 보라
김탁환 지음
난다/228쪽
1만 2천 원

해사교관 출신 저자 '책을 부르는 책'
이야기꾼 실력 보여주는 담백한 문장
딸 위해 소설 필사 아버지 글에서 제목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 지도 오래됐다. 그러나 책을 권하는 책은 계속 출간되고, 이러저러한 책을 읽었다는 고백을 담고 있는 책은 더 많이 출간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읽은 책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조금은 식상하기도 하다. 어떤 이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은근히 자랑하는 듯해 쉽게 공감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그런데, 저자가 읽은 책을 함께 읽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책을 만났다. 김탁환의 <아비 그리울 때 보라>이다. 저자의 일상, 창작, 학문 등 그가 받아들이고 느끼는 모든 것과 연관돼 떠오르는 책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눈물은 눈에 있는가 아니면 마음에 있는가'라는 글에서 저자는 세월호와 관련된 이야기를 슬쩍 꺼낸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정치인들이 눈물을 쏟았다는 기사를 보고 그 눈물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 묻는다.
 
또 독자에게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우리는 액(液)이든 즙(汁)이든 정치인들의 눈에서 흐르는 물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도리어 그들에게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제 마음이 북받치는 느꺼움이 찾아들었느냐고, 죽은 이들의 속삭임을 어디서 들었느냐고, 어떤 잘못을 지적하고 무엇을 산 자들에게 당부하였느냐고 말이다.
 
그리고 글의 끝에 한 편의 책을 놓아두었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인 심노숭의 저서를 국역해 출간한 <눈물이란 무엇인가>이다.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읽었다, 그러니 독자들도 이 훌륭한 책을 읽으라'는 말 한마디 없지만 <눈물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싶어진다.
 
책의 표제인 <아비 그리울 때 보라>를 직접적으로 다룬 글은 '필사의 핵심은 공감과 자발성이다'이다. 이 글은 2013년 12월께 한창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나붙던 즈음에 쓴 글인 듯하다. 저자는 손으로 쓴 대자보 이야기를 필사본 소설로 연결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필사본 소설 <입경업전>을 구해 보았다. 그 책은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글씨체가 뒤섞인 책이었다. 책 끝에는 필사 후기가 덧붙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이다. "결혼한 딸이 아우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친정에 와선 <임경업전>을 베끼다가 마치지 못하고 돌아간다. 아버지는 소설 애독자인 딸을 위해 종남매와 숙질까지 불러 함께 필사를 마친 뒤 마지막에 이렇게 적는다. '아비 그리울 때 보라'."
 
보고 싶은 책을 한 권 읽자면 그 책을 어렵사리 빌려 필사를 한 뒤 돌려주어야 했던 시대적 상황은 제쳐두고, 이 소설을 받아본 딸의 마음을 먼저 생각해보자.
 
자신의 글씨체로 시작했지만 아버지와 친정 일가들의 글씨체가 이리저리 뒤섞여 완성된 소설책. 아마도 딸은 손끝으로 책을 어루만지며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이렇게 필사한 <임경업전>이 어찌 한 권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아버지의 가없는 사랑이다. 사람이 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것은 그렇게 마음을 담는 것이다.
 
저자는 글의 끝에 대자보 모음집 <안녕들 하십니까>를 놓았다. 이 책에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전지에 매직펜으로 써 내려간 글들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지 새삼 궁금하다.
 
김탁환의 글은 무척 정교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진해 출신인 그는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선발되어 고향에서 군인 생활을 했다.
 
그는 그곳에서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라는 장편소설을 써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군인정신으로 글을 쓰고 또 썼다고 한다.
 
김탁환을 흉내내어 글의 끝에 그의 소설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를 놓아둔다. '1980년대를 살아간 10대의 정신을 그린 성장소설. 평범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통해 억압적 사회, 자유와 타락, 사랑을 그려낸 소설'이라는 평은 식상하다. 김탁환의 신화적이고 문학적인 상상력이 눈부실 만큼 빛났던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면 <아비 그리울 때 보라>를 읽어보길. 그러면 수없이 많은 책들이 떠오를 것이다. 도서관의 '좋은 책' 서가 앞에 서있는 것처럼.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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