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의 일화들입니다.

한 소년과 그 할머니 들어오십니다. "얘 피부가 왜 이래요?" 자세히 살펴본 조 과장, "애가 아토피가 있고 이건 닭살입니다." 할머니 말씀하십니다. "얘가 닭이란 말입니까?" 3초의 정적이 흐른 후…. "사람 피부로 만들어 주세요." 조 과장은 "걱정마시고 보습제를 열심히 바르면…." "보습제고 뭐고 약 좀 잘 지어 주세요."

깔끔한 할아버지, 진료실에 들어오셔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 피부가 왜 이렇습니까?" 조 과장, "어르신, 제가 뭔지 한번 볼께요." 할아버지 바지를 걷어 올립니다.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은 모습이 보입니다. "피부 건조증이네요." 할아버지는 역정을 내시며 "뭐 때문에 건조하다는 겁니까, 난 잘도 씻는데,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가요?"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을 하십니다. "보습제를 열심히 발라주시면…." "지난달 약 그대로 좀 주소."

고급진 20대 여성 들어오십니다. "요즘 피부가 너무 간지러워요." "피부 병변을 좀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성분은 바짓단 위로 아래 뱃살을 삐죽이 내어 보여주면서 "피부는 깨끗한데 가려워서 죽고 싶어요…. 아니 좀 살고 싶어요." 팔 다리도 한번 볼까요, 하면서 정강이쪽을 시진해 봅니다. 역시나….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보습제를 잘 발라주면…." "그건 필요 없는데요."

피부과 진료실에서는 가려움을 주소로 내원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 중에서 별다른 피부 병변을 발견할 수 없는 환자들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실제 간기능, 신기능, 갑상선 기능 등 장기 기능의 이상이나 림프혈액계통 종양 등의 전신 질환이 있을 때에도 피부 소양증이 나타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환자들에게서 공통적인 모습을 발견해 낼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피부가 건조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아토피 피부염을 포함한 대부분의 습진성 피부 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서는 병변뿐만 아니라 정상 피부 자체도 건조해져 있습니다. 일부 유전성 피부 질환에서는 극명한 피부 건조증이 관찰되며 여러 노인성 피부 질환은 피부 건조증과 관련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부가 건조하다는 것은 표현을 달리하면 피부장벽기능이 떨어져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피부장벽기능이란 조금 협의적인 면에서 말하자면, 체내의 수분과 전해질이 외부로 소실되지 못하게 하는 보호막으로서의 기능과 각종 병균을 포함한 이물질의 침투를 저지하는 일차 방어벽으로서의 기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피부 질환에서 그리고 정상적인 노화과정을 통해 이러한 피부장벽기능은 현저히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피부장벽기능을 보호하고 회복하는 것이 피부과 진료에서는 핵심적인 사안이 될 수밖에 없겠는데, 이의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 바로 적절한 보습제를 바르는 것입니다. 즉 부족한 표피 지질(피부장벽 구조 중 핵심 요소)을 외부에서 보충하여 저하된 장벽회복을 증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미용의료시장의 급속한 팽창과 미디어 홍보의 효과로 인해서 피부과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는 주름/피부탄력의 개선이나 미백 치료에 대한 것 같습니다. 물론 웰빙 바람과 함께 피부 항노화에서 미용시술의 역할은 점차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겠지만, 피부 항노화의 목적이 피부를 노년기까지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때, 좀 더 넓은 개념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피부과에 내원하는 환자들은 만성적인 소양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은데, 보습제를 잘 바르는 것이 피부장벽의 손상을 재건하여 이러한 소양증을 줄일 뿐만 아니라 노화과정으로 인한 피부장벽기능의 저하를 되돌리고 훼손을 예방하는 피부 항노화 측면에서도 핵심 전략이 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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