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차 월든>
켄 일구나스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407쪽
1만 4천800원

취업 실패 미국 대학생 빚 상환 분투기
채무 악몽 피하려 2년 반 '봉고차' 생활

"빚은 도저히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계속해서 불어나고 불어나고 또 불어났다. 산처럼 쌓인 빚더미는 매달 이자와 함께 점점 더 높아져 이제는 히말라야 산맥만큼이나 솟아올랐고 그 엄청난 양 앞에 나 자신이 너무나 작고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정말 거대했다. 빚은 내가 움켜진 모든 희망과 돈, 꿈을 삼켜 소용돌이치는 수렁이자 블랙홀이었다."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답답해 지는 대목이다. 이렇게 빚에 짓눌리는 책 속 주인공은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왜 이렇게 빚에 시달리고 있을까. 뭐, 대충 짐작은 가는 말이지만 말이다.
 
그 뒤를 읽어보자.
 
"도대체 빚을 어떻게 갚아가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던 나에게 그 빚은 단순히 몇 달러라는 숫자 이상의 심각한 문제였다. 그야말로 종신형이었다. 머지않아 나는 나처럼 학자금 대출 때문에 수십 년 형을 선고받은 3천600만 명의 다른 미국인들과 함께 거대한 채무자의 감옥에 갇힐 운명이었다."
 
그렇다. 이 말은 학자금 대출로 빚을 진 미국 대학생의 절규이다.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극심한 취업난 탓에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빚에 쪼들리는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
 
최근에는 학자금 대출 상환 독촉에 시달리다 서울의 한 상점에서 강도 행각을 벌인 30대에게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봉고차 월든>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떠올리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소로는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저술가이자 사상가였다. 그의 대표작 <월든>은 1854년에 출간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빛나며 전 세계 독자들을 끊임없이 새로이 각성시키는 불멸의 고전으로 남았다.
 
소로는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안정된 직업을 갖지 않았다. 그는 측량, 목수 같은 정직한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월든>은 소로가 1845년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면서 소박하게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2년간에 걸쳐 시도한 경험을 담고 있다. 대자연에 대한 예찬,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으려는 한 자주적 인간의 독립 선언문이라는 평가를 받는 책이다.
 
<봉고차 월든>의 제목은 <월든>에서 따 왔다.
 
저자 켄 일구나스는 대학에서 역사학과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지만 취업에 실패했다. 학자금 대출 때문에 3만 2천 달러라는 빚만 남았다. 2년 반 동안 알래스카에서 저임금 노동을 해 겨우 빚을 갚았다.
 
그는 다시 듀크대학교 대학원 인문교양 프로그램에 진학하면서 다시는 빚을 지지 않으리라 다짐하고는 봉고차에서 살았다. 마치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은둔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대학원 생활 2년 반 동안 봉고차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았다. 극도로 소비를 제한하며 살았던 것이다.
 
저자의 경험과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고 실감나서 마치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책이다.
 
도대체 빚은 언제 다 갚는 걸까. 봉고차 생활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모든 것을 징징거리지 않고 담담하게 진술하고 있다. 가난하지만 생기 넘치는 여행 이야기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잉여 청춘의 학자금 상환 분투기'라는 조금은 살벌한(?) 부제목이 붙은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책을 읽는 내내 미국의 젊은이들보다 더 심각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현실에 마음이 무거워지긴 했다.
 
저자는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빈털터리가 됐다. 그러나 그는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배운 뒤 자기성찰의 능력과 양심을 갖춘 시민으로 성장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 스토크스카운티에서 친구의 정원을 돌보거나 봉고차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며 살고 있다.
 
아무 것에도 구속당하지 않는 자유인으로. 21세기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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