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강 베랑길>
이하은 글
김옥재 그림
북뱅크
186쪽/1만 1천 원

200년 세월 사이 두고 만난 태양·학구
시간이 만든 생각 차이 공감으로 승화

여행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어디를 가든 계절의 변화가 주는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은 마음 가득 넉넉한 여유로움을 준다.
 
책읽기 좋은 계절이라 그런지 좋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어떤 책을 읽을까 행복한 비명을 지를 때도 있지만, 가끔은 책이 너무 많아 그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처럼 물질이 주는 풍요로움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공허함을 안겨주는 것 같기도 하다. 좋은 것만 쫓아가다 보니 정작 중요한 건 놓치고 살아가기 때문은 아닐까.
 
오늘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역사의 한 토막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동반한 모험을 통해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는 이야기이다.
 
<황산강 베랑길>. 책 제목의 '베랑길'이라는 토속어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황산강'은 낙동강의 옛 명칭이고, '베랑'은 벼랑의 경상도 방언이다. 잔소리로 시작되는 '엄마표 공부'에 지쳐 있는 초등학교 6학년 태양이는 엄마의 폭풍 잔소리를 피해 자전거를 타고 황산강 베랑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태양이가 호랑이를 피해 달아나던 200년 전의 소년 학구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어린 나이에 가업을 위해 형의 삶을 대신하여 과거급제를 위해 생사를 걸고 과거시험을 보러 떠나는 어린 학구를 보며 태양이는 놀란다. 태양이는 학구와의 동행을 결심하게 된다. 태양이와 학구의 과거길이 시작된 것이다.
 
22대 임금 정조의 아들로 11세의 나이에 왕이 된 23대 임금 순조. 그 시대의 탐관오리들은 관직을 사고팔아 자신들의 배만 불렸다.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 민심이 흉흉하기 짝이 없는 암울한 시기다. 태양이와 학구는 200년이란 시간이 만들어 낸 문화와 생각의 차이를 공감과 소통으로 승화시킨다.
 

한양으로 가는 길에 태양이와 학구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순박하고 착하지만 양반들에게 핍박받는 시장통 아이들, 권력으로 탐나는 물건은 무조건 빼앗으려 드는 나쁜 양반들, 어린 나이에 동생을 돌보면서 남의 집 일을 해주며 살아가는 정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산적이 되어 떠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태양이는 자신이 살아온 모습을 떠올려 본다. 태양이가 학구와 조선시대 사람들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운 것처럼, 학구도 태양이와 함께 길을 가면서 과거급제의 희망을 다져간다.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두 소년이 오랜 시간을 살아온 푸조나무를 함께 기억하며 느끼는 공감대는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전해준다. 예기치 않은 시간 여행 속에서 속속 닥쳐오는 위험을 극복하는 과정은 두 소년들을 성장시킨다.
 
이 책은 순조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태양이와 학구의 모험 이야기를 통해 이해하도록 한다. 소소한 사건들이 주는 재미는 아이들이 역사를 보는 시각을 친근하게 해 준다.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이미지는 책 속 본문에서도 느낄 수 있다. 주고받는 대화 속의 경상도 방언은 특히 정겹다. 산수화풍으로 그려낸 삽화는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평화롭게 다독여준다.
 
학습의 무게에 짓눌려 잠시나마 일탈을 꿈꾸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의 어린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일탈의 자유로움이 주는 재미 속에 들어 있는 모험과 시각적 효과, 경상도 방언은 재미있는 학습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어린이책은 종합예술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른이 먼저 읽고 함께 읽고 공감하면서 좋은 책을 만들고 그 안에서 즐길 때 한 권의 책은 제 가치를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산강 베랑길>은 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어린이책이라 할지라도 어른이 먼저 읽고 공감대를 만들어 소통해 갈 때 멀어지는 세대 간 갈등도 가까워질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 아이와 함께 읽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책을 찾는 이에게 소신을 가지고 권하고 싶다.

 

김해뉴스


임홍자
영운초등학교 전담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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