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기원은 언제일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음악을 신의 발명이라 믿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인류 최초의 음악은 기록되지 않고 사라졌다. 그러나 음악은 인류의 가장 친숙한 예술 형태로 남았다.
음악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들다. 음악 없이 드라마, 영화, 광고, 각종 동영상을 제작할 수 있을까.
음악이 흐르지 않는 카페에 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음악은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다.
그래서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호모 무지쿠스(Homo Musicus)'라는 말도 생겼나 보다.
김해에도 호모 무지쿠스들이 모이는 공간이 있다. 외동의 '공간 이지(EASY)'이다.  

▲ 이지를 운영하는 MACC의 장원재 대표.
뮤지션 꿈 키우던 MACC 장원재 대표
"재능 없다" 지적에 연주 지원으로 눈길

학생·제자 위해 복합 문화공간 개설
재즈·인디음악 감상 가능 유일한 공간

무대 필요한 연주자에게 언제나 기회
화요일 '잼 데이', 토요일 기획 공연도


'공간 이지'는 MA실용음악학원, ㈜MACITE를 운영하는 MACC의 장원재 대표가 2014년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찾아가서 음악을 접하고, 공연을 하거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장원재는 부산에서 태어나 중학교 3학년 때 김해로 왔다. 김해중학교, 김해고등학교, 인제대학교를 졸업했으니 누가 뭐래도 김해사람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 다니면서 음악과 친해졌다. 학교의 기독교학생회 모임에서 활동하며 베이스기타를 쳤다. 기타를 가르치던 최춘광 선생이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재능은 없다. 그런데 정말 열심히 한다. 그래서 해볼 만하다." 그는 계속 기타를 쳤다. 그러다 25세 때 정신을 차렸다. 재능이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연주자의 길보다 연주자를 도울 수 있는 길을 가는 게 맞겠다, 라고 생각했다.

장원재는 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음악과 신학 공부에 매달렸다. 동의대학교 영상정보대학원에서 컴퓨터영상음악을 전공했다.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도 졸업했다. 지금은 사업을 하면서 동시에 목사 신분으로 음악선교도 하고 있다. 그는 대학원에 다니던 2006년 MA실용음악학원을 열었다. 동의대 대학원과 연세대 연세디지털콘서바토리에서 겸임교수도 맡고 있다. 그는 "강의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을 하는 후배와 제자들을 돕거나 음악인들을 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이지는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는 2014년 4월 문을 열었다. 장원재는 "음악을 하는 김해의 학생들과 제자들에게 무대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김해에서 재즈를 들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부산과 창원 등지에서는 재즈와 인디음악전문 공간인 '몽크'에서 연주를 들을 수 있지만 김해에는 그런 공간이 없었다. 이지는 김해에서 재즈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처음에 이지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리더라고요. 술을 팔지 않으면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네가 무슨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고 그런 일을 하느냐, 라면서 말렸어요. 하지만 이지를 만든 걸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은 없습니다. 이지가 처음 생겼을 때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지요. 이지는 단순한 연주공간이 아닙니다.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이지를 운영하면서 복합문화공간의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더 잘 알게 됐답니다."

이지에서 어떤 일이 가능한 지 한 남자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결혼 20주년을 맞은 남편은 아내와 특별한 추억을 나누고 싶었다. 그는 이지에서 두 달간 악기 연주를 배웠다. 사랑의 메시지를 가득 담은 축하영상도 만들었다. 준비를 하면서 필요한 내용을 모두 이지에서 배웠다. 그는 결혼 20주년 행사를 이지에서 펼쳤다. 파티에 참석했던 지인 부부들이 '우리도 이런 추억을 나누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지는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번 와 본 사람들은 계속 찾아갔다. 구경을 갔던 사람들은 '나도 할래', '우리도 여기서 하자'고 말했다. 다양한 주제의 파티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원하는 행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음악이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음악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전공을 하지 않았던 한 여자의 이야기다. 그의 '올해의 버킷 리스트' 중에 '내가 만든 곡을 직접 연주하며 공연을 하고 싶다'는 게 있었다. 그는 이지에서 6개월간 악기를 연습하고 곡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김해문화의전당 애두름마당에서 열린 퓨전콘서트의 무대에 올라 공연을 했다. 그는 "공연을 하기까지 5년 정도는 걸릴 줄 알았다. 꿈을 이루었다"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지에서는 정기적으로 행사를 연다. 화요일은 '잼 데이(JAM DAY)'다. 재즈 연주자들이 자신의 악기를 들고 와서 이지가 갖추고 있는 시스템을 활용해 마음껏 연주하는 날이다. 누구를 만나 함께 연주하게 될지 모른다. 때로는 약속도 없이 기적처럼 어떤 유명한 연주자가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우연성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음악세계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서 연주하는 기쁨을 누리면서 서로를 알게 된다. 그렇게 음악의 인맥이 만들어지는 곳이 이지다.

'오픈 마이크(OPEN MIC)'. 말 그대로 무대를 개방하는 행사도 한다. 누구나 가서 연주하고 노래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노래방은 아니다. 음악을 하고 싶지만 무대가 없어 애태우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연습실이나 제대로 된 악기가 없어 연주를 못하는 학생들이나 인디 뮤지션들이 가서 공연을 한다.

토요일에는 기획 공연이 펼쳐진다. 매달 2회 정도 열린다. 국내·외 유명 연주자들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유료 공연은 보통 1만~3만 원 정도다. 무료로 공연할 때도 있다. 홈페이지(www.spaceasy.net)에서 공연 정보를 볼 수 있다.

▲ "이지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공간입니다." 청소년들이 이지에서 음악의 열정을 불태우며 공연을 하고 있다.

무대에 서는 연주자와 관객들 사이의 거리는 1.5m 정도다. 관객들은 연주자의 시선을 보면서 호흡까지 느낄 수 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도 '우리는 음악으로 하나'라는 마음이 모인다. 관객들의 공감대도 잘 이루어진다. 연주자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음악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공연할 수 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관객의 반응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그렇게 즐기면서 연주하고 몰입하고 관객의 열정에 감동받고….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지 무대가 좋아서 자주 가는 연주자들도 있다. 대개 다른 도시에서 공연을 할 때는 공연을 마친 뒤 돌아가기 바쁘지만, 이지에서 공연을 할 때는 여행도 하면서 김해에서 하루 이틀 머물다 가곤 한다. 부산, 창원 등 인근도시에 공연을 하러 갔다가 이지를 일부러 찾는 연주자가 있을 정도다.

이지를 둘러보는 동안 연습을 하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보컬 공부를 하는 서영은(김해제일고) 양은 "잼 데이에서 선배들이나 유명 연주자의 수준 높은 공연을 볼 수 있다. 많은 경험을 하고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규(가야고) 군도 보컬을 공부한다. 그는 "음악학원에서 공부하다 이지에 와서 연습을 하거나 쉬기도 한다. 연습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음악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공간이다. 잼 데이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입장권을 사서 기획공연을 보더라. 그럴 때는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힘이 난다"고 강조했다. 윤준명(분성고) 군은 기타를 배운다. 그는 "학생들이 올 수 있는 공간이다. 비싼 돈을 주고 큰 공연장에 가면 연주자를 보기도 힘들다. 이지는 무대가 크지 않지만 연주자를 눈앞에서 볼 수 있어 훨씬 좋다. 그들이 섰던 무대에서 연습도 하고 가끔 공연도 한다. 언젠가는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다. 이지는 꿈을 실현시켜 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MACC에서 일하는 조이삭(20) 씨는 페루에서 살다가 2013년 3월 김해로 왔다. 그는 "이지는 멋진 공간이다. 신기하다. 유명 연주자도 공연하고 일반인·학생도 공연한다. 평등한 무대다. 음향도 정말 좋다. 김해시민들이 많이 활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공간 이지/외동 내외중앙로 35 아카데미빌딩 4층. 055-723-2287. 좌석 100석, 스탠딩 150석. 오전 10시~오후 10시 운영. 매주 화·토요일 정기공연. 매주 목요일 '테마가 있는 DVD' 상영. 세미나·콘서트·파티 등으로 이용 가능. 앨범·영상 제작 가능. 음향·영상·조명시스템 구비. 인터넷 홈페이지 www.spaceasy.net.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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