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지구촌에는 세계화와 지역주의라는 두 얼굴이 있다. 세계화는 '지구촌 전체가 국경의 제약 없이 상품의 이동에 수입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자유로운 무역을 하자'는 것이다. 지역주의는 '세계 모든 국가가 합의하기 어려우니 우선 마음에 맞는 몇몇 국가끼리만이라도 관세부과 없이 자유무역을 하자'는 것이다. 양자는 서로 배치되는 것 같지만, 지역주의의 범위를 넓히면 세계화가 된다는 점에서 지역주의를 세계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세계화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여러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규정할 수 있다. 멀리는 1848년 '내수 위주의 자급자족적인 경제는 국가 간의 상호의존성이 높아지는 세계경제 체제로 바뀌고 있다'라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문에서 엿볼 수 있다. 가까운 시점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출범한 1995년을 세계화의 원년으로 볼 수 있다.

종전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는 자유무역의 대상을 상품으로 한정했고, GATT 규정을 위배하는 국가가 있어도 강제적으로 제제를 가할 수가 없었다. 반면 WTO는 자유무역의 대상을 상품, 서비스, 농산물, 지적소유권 등으로 확대하면서 규정 위배 국가에 대해서는 분쟁해결기구(DSB)를 통해 강력한 제제를 가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세계화를 목표로 하는 WTO는 2001년 11월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열린 제4차 각료회의에서 합의한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개발어젠다(DDA)를 아직도 타결하지 못했다. 농업보조금, 농산품·공산품의 관세율 등을 둘러싼 이견이 원인이다. 한국의 경우 공산품에 대해서는 선진국들과 입장을 같이 하고, 농산품의 경우에는 개발도상국들과 입장을 같이 해야하는 미묘한 입장에 처해 있다.

세계화가 이처럼 지지부진해지자,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2개 이상의 국가들이 모여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지역경제 통합을 이루고 있다. 한국도 이미 11개의 FTA를 발효했다. 또 4개는 서명·타결했고, 4개는 협상 중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을 제외한 12개 국가가 참여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 달 5일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타결됐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40%, 세계교역량의 약 25%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경제블럭이 탄생한 셈이다.

▲ 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 같은 국가들이 글로벌 경제질서를 주도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단호한 목소리를 내면서 TPP 설립 취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TPP에 맞서 '역내 포괄적 동반자협정(RCEP)'을 추진 중이다. 지난 달 12~16일 부산 벡스코에서 한·중·일과 뉴질랜드·호주·인도 등 총 16개국이 10차 협상을 가졌다.

한국 정부는 뒤늦게 TPP 가입의사를 밝혔다. 미가입에 대한 국내의 질책성 여론도 없지 않다. 그러나 TPP 가입 여부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가입에 찬성하는 측은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에 당연히 편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입에 반대하는 측은 "TPP 가입국 중에서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10개국과 이미 FTA를 맺고 있어 굳이 가입할 필요성이 적다"고 반박했다.

막상 TPP가 타결되고 보니 우리나라 수출기업들이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일본이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 부품, 전자제품 등의 관세가 없어지면 한·미 FTA 발효로 우리가 누렸던 선점효과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TPP에서 주목할 점은 누적원산지 규정이다. 이 규정 덕분에 'FTA 지진아'로 불리던 일본이 일시에 새 글로벌 통상질서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누적원산지 규정이란, 제품의 공정이 10개라면 6단계 정도만 TPP 회원국 안에서 이뤄져도 특혜 관세를 적용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중국 수출액이 미국, 일본을 합한 수출액보다 많아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외교가 중국에 치우친다는 미국의 우려를 좌시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일본은 "한국이 TPP에 추가 가입하려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한다"며 얄미운 기득권을 주장하고 있다. 아직 TPP가 발효되기까지는 1년 반 정도의 기간이 남아 있다. 정부의 철저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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