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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 매연에 황사에… 집 앞 텃밭도 맘 놓을 수 없으니(9) 시골환경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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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5.11.11 08:59
  • 호수 247
  • 12면
  • 주정이판화가(report@gimhaenews.co.kr)

귀농한 이웃 대중없는 고구마 농사
친지·이웃에게 “좀 캐가라”고 선심

공기 좋은 시골·무농약 농사 옛말
50여 년 넘게 농사 지어온 친구
“황사·이웃 지역 농약 탓에 허사”

살충제·제초제 과다 살포 영향 
마을 상수도 곳곳 비소 오염돼 씁쓸

도시에 사는 딸이 전화를 해서 '국화를 좀 따서 말려 놓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난데없이 웬 국화냐고 물었더니 아는 언니 집에서 국화차를 마셨는데 향이 좋더라나. 그래서 시골의 집에 국화가 많다고 자랑을 하며 집에 전화해서 국화를 좀 따 달라고 해야겠다고 말했더니 옆의 언니가 내 것도 좀 부탁하자 해서 오케이 했다나, 어쨌다나. 나 참! 애비 고생시키려고 작정한 건지, 시근이 없는 건지. 자식이 상전인 걸 시키는대로 해야지 별수 없습니다.
 
우선 들국화부터 따기로 하고 집 뒤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집 뒤 언덕은 양지가 발라 들국화가 많이 피어 있어 잠시 따도 소쿠리에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서두를 것 없이 쉬엄쉬엄 따도 되겠구나 싶어 언덕에 퍼질러 앉아 담배도 한 대 피우며 좀 노느라니 어째 마당의 강아지가 짖어대었습니다. 누가 왔나, 하고 지붕너머로 바라보니 대문 쪽에서 누군가 어른거리더니 마당으로 올라옵니다. 몇 해 전 도시에서 살다 우리 마을로 귀촌한 박 씨입니다. 마당까지 들릴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아침 일찍 웬 일이냐고 물었더니, 자기 밭의 고구마 좀 캐 가라고 말하러 온 것이라 하였습니다. 
 
집에 사람이 왔으니 언덕을 내려가 차 한 잔을 내었습니다. 평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하는 박 씨의 말인즉, 농사를 지으려고 시골에 들어 온 게 아니고 그저 나이 들어 시골에서 살고 싶어 온 것인데, 내다 팔 것도 아닌 고구마를 대중없이 두 고랑이나 심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고구마를 캐 보니 너무 많아서 도시의 친지 여럿을 불러 한 자루씩 주고도 손 안 간 것이 얼추 반 고랑이나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겨울 내내 밥을 안 먹고 고구마만 먹고 살 것도 아닌데 더는 일 없다며 갑작스레 추위라도 닥쳐 얼기 전에 얼른 캐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얼어 버리느니 캐 가라는 것이 아니고 이웃인정으로 그러는 것입니다. 이왕 말 난 김에 다른 일이 없다면 당장 가자고 해서 고구마 한 소쿠리를 캐었습니다. 게다가 박 씨는 무도 두 개를 뽑아 소쿠리에 얹어 주었습니다. 
 
요즘 흔히 농약을 안 치면 농사가 아예 안 된다고 합니다. 계획 재배한 친환경농산물 말고는 농약을 안 친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긴 합니다. 그러나 감자나 고구마는 심기 전에 씨눈을 갉아먹지 못하게 땅벌레 약을 치고 나면 캘 때까지 별로 약을 안 칩니다. 다른 작물에 비하면 농약을 훨씬 덜 치는 것입니다.
 
어릴 적 친구 중에 농업고등학교를 나온 후 다른 생각 안 하고 여태까지 농사만 지어온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예전에 농약을 치다 약에 취해 논두렁에 자빠진 적이 있었답니다. 그 일을 당하고 난 뒤부터는 농약을 칠 거면 차라리 농사를 안 짓고 만다고 작심했습니다. 이후 50여 년 동안 쭉 농약을 모르고 농사를 지어 왔고, 나이 칠순을 넘긴 지금도 직접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약을 안 친 처음 한두 해는 소출이 좀 줄었지만 몇 해 지나고부터는 농약을 치든 안 치든 그게 그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때까지 '농약 없이 잘도 되겠다'며 비아냥거리거나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이웃들도 한 마지기 두 마지기씩 따라하더니 이젠 그 곳 주변 농토는 얼추 농약을 안 친다고 하였습니다.
 

   
▲ 시골마을이라고 해서 환경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맛있게 익은 홍시 뒤로 각종 공장들의 모습이 보인다.

언젠가 자네가 지은 무농약 나락 한 부대 찧어 갈까나, 했더니 잠시 망설이던 그는 "실은 내 나락도 온전한 무농약은 아닌데" 라고 약간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친구 사이에 쌀 한 포대 주면서 돈 내라 하기가 껄끄러워서 그러느냐"라고 다그치자, 그는 "애먼 소리 말고"라면서 "봄철이면 황사가 골칫거리 아닌가. 황사가 먼 중국에서 바람을 타고 황해 건너오는 것 아닌가. 같은 이치로 근처 논은 농약을 안 치더라도 김해 들판 어디서든 농약을 치면 바람을 타고 올 거고, 그게 내 논만 피해 갈리는 만무하지 않느냐. 그 뿐인가. 사방에 난 도로에서 내뿜는 자동차 매연은 어떻고. 그리 보면 내 나락도 약 덜 친 나락일 뿐이지 온전한 무농약 나락은 아니란 말일세! 한 포대고 두 포대고 그리 알고나 가져가라"며 두 포대를 찧어 주었습니다. 결벽증인지, 아니면 내 것 주고 뒷소리 듣기 싫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금방 찧은 거라 그런 것인지 농약 덜 친 거라 그런 것인지 밥을 해 먹어 보니 맛은 좋았습니다. 
 
여하간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한편으로는 내 집 마당 귀퉁이의 텃밭도 사정이 다르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내 집 텃밭도 처음에는 농약을 안 쳤더니 푸성귀고 뭐고 제대로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몇 해를 버티자 실제로 내성이 생겼는가, 이후로는 푸성귀 이파리를 벌레가 갉아먹어 구멍이 숭숭 뚫려 있을망정 뜯어 먹을 만큼은 되었습니다. 푸성귀 때깔이야 무슨 대수인가 마는 친구의 말대로라면 내 집 텃밭의 푸성귀도 바람을 타고 날아 오는 농약이나 매연 땜에 무농약 푸성귀는 아닌 셈입니다. 하기야 하동녹차도 공중방재하는 밤나무농약 때문에 친환경 인정을 못 받고 강 건너 매실마을의 매실 역시 마찬가지라 합니다. 결국 하동군에서 밤나무 농가에 보상을 하고 밤나무를 모두 베어내기로 하였다지 않던가요.
 
도시에 인접한 시골이 다 그렇듯이 우리 마을도 예외 없이 논밭에 공장이나 전원주택이 들어 서 공기가 아무래도 그전 같지는 않습니다. 실은 그보다는 앞산 산기슭에 남아 있는 감나무 밭이 더 문제입니다. 감나무 밭에는 농약을 너무 자주 칩니다. 감나무든 뭐든 과수원이라면 한 해에 농약을 일고여덟 차례는 칠 겁니다. 일고여덟이라면 아예 농약을 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앞산 감나무 밭에 농약을 치는 날이면 바람을 타고 온 농약 냄새가 마을에 진동합니다. 텃밭에 날아온 농약을 물로 씻어내느라 수선을 떨기도 합니다. 점점 나빠지는 농촌 환경이 그러니 농약으로 인한 지하수 오염이 당장 닥친 고민거리로 떠 올랐습니다.
 
며칠 전 경남지역 환경단체가 마을 상수도 사용 중단과 민관합동 전수조사를 요구했습니다. 살충제, 제초제 같은 농약을 과다하게 살포하는 바람에 비소 농도 허용 기준치를 초과한 마을 상수도가 23곳이며, 중독될 위험 수준의 농도가 검출된 곳은 무려 201곳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비소는 세계환경기구가 정한 1급 발암물질입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공기 좋은 시골이란 말이 무색해지고, 차라리 도회지보다도 더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없지 않습니다. 
 
오늘 오전에는 보건당국에서 비소검사를 하기 위해 마을 상수도 물을 담아 갔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신체 내 비소 축적 표본검사를 위해 마을 주민들을 대표해 이장이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기로 하였답니다. 대저 나이가 들면 만사에 무심하련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되레 걱정이 많아지고 만사에 간섭이 더 하며 세상과의 불화는 깊어지기만 합니다. 해서 소동파의 선시 한 수로 마음을 다스려봅니다. '나의 인생, 잠시 이 세상에 기댄 것일 뿐/ 무엇이 화가 되고 복이 되는 것인가/ 화와 복, 모두 거칠게 잊음과 같지 아니하리/ 어찌 어젯밤의 꿈을 따라가겠는가."  
 
딸이 말린 국화를 가지러 온 날 국화를 담은 봉지 둘 중에 하나를 들어 보이며 아는 언니한테 줄 때 무농약에 공기 좋은 시골서 말린 거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선시가 별 효과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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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이 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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