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조각이다.
모난 성격이 세월의 '정'을 맞아 움푹 패여 들어가 주름이라는 골짜기를 만들어 내고,
경험이라는 옷을 덧입고 나서야 삶은 완성되는 것이다.
울고 웃었던 세월의 파편들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야 '나의 삶'이라는 한 조각은
우두커니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는 도명일 작가.
쉽게 변하지 않는 돌조각에 끌려
고 2때 돌과 인연… 정 작업 40여 년
개인·초대·그룹전 100여 차례 이상
무게 탓에 전시회 소리만 들어도 “덜컹”

영원을 새기는 작업 시간·정성 필수
이끼 낀 유색 화강석 가장 선호
주름 잡힌 듯한 돌, 사람의 삶과 닮아


도명일 조각가의 작업실이 있는 한림면 가동리로 향하는 길에서는 가을이 한창이다. 도로 양 옆에 반듯하게 줄지어 서 있는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이제 막 노란색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수확한 양곡을 가득 싣고 차선 한쪽을 차지하고 길게 늘어서 있는 한림면 미곡창고 앞 1t 트럭의 행렬은 이미 익어버린 가을을 서둘러 걷어 들이고 있다.

한참 가을 풍경을 보며 두리번거리다가 도명일의 집 마당에 당도했다. 마당은 온통 떨어져 나온 돌조각들로 가득하다.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돌조각이 부딪히는 소리에 '고미'라는 이름의 강아지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것인지, 주인을 부르는 것인지 한참 동안 짖어댄다. 마당에 놓여 있는 조각품들을 돌아보고 있으려니 고미의 멍멍거림이 갑자기 뚝 멈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꼬리치기에 한창이다. 아마 주인의 인기척을 느꼈나 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직감은 인간이 가장 둔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먼 길까지 뭣하러 왔어. 달콤한 오후의 낮잠을 뺏겨 버렸네." 가을 햇살을 등지고 기지개를 펴며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조각된다.

"작품을 이렇게 마당에 널브러 놓아도 됩니까."

"얼마나 못 났으면 데려가는 사람이 없을까. 무거워서 아무도 안 가져가. "

갑자기 무거운 돌에 조각을 하는 그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왜 이렇게 무거운 돌을 예술재료로 선택했는지 물어본다.

"허허 이 사람, 동서고금을 다 돌아봐. 남아 있는 작품은 돌조각 밖에 없어. 거기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돌에 절까지 하잖아. 그만한 영광이 어디 있다고."

▲ 한림면 가동리 도명일 작가의 작업실 마당에 각종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하나의 돌이 형성되고, 그 돌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오랜 시간의 짓눌린 압착이거나 흩어짐이다. 감히 인생과는 비교가 안 되는 영원성을 돌은 갖고 있다. "돌에 생명을 불어넣으면 영원해지는 거야. 진리가 변하지 않듯 쉽게 변하지 않는 돌조각이 어쩌면 진리인 셈이지. 그것에 반해서 돌을 만지기 시작한 거라고. 그걸 고등학교 2학년 때 깨달았으니 천재지 뭐야. 하하하."

조각의 재료로 돌을 선택한 그의 이유가 명쾌하다. 그는 부산공예고등학교 2학년 때 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엔 나무를 할까, 쇳조각을 할까 고민했어. 그런데 나무는 불이 나면 어쩌나 싶고, 쇠는 녹이 슬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 애써 만든 작품이 사라지면 그렇잖아. 그러다 보니 쉽게 변하지 않는 돌에 자꾸 눈길이 가더라고. 그때부터 돌과의 인연이 시작된 거지."

그렇게 시작한 작업이 40년을 넘었다고 한다. 요즘은 작품을 안 하느냐는 질문에 두 달 전에 한 작품을 끝냈으니 좀 쉬어야 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몸이 돌먼지를 소화할 시간을 줘야 한단다. 하기야 마음에 드는 돌을 가져와 작품 크기에 맞게 자르고 갈아내고 정으로 쪼는 일은 먼지투성이를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 일찍 죽을 거야. 평생 돌가루만 마셨으니…." 갑자기 이야기를 하던 그의 눈빛이 허공을 향한다. 석양에 비친 그의 눈에서 반짝 빛이 났다. 눈물이다. 카메라를 잠시 내렸다. 그는 젖은 눈으로 말을 이어갔다. "서른 살 때 쯤이던가. 기력이 쇠약해진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어. 어느 날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작업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한없이 우시더라고. 아버지의 눈물을 보면서 '내가 하는 일이 몹쓸 짓이구나' 그렇게 생각이 들었어. 근데 지금 아들이 이걸 하겠다고 대학 조형학과에 갔어. 아버지 생각이 나서 한참 말렸지.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앞으로 닥칠 아들 걱정 때문인지 하여튼 한참동안 눈물이 나더라고."

도명일은, 아들이 평생 돈 걱정 없이 작업만 할 수 있는 환경을 부모가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난다, 고 한다. "아들이 그러는거야. 돈을 벌고 못 벌고를 떠나 뭔가 남겨 놓는 일이잖아요. 허 그것 참. 어린 녀석이 가당찮은 소리를 하더라고. 이제는 응원해 주고 싶어. 말린다고 해서 그만 둘 것 같지도 않고. 나도 그랬으니까."

도명일은 개인전 3회, 그룹전 100여 회, 초대전 10여 회를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개인전도, 초대전도 하기 싫다고 한다. "이제 전시회를 하자는 소리가 제일 겁나. 돌을 만지면서부터 나는 장애인이야. 계단이 있는 건물이 제일 싫어. 무거운 작품은 엘리베이터로도 못 옮겨. 그러니 수레가 갈 수 있는 계단 없는 곳만 선호하지."

돌에 생명을 불어 넣으려면 최소 2년이 걸린다고 한다. 영원을 새기는 작업에 시간과 정성은 필수다. 근데 요즘은 2~3개월 안에 조각을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돌의 무게만큼도 못한 생각들을 한다는 게 그의 불만이다.


도명일이 가장 좋아하는 석재료는 화강석이다. 그 중에서도 유색 화강석을 선호한다고 한다. 또 화강석 중에서도 이끼가 낀 돌이 가장 운치있다고 말한다. 세월을 두고 얼굴에 주름이 잡힌 듯한 돌을 보면 사람들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그런데 돌값도 비싸지만 운반비가 문제라고 한다. 그는 마당에 서 있는 지게차를 가리켰다. "저 지게차가 벌써 3대째야. 5t짜리인데 저 차가 감당 못할 돌이 들어오면 지게차를 또 불러야 돼."

무게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어느날 한 호텔 로비에서 전시회를 했다. 거기에 머물던 영국인이 있었다. 그는 며칠 동안 도명일의 작품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호텔 통역을 불러 이유를 물었더니,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어 운반방법을 생각 중이었다고 답했다. 비행기에 싣고 영국으로 가져 가서 다시 공항에서 집으로 가져갈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2t이라는 무게를 설명해주자 그 영국인은 아쉬워하며 눈길을 거두었다고 한다. "진영한빛도서관에 가면 작품이 하나 있어. 전시회가 끝난 뒤에 그대로 두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어. 그래서 재료비만 받고 거기다 놔두고 왔지. 솔직히 다시 마당으로 옮길 일을 생각하니 막막하더라고. 그래서 놔 둔거야. 참 아낀 작품인데….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뭐."

도명일은 20년 전에 어렵게 구한 좋은 돌을 하나 갖고 있다. 잘라서 절반은 작품을 만들고, 반은 아직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남은 반에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싶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생명보다 더 귀한 의미를 돌에 두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밟히는 게 돌이지만 이제 그 돌조차도 밟아 볼 기회가 흔하지 않다. 하기야 세월을 두고 얼굴에 주름이 잡히듯 세월을 맞이하는 돌을 보면 우리들 삶과 많이 닮아 있다.

"나이가 더 들면 정을 들 힘이나 있을까 걱정이야" 정을 놓지도 못하면서 벌써 정을 못 들면 어쩌나 걱정하는 그를 보면 돌과의 인연은 운명인 것 같다. 그의 말처럼 돌새김은 어쩌면 정(情)드는 일이다.

≫ 도명일/한국미협 회원, 경남전업미술가협회 부지회장, 울산미술대전 초대작가, 김해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조소심사위원. 한국미술전(세종문화회관), 동서미술의 현대전(경남도립미술회관), 제14회 울산미술대전 초대전, 울산예술회관 초청 기획전 등.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