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자본'이 요즈음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경제대학의 토마 피케티 교수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왜 자본은 일하는 자보다 더 많이 버는가. 소득 불평등을 초래하는 핵심적 요인은 자본'이라고 주장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힘만큼 강한 것도 없다. 얼마 전 서울에 사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아버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설문조사를 했더니 약 40%가 '돈'이라고 대답했다. 또 '부모가 언제쯤 죽으면 적절할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는 '63세'라고 답한 학생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유는 '은퇴한 후 퇴직금을 남겨놓고 사망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2년 전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고교생 47%, 중학생 28%, 초등학생 12%가 '돈 10억 원이라면 기꺼이 1년간 감옥이라도 갈 수 있다'고 해서 한때 사회를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최근 행정고시 합격자 515명을 대상으로 신임공무원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힘은 돈'이라고 답한 비율이 무려 83%나 됐다.

돈, 즉 자본의 위력은 대단하다. 국제적으로도 일본은 수많은 개발도상국 유학생, 학자 들에게 장학금과 연구비를 제공하면서 은연 중 세계 도처에 친일파를 양성해 왔다. 최근 일제가 저지른 중국 난징대학살 자료가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일본은 "향후 등재 제도의 변경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유네스코 지원 분담금을 내지 않겠다"며 어름장을 놓았다.

'자본은 희소하고 값비싼 생산 요소'라는 전통적 견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들이 대량의 돈을 찍어 시중에 푸는 양적완화 정책으로 초저금리 시대가 출현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자본은 희소하므로 투자자와 경영자는 투입된 자본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수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경영학적 측면에서 자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일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 앤 컴퍼니'는 "우리는 이제 자본과잉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진입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희소한 자원을 소중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맞지만, 자본이 희소하다는 주장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세계 전체 금융자산은 재화와 서비스 가치의 약 10배로 추정된다. 글로벌 자본은 5년 이내에 약 50%가 추가적으로 증가해 자본이 넘쳐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경영자들은 왜 막대한 자본을 쌓아놓고 있으면서 성장을 촉진시키는 혁신에 투자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톤 크리스텐센 교수 팀은 '투자자와 자본을 제공한 금융기관들이 경영자를 평가할 때 여전히 낡은 평가지표를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자산이익률, 투하자본 수익률의 평가지표는 분자의 이익을 분모의 자산으로 나눈 값인데, 분자가 고정되어도 분모의 값이 작을수록 평가지표는 좋아진다. 신발을 단 한 켤레도 직접 생산하지 않는 나이키처럼 많은 다국적기업들은 외부조달인 아웃소싱을 통해 분모의 자산 규모를 줄여 수익률지표를 올리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한편, 기업이 비고객층을 고객층으로 만드는 신비즈니스 모델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시장 창출 혁신을 성능 개선이나 효율성 혁신보다는 경영평가에서 찾을 것을 요구한다. 대표적인 시장 창출 혁신은 20세기 초반 T-모델 포드자동차의 출현이다. 포드는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해 생산비를 낮춰 대다수 미국인들을 새로운 자동차 시장의 소비자로 만들었다. 자동차시장의 급성장은 부품생산회사 설립, 도로 건설, 주변의 주유소와 음식점 설립 등 엄청난 연관산업 효과와 일자리를 창출했다.

반면 단순히 기존제품을 신제품으로 대체하는 성능 개선 또는 효율성 혁신은 일자리를 없애는 고통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코닥카메라의 몰락, 세계 최고 창의적 기업이라는 칭호를 받던 일본의 게임기 회사 닌텐도를 곤궁에 처하게 했다.

아무튼 기업은 풍부한 자본을 무조건 절약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창의적 인재를 더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한 인적자본 투자와 새로운 고객층,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에 전념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고 저성장시대에 대비하는 길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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