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0 경찰서에서 “어제 사건 좀 더 말씀 해 주세요!”

피곤한 사회부… 새벽 눈 뜨기 힘들어
8시 경찰서 도착… 형사·정보과 필수
얼굴 두껍게 하고 꼬치꼬치 캐물어

불타오르는 화로를 뚫고 비밀지하의 암흑으로 들어갔다. 고대의 저주에 걸린 미라들이 우루루 튀어나온다. 용감하게 싸우면서 대왕 키루스까지 무찔러 페르시아의 보물을 손에 넣으려는 순간….

"따르~~~르~릉!"

시끄러운 휴대폰 자명종이 울린다. '아, 꿈이구나' 하면서 눈을 번쩍 뜬다. 아직 어스름한 새벽의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현실로 돌아온다. 지금은 오전 7시. 꿈을 꾸면 깊은 잠을 못 잤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는 눈꺼풀이 다시 풀리려 한다. 어릴 때부터 유독 잠이 많았다. 아버지·어머니는 항상 "오빠는 시도 때도 없이 울었고, 너는 시도 때도 없이 잠만 잤다"고 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때는 물론 대학생 때도 만년 지각생이었다.

이제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겨우 4개월. 처음 김해중부경찰서에 갈 때만 해도 '새벽 6시 20분에는 꼭, 필승 기상!'을 외쳤다. 그러나 취재 업무로 하루종일 바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체력은 조금씩 떨어지고 새벽에 눈 뜨기는 점점 더 힘들어졌다. 아직 초보지만, 그래도 '프로페셔널' 기자다. 학생 때와는 달리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가장 먼저 아침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회부 기자는 더욱 그러하다.

오전 8시께 김해서부경찰서에 도착했다. 아침에는 형사과와 정보과를 필수로 돌아야 한다. 형사과에서는 전날 발생했던 형사사건이나 사고를 파악해야 한다. 정보과에서는 당일 행사나 지역의 상황 등을 들어봐야 한다.

전날 당직을 서느라 피곤해 보이는 형사팀장과 인사를 나눈다. 밤새 어떤 사건, 사고가 있었는지 묻는다. "절도사건이 하나 있었네"라는 설명에 "뭘 훔쳤죠. 피해금액이 얼마나 되나요"라고 다시 묻는다. 피해 액수가 상당하다. 언제 어디서 일어난 사건인지, 누가 왜 훔쳤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듣는다. 형사팀장의 입장에서는 피곤한 아침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초보에 불과한 기자가 꼬치꼬치 물어서 귀찮을지도 모른다. 얼굴을 두껍게 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어쩔 수 없다.

정보과에서는 담당주임, 계장과 시위 이야기를 나눈다. 시위는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시위현장에 처음 취재를 하러 갔을 때 시위자들의 한탄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양쪽의 입장을 다 들어보면, 반드시 어느 한쪽이 '옳은' 것은 아니다. 선배기자는 충고한다. "기자는 어느 한 쪽의 말만 듣고 그것을 믿으면 안 된다. 가장 객관적으로 사건을 관찰하는 것이 책무인 만큼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사건을 직시해라." 대학생일 때 언론학 강의를 듣고 대학언론사에서 3년간 일을 했어도 능숙할 수는 없다.

▲ 14:00 현장에서 “사진도 찍고 전화도 받아야 하고… 바쁘다 바빠!”

아침 취재 내용 보고 때 ‘구멍숭숭’ 실감
국장 지시 받은 기사 근근이 마감하고
간단히 점심 때운 뒤 다시 현장 속으로

경찰서를 돌고 나면 오전 9시 무렵이다. 선배기자에게 전화를 한다. 아침 취재 내용을 보고한다. 이어 '국장님께' 최종보고를 마친다. 대부분의 경우 핀잔을 듣는다. 경찰기자로 근무한 지 4개월이 됐지만 언제나 지적받을 일은 넘쳐난다. 머리를 뜯으면서 자기성찰의 시간을 10여 분 가진 뒤 기사를 작성한다. 당일 보고한 사건, 사고 중에서 국장이 쓰라고 지시한 것은 바로 써서 보내야 한다. 시의성이 있는 사건, 사고 기사는 바로 아침에 인터넷에 올려야 한다. 

아침 일과를 마무리한 뒤 분신과도 같은 취재수첩을 펼친다. 오늘 일정이 나온다. '창간호 축사를 맡긴 사람들한테 확인 전화를 돌린다. 오전 10시에는 형사 과장, 오후 2시에는 이영철 김해시의원을 만난다. 오후 7시에는 화물차 운전자들을 만난다. 틈틈이 기사도 써 놓아야 한다.'

사실 일정 정리를 하게 된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학생기자 시절에는 일정 정리를 제대로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신문사 동기가 수첩으로 머리를 때리며 챙겨 주길 3년이었다. 아무리 해도 고쳐지지 않던 게으른 버릇이 <김해뉴스>에 들어와 순식간에 고쳐졌다.

밖에서 점심을 간단히 때우고 이영철 의원과 약속한 장소에 가기 위해 경찰서를 나간다. 사회부 기자가 되고 나서 절실히 느낀 점은 차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BMW(Bus·Metro·Walk·버스와 지하철을 타거나 걷는다)족이었다. '김해는 버스를 타고 다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너무 많이 걸은 탓에 입사 4개월 만에 족저근막염에 걸렸다. 김해는 넓고 광활한 지역이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한 달 전에는 낙동강 어민들의 고충을 듣기 위해 대동면까지 갔다. 분명 김해인데도 지하철을 타고 부산에서 내려야 했다. 어민들의 고충을 겪어 보겠다고 직접 통통배를 탔다가 파도에 시달렸다. 익사가 아니라 '타박사'를 당할 뻔 했다. 글을 쓰는 사이에도 그 때 부딪힌 엉덩이가 시큰거리는 것을 느낀다.

학생기자 시절 선배들이 늘 강조했던 점은 '현장감'이었다. 무슨 일이든 현장에 가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김해뉴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선배기자든 초보기자든 절대 앉아서 취재를 하지 않는다. 인터뷰를 해도 만나서 하고, 행사를 취재해도 직접 현장에 뛰어가서 냄새를 맡는다.

오후 2시에 만난 이영철 의원도 같은 말을 한다. "<김해뉴스> 기자들은 직접 뛰어다닙니다. 반면 다른 기자들은 앉아서 보도 자료를 보며 기사를 작성합니다. 참 다른 모습입니다. 기자는 현장에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자료로는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 20:00 사무실에서 “기사 골격 어떻게 잡을까? 으~ 머리야!”

‘취재원’과의 관계정립 여전히 서툴러
피해자나 유족들 취재 땐 씁쓸하기도
저녁 7시, 억울한 이들 위해 또 “타다닥”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았다. 다행히 점퍼의 모자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기자는 사람과 친해야 한다. 흔히 '취재원 관리'라고도 하는 부분이다. 아직 초보기자에게는 정말 힘든 점이다. 다행히 기자가 됐다는 소문을 듣고 최근 들어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를 많이 해 준다. 경찰차 몇 대가 어디로 지나가더라, 불이 났다더라, 하는 소식들이다. 최근에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다른 누구보다 일찍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피해자는 지인의 친구였다.

위로의 말을 해 주기에 앞서 꺼낸 말은 '언제, 어디서'였다. 전화를 끊고 잠시 회의감이 들었다. 따뜻한 위로의 말보다 먼저 질문을 던지는 게 옳은 일이었을까.

선배기자는 그런 모습을 보며 "기자에게는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선배는 "장례식장에서 우는 사람을 붙잡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미안하고 슬펐지만, 숨기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기자란 그렇다. 사명이 무엇보다 앞서야 하는 직업"이라고 이야기한다.

회사에 들어와 기사를 쓴다. 비는 그쳐 간다. 날은 여전히 흐리고 흙냄새 범벅이다. 퇴근 전에 미리 회사를 나온다. 약속이 있어서다. 오후 7시 화물 운전자들을 만났다. 화물 과적, 차량 불법 개조에 대한 운전자들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의외로 긴 시간동안 이야기를 하게 됐다.

운전자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인다. "기자님 잘 써 주십시오." 사실 어딜 가서 누구와 만나더라도 듣는 말이다. 그들은 억울함과 고충을 토로하고, 기자는 글로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린다. 어떤 사람들의 고통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이 문제를 꼬집는다 해서 사회가 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작은 불씨가 커다란 불꽃이 되는 것처럼 천천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리라고 믿는다.

나는 초보기자다. 사고도 많이 친다. 기자라 하기에는 너무 어설프다. 그러나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시민들에게 등을 내 주는 언덕이 돼 사회를 변화시키는 '큰 기자'로 성장하리라 기대한다.  

김해뉴스 /어태희 인턴기자 tt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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