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스콧 스토셀 /
홍한별 옮김·
반비 출판사·496쪽

형님이 들려 준 지인의 교통사고에 충격
책 내용 접하고 자신에게 더 다가가

모든 것에 대해,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해 가끔 어지럽다. 일상을 한꺼번에 바꿔놓은 그 어지럼증의 시작을 지금도 그날 그때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10여 년 전 11월의 어느 저녁이었다. 아이들이 일찍 잠든 틈을 타 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베란다에서 한가롭게 밤이 내려앉는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형님이 방문을 했다. 형님은 전날 밤 사고로 죽은 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어이없이 죽었는지 남겨진 아이가 얼마나 불쌍한지, 그리고 또 다른 지인이 운전미숙으로 심하게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순간 식은땀이 나면서 숨을 쉴 수 없을만큼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바닥이 흔들리고 커피 잔이 빙글빙글 돌았다. 마치 세상의 모든 죽음이, 모든 사물이 달려드는 것처럼 완전한 공포에 사로잡혀 실신하고 말았다. 그날 이후 오랫동안 불안과 함께 살았다. 더 이상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고 혼자 운전을 할 때는 온갖 진정제를 가방에 챙겨 넣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날의 악몽이 다시 찾아와 집어 삼킬 것만 같았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그 비참한 기분은 왜, 무엇 때문에 찾아왔을까. 마음이 몸에 지배를 당하는 그 아이러니한 상황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를 읽은 것은 순전히 자신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가기 위함이었다. 평생을 극심한 불안과 공포증에 시달려온 저자 스콧 스토셀에게 동지적 위로를 보내면서.
 
원자력 시대가 도래한 이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근래 서방 국가들의 테러와 경제위기, 전반적 사회 변화를 목격하다 보니 그 말이 더욱 옳은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고작 30년 전만 해도 불안이라는 병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짧은 역사가 증명하듯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말처럼 불안은 여전히 수수께끼인 채로 상당 부분 남아있다. 그렇다면 불안은 의학적 질환인가, 철학적 문제인가. 그것도 아니면 사회적 현상인가. 
 
불안은 생물학적인 동시에 철학적이기도 하고 육체와 정신, 본능과 이성, 개성과 문화 모두의 영역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시 말해 정신적, 심리적으로 경험하지만 분자나 생리학적 층위에서도 측정할 수 있으며 유전에 의해 만들어지는 동시에 양육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심리적 현상이면서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타자의 시선에 끊임없이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안을 인간의 사회적 민감성이나 도덕성과도 연결시킨다. 결국 불안은 영원한 인간의 조건일 수밖에 없다고 나약한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19세기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에 파묻혀 파멸하지 않으려면 누구나 반드시 불안에 대해 알아가는 모험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적당히 불안해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을 배운 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불안은 적정한 수준에서 시작되었는가. 좁은 간격을 두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겉으로는 그 상실감을 잘 견디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은, 두뇌 속의 편도는 부지불식간에 너무나 우울하고 피폐해져갔다. 또한 옆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이 떠나가면 어쩌나 하는 참담한 불안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기침처럼 터져 나왔던 것 같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개와 늑대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힘들다. 가방에는 여전히 진정제가 들어있고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피곤해서 조금만 어지러워도 견딜 수 없는 공포가 몰려온다. 불안은 슬픔이나 고통의 근원으로부터 정신을 보호하기 위한 적응 기제였을지도 모르겠다.
 
'내 수치와 공포를 세상에 인정하는 것이 나에게 힘을 주고 불안을 덜어줄지도 모른다'고 쓴 저자의 마지막 문장처럼 불안이 살아가는 한 방식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불안을 좀 더 건강한 것으로 만들어 누군가에게 세심하고 민감한 사람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온 힘을 다해 빌어본다.




서명옥 소설가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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