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 빵>
이나래 /
반달·52쪽

탄 빵 같이 먹으며 ‘고통분담’
거북이 롤러스케이트 타게 해

갈색 종이봉지에 그림책이 담겨 있다. '탄 빵'의 윗부분이 삐죽 튀어나와 있는 그림책 봉투를 한참 쳐다보았다. <곰돌이 팬티>(북극곰)가 떠올랐다. 빨간색 팬티를 아래로 내려야 하는 야한(?) 띠지를 가진 그림책이다. 그림책 <탄 빵>을 담은 갈색 봉투도 띠지인가 보다. 그제서야 그림책을 꺼내 볼 엄두가 났다.
 
봉지에서 꺼낸 그림책의 표지에는 새까맣게 탄 빵이 그려져 있다. 면지도 온통 새까맣다. 무려 세 바닥을 새까맣게 그리고 나서야 나타난 동물 5마리. 너구리, 기린, 기린 머리에 앉은 박쥐, 얼룩말, 토끼다. 속표지에는 거북이 한 마리만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나온다.
 
빵과 토스트기가 있다. 똑딱이는 시계 소리에 맞춰 구워진 빵이 튀어 오른다. 튀어 나온 빵 겉면에 그려진 무늬로 누구의 빵인지 짐작할 수 있다. 각자 취향에 맞게 잘 구워진 빵을 들고 식탁에 모여 앉는다. 그런데 거북이만 탄 빵이 놓인 접시를 들고 '오늘도 거북이 빵이 타 버렸습니다'라는 문장 옆에 서 있다. 식탁에 앉는 순서도 거북이가 제일 늦다. 타고난 느림 때문에 거북이는 늘 탄 빵을 먹고 있는 걸까.
 
친구 영란이가 불쑥 태클을 건다.
 
"토스트기는 타이머 되잖아. 시간 맞춰두면 탈 일 없는데!"
 
타이머 없는 구형 토스트기인가. 궁색한 변명을 해 보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책장을 넘기니, 동물 친구들이 각자의 빵을 여섯 조각으로 썰어서 나눈다. 새까맣게 타서 먹을 수 없거나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거북이의 빵도 한 조각씩 자기 접시에 가져간다. 똑같이 나눈 여섯 개의 빵 접시와 물 잔이 놓인 식탁이 보인다.
 
"잘 먹었습니다." 옆에 깨끗하게 비워진 하얀 접시가 보인다. 너구리, 기린, 박쥐, 얼룩말, 토끼, 거북이는 똑같이 먹었다. 어느 누구도 빵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접시를 비웠다.
 
동물들은 왜 탄 빵을 먹었을까. 왜 탄 빵을 버리지 않았을까. 빵 한 조각을 거북이에게 나눠준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굳이 거북이의 탄 빵을 같이 먹었을까.
 

고등학교 3학년 큰 아들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통분담이네요."
 
중학교 3학년 작은 아들이 뒷면지를 가리키며 감탄했다.
 
"거북이를 변하게 만들었네!"
 
너구리와 기린, 얼룩말과 토끼 앞에서 날개를 펼친 박쥐가 날고 있고, 맨 앞에 거북이가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타고난 느림보 거북이가 이렇게 빨라진 건 바로 롤러스케이터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 친구들이 거북이를 위한답시고 타이머를 대신 꺼 주거나, 탄 빵을 버리고 잘 구워진 빵을 나눠 주었다면 거북이가 롤러스케이터를 타고 달릴 생각을 했을까. 친구들의 도움과 배려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였다면 더 위축되고 나약해지지 않았을까. 묵묵히 탄 빵을 먹어 준 동물 친구들의 고통분담이 거북이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라고 마음대로 결론을 내렸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 앞에 서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맞는지 대기업의 청년 일자리 창출과 사회 기부 이야기가 종종 들려온다. 그런데 재벌의 면죄부용이거나 이권 쟁취를 위한 노림수라는 뒷소리도 같이 들린다. '넉넉해지면 그 때 나눌 거야'라는 말이 거짓인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의 탄 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해뉴스

어영수
북스타트코리아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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