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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겼던 ‘창작의 흥’ 되살리려면 뜸이 오래 걸려(11) 숫돌에 칼을 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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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5.12.09 09:11
  • 호수 251
  • 13면
  • 주정이판화가(report@gimhaenews.co.kr)

   
▲ 주정이 선생이 수돗가에서 숯돌에 조각칼을 갈고 있다. 왼쪽 사진은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모습.

묵은 골칫거리 딸 치우느라고
작업장에 발길 끊었더니 작업 감각 뚝
무뎌진 청각·시각 탓에 서글프고 허탈

드로잉 해 둔 ‘금시조’ 밑그림 그리고
숫돌에 칼을 갈며 다시 마음 다잡아

처녀가 시집 안 갈 거라고 말하는 것은 뻔 한 거짓말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았습니다. 나이 서른을 한참 넘기도록 입버릇처럼 결혼 안 할 거라고 말하던딸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을 바꿔 결혼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지난달 말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묵은 골칫거리가 해결되어 한시름을 놓았습니다. 결혼식 준비를 하느라 상당 기간동안 작업장에는 발도 못 디밀다가 오늘에서야 작업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청소고 뭐고 할 겨를이 없었던 탓에 작업장이 엉망이었습니다. 작업장에 들어왔더니 작업장 분위기가 영 아니었습니다.
 
서둘러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나무따개비, 마음에 안 들어 구겨서 던진 파지 따위를 쓸었습니다. 작업대 위에 쌓인 먼지도 털며 한참 부산을 떨고 나서야 겨우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작업장에 들어간 기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래도 얼마간 손을 놓은 터라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기는 어렵습니다. 마음의 뜸이 들고 감각도 완전하게 회복되어 작업에 몰입할 수 있기까지는 한 이틀은 걸릴 것만 같습니다. 꺼진 용광로에 불을 붙이고 쇳물을 토해내기까지는 몇날 며칠이 걸리고 엄청난 경비가 소요되듯 작업의 연속성이 한번 끊기면 다시 잇기란 예삿일이 아닌 것입니다.
 
무릇, 작가의 작품 생산이라는 것은 마음이나 몸속에 내재한 어떤 응어리를 토해내는 것이며, 미술작품 또한 머릿속의 관념을 시각화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작품 제작과 같은 감성의 작업에도 용광로가 쇳물을 토해내기위한 예열이 필요하듯 분위기랄까, 흥이랄까. 그런 열 가지 예비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매일 작업을 해야 합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아무것도 않고 멍하게 앉아만 있더라도 작업장에 머물러야 머릿속의 구상이 마무리됐을 때 뜸들일 것 없이 곧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어디 매인 몸이 아닌데도 그게 잘 지켜지질 않으니 탈입니다.
 

   
▲ 주정이 선생이 예술활동에 몰두하는 작업실 전경.
평소 이런저런 구상이 떠오르면 소위 작업메모라는 걸 해 두었다가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다듬은 후 판각에 들어갑니다. 이전에는 작품 구상이 떠오르면 잊기 전에 얼른 손에 집히는 종이쪽지에 암호처럼 갈겨서 작업대 벽면에 압정으로 꽂아 놓았습니다. 그게 날아가 버리거나 없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요새는 카메라로 찍어서 노트북컴퓨터 메모장에 저장을 해둡니다. 물론 노트북도 실수로 전부 날아가 버리는 수가 있기는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염려할 것 없습니다. 따로 저장용기를 연동해놨기 때문에 그런 염려는 안 해도 됩니다.
 
메모 중 오늘 작업할 만한 것을 고르기 위해 서재의 탁자에 있는 노트북을 열려고 보니 노트북이 먼지를 뽀얗게 덮어쓰고 있습니다. 노트북이 검정색이다 보니 먼지 쌓인 게 확연하게 드러나 털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옆에 놓여 있는 카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사진 가져오기를 한 뒤 몇날며칠을 그대로 두어서 그런 겁니다. 디지털 기기에는 먼지가 쥐약이란 소리를 흔히 합니다. 노트북 덮개의 먼지를 쓸어내고, 카메라를 들고 붓으로 먼지를 털고 있으려니 창밖에서 새 소리가 났습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냥 창밖을 향해 셔터가 눌려 졌습니다.
 
사진이라는 것이 대개 새를 찍겠다고 찍으면 새가 또렷하게 찍혀 나오고 꽃을 찍겠다고 찍으면 꽃이 또렷하게 찍혀 나옵니다. 말하자면 카메라의 속성은 겨냥한 피사체(초점을 맞춘)는 또렷하게 나오고 주위는 덜 또렷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또 초점 심도의 범위에 따라 또렷하게 또는 덜 또렷하게 나오기도 합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카메라는 두 눈 가진 사람과는 달리 외눈박이라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나지만, 시각상 인지될 만큼은 아닙니다.
 
컴퓨터에 카메라를 연결하고 이미지 보기를 열어 봅니다. 창밖의 나무들이 찍혀 있고, 좀 더 살펴보니 또렷하거나 덜 또렷한 차이 없이 공평한 상태로 찍혀 있습니다. 어느 것이 강조되거나 덜하지도 않은 창밖 풍경이 그저 평이하게 찍혀 있습니다. 촬영데이터를 정하고 자시고 할 겨를 없이 엉겁결에 셔터를 눌렸지만 다행히 카메라의 초점 눈금이 무한대에 있었기에 전체적으로 초점이 흐리지 않고 그럭저럭 찍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창밖에서 새 소리가 들렸고 창밖을 향해 셔터를 눌렀으니 분명히 새가 찍혔을 텐데, 사진 속에 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꼼꼼하게 훑어보아도 없습니다.
 
그 참! 아마도 새가 카메라 프레임 밖에서 울었던 것을 무디어진 청각이 잘못 짚었는가 봅니다. 나이가 들어 눈이 어둡고 귀도 시원찮은 것 같습니다. 뭘 해도 돋보기 없이는 갑갑해서 돋보기 여러 개를 작업장은 물론이고 집안 곳곳에 비치해 두고 사용하고, 외출할 때는 꼭 챙겨나가야 할 지경입니다. 이렇듯, 노상 돋보기를 끼고 장시간 작업을 하다 보면 눈이 쉬이 피로하고 머리까지 어지러워 자주 쉬어가면서 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서글픈 마음이 드는가 하면 작업도 더디고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 작업에 사용하는 각종 재료들.
아무튼, 이왕에 창밖의 새를 찍으려다 실패한 터라 새를 모티브로 작품을 해볼까 하는 마음에 노트북 메모장을 뒤져 오래전에 만들어 둔 드로잉 한 장을 찾아냈습니다. 금시조입니다. 금시조는 인도말로 가루라(迦樓羅)로 불립니다. 용을 잡아먹는 큰 새를 상징한다고 전해지고 있는 추상의 새로서, 소설가 이문열이 작품 제목으로 차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소설 <금시조>는 이황의 학통을 이어받은 석담과 그의 제자 고죽이 벌이는 예술의 본질과 예술가의 신념에 대한 담론은 물론 예술관이 다른 스승과 제자 간에 빚어지는 갈등과 애증을 다루고 있습니다. 대저 예술이라는 것은 머릿속에 있는 관념을 서화나 소리 또는 몸짓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쨌든, 목판에 밑그림을 그리고 판각을 위해 숫돌에 칼을 갑니다. 언제부턴가 작업장 벽면에 부적처럼 붙여놓은 글귀를 되뇌며 쓱쓱 숫돌에 칼을 갑니다. 일 년 열두 달, 한 달 하루 한시도 거르지 않고 숫돌에 칼을 갑니다. 아직은 공력이 약해 무딘 칼날이라도 일 년이 일천 달이고 하루가 일만 날인 것처럼 갈고 갈면 칼날이 다 닳고 칼자루도 다 닳고 빈손이 되면, 오월 수릿날 하늘 길목 소도마을 공터에서나 상무주 양철지붕 때리는 소나기 소리를 장단으로 삼아서나 허공을 가르는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춤사위로 춤을 추고 싶습니다.

   
 



김해뉴스
주정이 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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