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씨앗이다. 작고 여린 네 존재는 언젠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의미가 될 것이다.'(방정환의 '너는 모든 것이다' 중에서)
봄을 알리는 개나리꽃도, 한여름 아름드리 느티나무의 그늘도, 누이 닮은 가을의 국화꽃도 모두 한 톨 씨앗에서 시작된다. 진례에 수많은 '야생초 씨앗 한 톨'을 키우는 곳이 있다. 수백 종 수만 개의 야생초가 자라고 있는 진례 수월초목원이다.

6만여 개 ‘생명‘ 빼곡… 식물 천국에 온 것 같아
나무가 아니라 야생식물 기르는 탓에 ‘초목원’
우후죽순 들어선 공장들 탓에 길찾기 힘들어

류 씨 고교 졸업 후 씨앗 얻으려 들로 산으로
부친의 취미를 보고 좋아서 따라하다 인연
최근 몇 년간 고전… 땅 일부 팔아 규모 줄어


국내에서 처음으로 극소품 분경을 시작해 야생화 품종에 따른 용토 및 화분도 개발한다. KBS TV 무한지대 큐, 생생투데이 등 다수의 TV에 방영되었고 1992년 오픈한 야생화 전문농장으로  개인전 7회 및 다수의 초대전을 한 국내 최고의 야생화 무늬변이종 농장이다.

▲ 수월초목원 내부 전경. 약 350년이 된 마삭 줄의 굵기가 엄청나다. 30~40년 된 마삭(사진 위로부터).
수월초목원은 진례면 서부로 436번길 60-1에 위치하고 있다. 옛 진례IC 출구를 따라 올라가다 금호가든을 지나 150m쯤 올라가서 큰 은행나무집을 찾으면 된다. 잎이 다 져버린 은행나무를 발견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쳐 버린 탓에 한참을 헤맸다. 잘 알려진 김해의 모 기업 회장이 만들어 한때 고급 음식점으로 영광을 누렸던 금호가든의 굳게 닫힌 정문에서 차근차근 다시 길을 시작해서야 수월초목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이 근방에 오면 우리 집이 한눈에 보였어요. 우후죽순 격으로 공장이 들어서다 보니,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두세 번 헤맨 후에야 도착한답니다."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야생초 천국에 온 느낌이다. 550㎡ 면적의 초목원에는 700여 종 6만여 개의 식물이 각자의 자태를 뽐내며 숨을 쉬고 있다. 수월초목원은 류성원 씨가 운영하고 있다. 수목원이 아니라 초목원이라 명명한 것은 바로 나무가 아닌 야생초를 가꾸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초목원이 지금보다 훨씬 컸다. 운영이 어려워 대지 일부를 팔아버려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건 마삭 줄입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수령이 3~4백년은 됐을 겁니다." 류 씨가 초목원의 역사를 이야기하다 마삭 줄을 발견하고는 설명을 곁들인다. 곁에서 자라고 있는 30~40년 된 마삭 줄과 줄기를 비교해 보니 굵기가 엄청나다. 마삭 줄은 밧줄이나 노끈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 산에서 나무등짐을 묶는 용도로 사용했다. 따듯한 남부지방에 흔한 풀이다.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것입니다. 이 정도 마삭 줄이면 차로 당겨도 안 끊어질 겁니다. 이런 든든한 줄 하나 갖고 있었으면 초목원이 지금보다 훨씬 더 규모가 컸을 겁니다. 사람들은 이런 든든한 줄 하나를 갖길 원하죠." 세상 살아가는 요령과 오래된 마삭 줄을 비교하는 그의 말이 재미있다.

류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야생초가 좋아 산으로 들로 다녔다고 했다.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야생초를 좋아했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다 보니 자신도 야생초와의 인연을 시작했다고 한다. 수월초목원은 류 씨의 아버지 류진석 씨가 세웠다. 초목원 이름은 아버지의 호를 따서 지었다. 류 씨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초목원을 운영하고 있다.

류 씨 부자는 임진왜란 때 김해성을 지키다 순국한 사충신 류식 선생의 후손이다. 김해 사충신 중 한 명인 류식은 임진왜란 때 송빈, 김득기, 이대형과 함께 관군이 도망가 버린 김해성을 지키기 위해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왜군이 성안으로 들어오는 물길을 막자, 백성들을 그냥 죽게 놔둘 수 없다며 김해성 안을 돌아다녀 유공정(柳公井)이라는 우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농군입니다. 저는 장사꾼이고요. 아버지는 야생초 본래의 모습을 좋아하고, 저는 변이종을 좋아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극소품 분경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냥 자라게 내버려 두라. 왜 자꾸 괴롭히냐고 핀잔을 던집니다. 그래서 늘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류 씨는 아버지와 다투기 싫어 장유 대청동에 자신의 호를 딴 탐화랑이라는 식물원을 열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져 운영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다시 아버지와 합쳤다. 그가 가장 아끼는 것은 무늬종이다. 일종의 변이종이다. 변이가 나타날 확률은 10만분의 1이라고 한다. 무늬종은 종류가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크게 테두리만 무늬를 갖는 복윤, 잎 전체에 무늬가 흩어져 변이가 오는 산반, 잎 중앙을 따라 무늬가 발생하는 중투가 있다고 한다.

식물은 봄 장사가 1년 장사의 전부라고 한다. 하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천안함과 세월호 침몰, 올해는 메르스까지 최근 몇 년 사이 안 좋은 일이 모두 봄에만 터져 타격이 크다. 국화 재배 농민들만 덕을 본 것 같다면서 그는 씁쓸하게 웃는다.

그래도 봄이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물었다. 그는 "식물은 꽃과 잎이 졌을 때 가장 아름답다. 꽃이 있을 때는 꽃만 보고, 잎이 무성할 때는 식물 그 자체의 자태가 가려져 있다. 꽃과 잎이 다 졌을 때 식물 본래의 자태가 드러난다"며 원칙적인 이야기를 했다.

야생초를 자연에서 채집하느라 힘들었겠다고 했다. 류 씨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야생초를 사랑하는 사람은 산채(야생초를 뿌리째 채집하는 것)를 하지 않습니다. 씨앗만 얻어 올 뿐이죠. 자연스럽게 자라야 하는 아이들을 가둬서 키우면 죽게 됩니다. 죽는 걸 뻔히 아니까 산채를 못하는 거죠. 모르는 사람들은 희귀식물들을 마구 뽑아 암거래를 합니다. 1~2년이 지나면 다 죽습니다. 잎이 푸르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식물은 서서히 죽어갑니다. 그걸 사람이  못 느끼는 거죠. 요즘엔 씨앗만 얻어 오는 것도 미안해서 산 근처엔 얼씬도 안 합니다. 견물생심이라고 혹시나 쓸 데 없는 욕심이 생길까 봐서요."

류 씨는 한 때 김해민주청년회 활동을 했다. 하지만 정치적 활동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아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민주산악회 지역본부장을 맡았다고 한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경남에 오면 바로 오른쪽에 앉았을 정도로 한 때는 활동이 왕성했다. 그랬던 그의 아버지도 지금은 그냥 초야에 묻혀 산다. "식물은 배신을 안 한다는 게 아버지의 신념입니다. 저랑 티격태격하면서 식물 사랑으로, 글자 그대로 야생초와 더불어 진짜 초야(草野)에서 살아갑니다."

작업장 한 곳에는 500원짜리 동전만 한 화분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화분이라기엔 뭣한 작은 연적, 백동향로, 은향로 등이 눈에 띈다. 서예를 하거나 향을 자주 피우냐는 질문에 서예 재주는 없다며 웃었다.

"식물 씨앗을 채종해서 땅에 파종하면 싹이 나오기까지 3~5년이 걸립니다. 작은 싹을 화분에 옮겨 심습니다. 특히 예쁜 아이들이 있습니다. 예쁜 자식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싶듯이 예쁜 야생초는 예쁜 화분에 심어 줍니다. 연적이나 향로도 식물에게 입혀 주는 옷입니다."

류 씨는 그러면서 연적을 이용한 화분 수반 몇 개를 보여준다. 먹보다 더 진한 번짐이 있고, 향보다 더 짙은 향기가 전해온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2011년 대한민국 농업분야 신지식인에 선정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작은 식물에 정성을 다하는 그의 마음은 힘없는 백성을 아끼던 먼 조상 류식의 마음과 닮아 있다. 동전만한 크기의 화분에 야생초를 옮겨 심는 작업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문득 '작은 것에 정성을 다하면 나타나고 이루어진다'는 중용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 류성원 씨가 야생초 잎의 무늬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 류성원(탐화랑)/2011년도 대한민국농업분야 신지식인으로 선정. 1997년부터 아버지 수월 류진석 씨와 함께 개인전 6회를 열었다. 2013년 김해 메가마트에서 "야생화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단독개인전. 5년동안 청천리 다곡마을 영농회장을 맡아 활동했으며, 현재까지 5년 동안 새마을지도자를 맡아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으며, 다음카페 '탐화랑야생화'를 운영하고 있다.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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