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달·312쪽
1만 4천 500원

누군가 만나러 떠나는 '사람여행'
옆에 머문 사람 존재 이유 생각케

이병률을 처음 만난 건 우연이었다. 갑작스럽게 만났다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그의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를 통해서였다. 제목에 이끌려 시집을 선뜻 선택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스미다'의 한 대목처럼 삶에 울컥해 경북 울진으로 달려가 바다를 마주하며 그의 시를 다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꼬일 대로 꼬인 30대의 잠시 동안 '될 대로 돼라'는 식의 치기어린 삶을 살아 본 적도 있다. 그러다 여행에세이 <끌림>을 통해 그를 다시 만났다. 하지만 <끌림>은 먼 이국땅의 정취와 먼 이국사람들의 이름을 소개하는 데 머물렀다. 옆에 있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 실질적인 공감보다는 책 제목이 주는 위안에 만족해야만 했다. 다시 만난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서 실망을 하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남의 나라 이야기를 꺼내 드는 것 같았다.
 
이런 실망감을 알았는지 그는 여행 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으로 다시 다가왔다.
 
이번에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한번 쯤 머물렀을 곳의 익숙한 이야기를 갖고 왔다. 그가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라는 두 권의 책으로 빙빙 돌아 방황하다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여행의 특정 목적지를 다루었다기보다는 목적지에서, 또는 목적지를 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그의 글은 언제나 사람에게 머문다. 한 사람을 만나기로 하는 목적이거나 또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시작된 사람 여행 책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애매하고 모호한 우리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내 든다.
 
"한번 빠지게 되면 중독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면 그 욕구 또한 강력해 지는 것, 그리고 왜 물질적 또는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져야 하는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서 여행과 닮은 점이다. 또한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음 번에 정말 제대로 잘 하고 싶어진다는 그것이다."
 
여행이든 사랑이든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글을 읽는 순간 어디론가, 또는 누군가에게로 떠나고 싶어진다. 그것이 여행이든 사랑이든 한껏 달아오를 가슴 뜨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꿈틀댄다. 목적이 있든 없든 떠났던 여행에서 '나의 명장면'은 어디였던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 사실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요. 내가 사람으로 행복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얼마만큼의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는 것을요."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된다. 내가 불안하고 불행하면 그 어떤 위안과 행복도 남에게 전해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늘 불안과 불행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거나 남에게 둔다. 자신이 얼마만큼의 누구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꼴이다. 옆에 머무는 사람들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작은 소제목들이 눈길을 붙잡아 두는 곳이 많다. 본문의 내용보다 서두에 기록된 짧은 글들에서 마치 본문을 다 읽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어쩌면 나의 이야기와 많이 닮은 이유일 수도 있다. 그의 글은 언제나 끌림이었으니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 주었을까?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또 어떤 자리였을까? 한 번쯤 그들에게 끌림이었을까? 머물던 곳, 지나치는 풍경 속에서 나는 어울림으로 조화되긴 했을까? 누구에게 긴 여운으로 남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책장을 덮으면서 숱한 궁금증들이 스멀스멀 기억 속을 파고든다.
 
내 곁에 있던 사람, 내 옆에 자리한 것들, 또는 관조되던 시각화의 모든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었다.
 
서로에게 스며들듯 다가가면 지나간 시간도 아름답고, 다가올 시간도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해 주는 책이 이병률의 '내 옆에 있는 사람'이다. 한 해가 저무는 지금, 와닿는 책 한 권이다.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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