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몸도 마음도 나른해진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자연스레 얼큰한 국물 생각이 난다.
시원한 대구탕, 얼큰한 짬뽕, 부글부글 끓는 동태찌개….
비가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게 하나 더 있다. 커피다.
평소에도 커피를 좋아해 하루에 한두 잔은 기본으로 마신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아늑한 카페에서의 커피 한잔이 간절해진다.

수로왕릉쪽 거리에 있다가 최근 이전
“커피 맛 안다”는 사람들에겐 꽤 유명

아메리카노 진·연갈색 오묘한 조화
 도라지차, 구수하면서도 연한 커피 느낌

정성 기울인 핸드드립도 인상적
주인장 자리에 있을 때만 즐길 수 있어
‘키스링’ 페스츄리 형태 교황빵 맛 “와!”

서양화가 이경미(51) 씨와 커피를 마시러 가기로 한 날 마침 비가 내렸다. '빗속의 커피 한 잔과 빵이라….'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이 괜히 가벼웠다.
 
이 화가가 추천한 카페는 활천고개 부근에 있는 'SPACE(스페이스)공감'이다. 원래는 김해도서관과 수로왕릉 사이 거리에 있었는데, 최근에 이전을 했다. 가게에서 직접 생 원두를 볶기(로스팅) 때문에 김해에서 '커피 맛을 좀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알려진 곳이다.
 
이전 전의 카페 건물은 탁 트인 갤러리 같은 느낌이었다. 새 건물은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더 강해졌다. 복층을 활용해 1~3층으로 구분된  이 카페는 공간마다 의자나 테이블이 다 다르게 구성됐다. 나무를 이용해 세로무늬 장식을 한 벽은 일반 벽지나 페인트 벽보다 훨씬 따뜻하면서도 세련된 인상을 풍긴다. 벽에는 흑백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카페 건물 인테리어와 사진은 모두 공동대표인 조재만 씨의 작품이다.
 

▲ 새로 이전한 스페이스 공감 전경(왼쪽)과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있는 조재만 대표.

이 화가는 그가 가르치는 수채화반 학생들과 함께 3층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SPACE공감을 일주일에 2~3번 찾는 단골이다. 그는 커피와 차가 맛있다면서 아메리카노커피, 도라지차, 핸드드립커피 등 다양한 음료를 주문했다. 자신은 따뜻한 도라지차를 주문했다. 그는 "20대 때는 커피를 좋아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과민반응이 나타나 끊었다. 3년 전부터 다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지만 양을 조절해서 마신다. 이 곳은 직접 로스팅 하고 신선한 원두를 쓰는 게 눈에 보인다.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 커피 외에도 수제 청, 도라지차 등 다양한 차가 많다"고 말했다.
 
이 화가가 SPACE공감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년 전이다. 그는 2013년부터 김해도서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수채화반을 운영했다. 그 때 막 도서관 옆에 문을 연 SPACE공감은 수채화반의 '2차' 장소였다. 1년에 4개월 정도는 SPACE공감이 수채화반의 교실이 되기도 했다. 수채화반은 상·하반기에 12회 수업을 했다. 초·중·고등학생들의 방학기간인 1~2월, 7~8월에는 청소년 특강이 많아 수업을 하기 어려웠다. 이 씨는 SPACE공감의 양해를 얻어 방학기간에도 수채화반을 동아리 형식으로 이어나갈 수 있었다.
 
지난여름에는 수채화반의 최정순(62) 씨가 SPACE공감에 작품 6점을 전시하기도 했다. 최 씨는 "다른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우연히 SPACE공감에 작품을 들고 갔다. 작품을 카페의 사진 액자 자리에 걸어봤더니 잘 어울렸다. 조 대표도 좋아해서 일주일 동안 전시했다. 작가가 된 기분이었다. 커피를 마시러 온 일반손님들까지 편하게 작품을 감상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조 대표의 부인이자 SPACE공감의 다른 공동대표인 서정희 씨가 커피와 차를 내왔다. 이 화가가 주문한 도라지차는 우려내서 작은 잔에 따라 먹을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이 씨는 "도라지차는 한국차이지만 구수하면서도 연한 커피 맛이 난다. 맛이 깔끔하고 향긋하다"고 말했다.
 
커피의 대표 격인 아메리카노는 진한 크레마(커피 거품)가 신기했다. 풍성하기도 했지만, 다른 카페에서 볼 수 있는 베이지색이 아니라 진갈색과 연한 갈색이 오묘하게 섞여 있었다. 직접 로스팅을 하고 3~7일 정도 숙성과정을 거친 뒤 최대 한 달 이내에 판매하는 원두의 신선함이 비결이라고 서 대표는 설명했다. 아메리카노는 진하면서도 쓴 맛, 신 맛, 단 맛이 고루 어우러져 입에 잘 맞았다.
 
핸드드립커피의 맛도 인상적이었다. 이전에 SPACE공감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핸드드립을 주문한 적이 있었다. 대표가 자리에 없기 때문에 핸드드립커피를 못 만든다고 했다.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다른 가게와 달리 대충 만들지 않고 전문가의 정성을 기울인 커피라 기대가 됐다. 서 대표는 "커피 한 잔이 우리 가게를 나타낸다. 요즘 커피 값이 올라 한 끼 식사 값을 호가한다. 비싼 돈을 주고 마시는 만큼 맛있는 커피를 대접해야 한다. 기계를 통해 추출하는 에스프레소에 비해 핸드드립은 까다롭다. 원두의 종류에 따라 물을 따르는 방법과 시간이 달라진다. 그래서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기지 않는다.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맛있게 커피를 내야 한다는 게 SPACE공감의 지론"이라고 설명했다.
 
정성을 듬뿍 담은 케냐AA는 검정색에 가까울 정도로 짙은 갈색을 띄었다. 향도 진했다. 한 모금 머금었더니 입 안에 진한 커피 향이 금세 퍼졌다. 특유의 쌉싸래한 맛이 강하게 느껴지면서도 쓰지 않고 부드러웠다. 서 대표는 "케냐AA는 신맛이 특징이다. 커피점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신맛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로스팅 과정에서 신맛을 조금 줄여 전체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카페 전체에 향긋한 마늘향이 풍겼다. 미리 주문해 놓은 마늘빵인 '교황빵'을 굽는 냄새였다. 교황빵은 마늘토스트나 마늘바게트가 아니다. '키스링'이라는 둥근 페스츄리 형태의 빵이다. 지난해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교황의 간식으로 제공돼 유명세를 치른 빵이다. 프랜차이즈 제빵 업체가 유사제품을 판매하는 바람에 특허 소송이 일기도 했다. 유사제품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진짜 교황빵은 경기도 파주의 '프로방스 베이커리'와 SPACE공감에서만 맛볼 수 있다. SPACE공감의 대표는 프로방스 베이커리의 대표와 가족 관계다.
 
▲ 이경미 씨가 갓 구운 마늘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마늘향은 식욕을 자극했다. 이 화가는 "이곳에서 만든 교황빵을 정말 좋아한다. 끼니 대신 커피나 차와 곁들여 먹을 때도 많다"고 말했다. 탁자에 마늘빵이 도착하자 다들 표정이 밝아졌다. 둥근 링 한 가운데에는 생크림이 올려졌다. 모두 포크를 쥐고 노릇노릇 구워진 마늘빵을 한 쪽씩 집어들었다. 한 입을 먹자마자 여기저기서 "음~" 하는 감탄사가 이어졌다.
 
빵을 한 입 베어 물자 '바스르륵' 하며 기분 좋게 부서졌다. 바삭함 속에서 촉촉한 식빵 속살과 비슷한 부드러운 맛이 느껴졌다. 버터의 부드러움과 향긋한 마늘 향을 동시에 즐길 수 있었다. 최 씨는 "다른 가게의 마늘빵과는 다르다. 달거나 향이 강하지도 않지만, 부드럽고 자연스레 맛이 어우러져 많이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커피 한 모금과 마늘빵 한 조각. 맛과 향에 취해 하나씩 먹기 시작한 게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맛있는 음식에다 좋은 사람들, 분위기에 취해 수채화반의 수다도 깊어졌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림에 대한 조언을 하기도 하는 훈훈한 모습이었다.
 
이 화가도 쾌활한 모습이었다. 그는 "삶이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 수채화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림을 그리는 게 좋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삶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더 좋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과 음악은 전문 예술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예술이 깊이 들어가야 한다. 예술을 공유하면서 사람들의 삶에도 깊이가 더해지길 바란다. SPACE공감에서 앞으로도 문화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SPACE공감/구지로 211번길 7-19. 055-328-5014. 아메리카노커피 3천500~4천 원, 핸드드립커피 4천500~5천 원, 전통차·허브차 3천500원, 마늘빵 4천 원. 매주 일요일 휴무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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