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화가들의 개인 작업실은 도시의 네모난 건물 속이나 도시 외곽의 컨테이너 속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화가 변수현 작가의 작업실은 특이하게 논밭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생소한 위치에서부터 호기심이 불끈 솟는다. 화목동 155-1번지 변 작가의 '품(Poom)' 아틀리에로 찾아갔다.

논밭 한가운데 선 특이한 작업실
남편이 직접 지게차 동원해 지어줘
풍경 덕에 지인들 아지트로도 사랑

투박한 농막 화실 평상·난로 눈길
벽면엔 나신의 여인 담은 그림 가득
그 사이로 무채색 해바라기들도 빼꼼
수채화만 그리다 유화·아크릭에 푹

초겨울 비는 도로를 씻어낸다. 창 밖에서 비닐하우스 무리가 시야에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진다. 골목으로 차 앞머리를 빼꼼 밀어 넣자 변 작가가 비닐우산을 쓰고 마중을 나온다.

변 작가의 작업실은 작은 농막이다. 옆에 줄지어 늘어선 비닐하우스들의 반 토막도 안 되는 크기다. 작업실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자갈을 깔았다. 걸음걸이마다 젖은 모래 위의 자갈이 신음소리를 낸다. 겨울비에 몸살을 앓고 있는 작은 인공연못이 보인다. 그 뒤로 비를 막아주는 나무지붕을 세우고 큰 돌을 놓아 만든 작은 휴식공간이 있다.

▲ 변수현 작가의 '품' 아틀리에 내부. 따뜻한 난로와 각종 도구들이 화실임을 알려준다.

"연못에 물고기와 개구리가 살아요. 오늘은 비가 와서 다들 숨어 버렸네요. 평소에는 돌에 앉아 커피를 한 잔 하면서 계절이 흐르는 것도 감상하고 사색을 합니다. 연못이며 지붕이며 여기 있는 모든 것은 남편이 직접 지게차로 돌을 나르고 지붕을 올려 만든 작품입니다. 모든 곳에 남편의 애정이 담겨 있어요."

변 작가는 이전에는 가정집의 2층을 작업실로 사용했다. 3년 전부터 부지를 갈고 닦아 특별한 곳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남편의 권유가 큰 역할을 해 마련한 공간이었다. 그의 작업실은 풍경이 주는 특색 덕분에 지인들의 아지트로도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작업실 주위에는 발목만 댕강 남아 있는 벼들이 가득 날을 세우고 서 있다. "가을엔 황금빛 들녘이 운치를 더해 주지요. 벼가 바람에 휘청거리며 파도를 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황홀할 정도랍니다. 겨울이 벼들을 모두 시집보내는 바람에 빈 논밭도 그만의 멋스러움을 입고 있어요."

오후 2시인데 불현듯 수탉의 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변 작가는 작은 텃밭과 나무를 심어 놓은 농장을 소개한다. 오골계 100여 마리가 자유롭게 산책을 즐기고 있다. 낮은 철문을 열고 들어선 농장에는 논에 물길을 터놓은 듯 50m 남짓 길이의 작은 개울도 있다.

"배추도 키우고 고추도 키웁니다. 또 고구마도 키우고, 배·사과·무화과나무도 심었습니다. 수확해서 제가 먹는 것보다 닭들이 먹는 게 더 많아요. 손님들이 찾아오면 '닭 팔자가 상팔자'라며 웃곤 합니다. 대신 그림을 그리다 작업실에서 나와 무화과를 따 먹거나 닭장에 가서 따끈한 달걀을 수확해 옵니다. 파스텔 색조의 달걀은 행복감을 줍니다. 거기에서 또 힐링을 하고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죠."

변 작가는 다른 크기의 달걀들을 꺼내 보이며 달걀의 빛깔에 대한 감탄사를 한참이나 늘어놓는다. 닭들의 팔자가 변 작가의 여유로운 생활과 닮았다. "지난해에는 해바라기들을 잔뜩 심었죠. 무엇을 심든 잘 자라는 땅인지 해바라기 꽃이 만개했어요. 꽃이 얼굴을 활짝 피운 게 그냥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구도를 잡고 자료를 수집하기 바빴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작품들에는 해바라기가 많이 등장한다.

▲ 그가 그린 각종 작품들.
투박하지만 견고한 농막 작업실로 들어서자 평상과 난로가 눈에 들어온다. 요즘 보기 드문 나무 땔감을 이용하는 난로다. 한쪽에 가득 쌓인 땔감에서 나는 나무의 향이 습기와 싸움을 벌이고 있다. 벽면을 채운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들이 낯선 손님을 맞는다. 100호 크기의 큰 유화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전체적으로 진회색의 배경 위에 상체를 완전히 드러낸 여인들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한 사람인지 여러 사람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그 사이로 무채색의 해바라기들이 고개를 힘없이 들고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상한 작품입니다. 여자의 인생을 한 장면에 담은 듯하다는 평을 들었어요. 어두운 색채와 여자의 가라앉은 표정이 인생의 회한을 느끼게 한다더군요."

2남 2녀로 자란 변 작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언니가 그림을 그리는 걸 보고 인생의 진로를 정했다. 복병이 있었다. 아버지의 강건한 반대였다. 어린 변 작가는 아버지의 반대를 이겨낼 수 없었다. 혼자서 끄적이는 정도에 머무르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야 입시학원에 한 달 동안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디자인계열의 대학으로 진학했지만 서양화에 대한 욕망은 가라앉지 않았다.

변 작가는 20년 동안 수채화만을 그리다 5년여 전 길을 바꿨다. "표현의 깊이와 질감의 방법적인 측면에서 유화나 아크릭은 폭이 매우 깊어요. 왜 진작 이 세계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까, 후회할 정도로 만족합니다."

▲ 변 작가가 휴식을 취하는 정자.
수채화를 할 때에는 가족과 아이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유화와 아크릭을 쓴 뒤에는 누드화와 해바라기라는 주제로 더욱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게 됐다. 대개 서양화를 하는 사람들은 바탕 작업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본 그림을 그리기 전에 바탕을 핸디코트나 젯소로 여러 겹 두껍게 처리한 뒤 물감을 올리면 더욱 뚜렷한 색감과 현실적인 피부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변 작가의 그림에는 나신의 여자와 해바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녀만의 취향으로 얇게 처리한 바탕 작업에 현실적인 대상을 올리니 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모순이 일어난다.

"여자의 몸은 볼수록 아름답습니다. 부드럽게 떨어지는 선을 따라 깊은 협곡을 여행하는 기분이 듭니다. 해바라기는 아주 특별한 꽃이에요. 예로부터 다산과 다복을 상징했죠."

그녀는 처음에는 연습 삼아 나신과 해바라기를 그렸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이후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게 됐다고 한다. 지인의 부탁으로 해바라기가 그려진 작품들을 모두 처분했다. 그랬더니 지인들에게 좋은 일들이 생겼지만, 그에게는 어려운 일들이 찾아왔다. 그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다.

"요즘에는 해바라기 본연의 모습뿐만 아니라 드러내지 않고 숨바꼭질을 하는 해바라기를 그립니다. 면을 칠하고 그 면과 면 사이에 그리기도 하고, 혹은 해바라기를 작은 틈 사이에 그려 넣기도 하죠."

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흥겨운 어투로 말을 이어 나간다. "이제까지는 인물의 신체적 미를 탐구했어요. 최근에는 얼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주로 자화상이죠.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봤어요. 빛의 굴곡과 각도가 '섹시미'를 부각시켜 주더라고요. 문득 섹시한 얼굴의 모습을 더 강조해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강렬한 색채 속에 섹시한 표정의 얼굴을 그려 넣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엉뚱하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제 삶과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제 그림의 철학이자 지향하는 방향입니다."

▲ 변수현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품'이 위치한 칠산은 변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향의 품에서 작업을 하고, 닭이 품은 달걀을 수확하고, 가슴에서 자라난 열정을 캔버스에 옮긴다.  "해바라기나 나신의 여인을 그리는 것은 저를 품고 있는 가족의 영향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저를 가장 많이 지지해주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기에 불안할 정도로 행복한 요즘입니다." 그는 마지막 장작을 난로의 품으로 던져 넣는다. 

≫ 변수현/2013, 2014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같은 해 목우회미술대전 입선. 올해의 작가 100인전, 미국 로스앤젤레스현대미술전, 서울국제미술제, 현대작가 초대전, 한·중·일 현대작가 초대전 등 다수 참여. 현재 한국미술협회·김해미술협회·경남전업작가회 회원.

김해뉴스 /강보금 인턴기자 amond@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