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한 해’도 나이 들며 무덤덤해져
갑작스런 코피 멈추지 않아 당분간 금주

오랜만에 망년회서 만난 조각가의 한탄
“마음에 안 드는 작품 모두 고철로 팔아”
다들 침울한 기분에 마음껏 마시다 대취

27년 전 시작 부산일보 연재 판화 1천매
해마다 겨울이면 화로 불쏘시개로 전락
자다 일어나 어제 만든 작품도 난롯불에

한 해가 저뭅니다. 지나간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설계하는 이 때쯤이면, 젊은 날에는 이 모임 저 모임 해서 연일 술자리를 가지고 괜스레 마음이 들떠 거리를 쏘다니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좀 들고부터는 신문이나 방송에 자주 나오는 송년풍경을 스케치한 기사나 화면을 접해도 그저 한 해가 가는구나, 여길 뿐 덤덤합니다. 더구나 당분간 술을 자제하기로 한 요샌 더 그렇습니다.
 

▲ 주정이 선생 작업실의 화로에서 오래된 목판화들이 활활 타고 있다.

두어 달 전, 자다 깨어 보니 코피가 나와 베개가 온통 젖어 있었습니다. 밤중이어서 다급한 나머지 119를 불러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공교롭게도 전문의가 없는 주말이라 고작 거즈로 코를 틀어막고 지혈제 주사 한 대 맞고선 귀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에 와서 얼마 안 있어 코를 틀어막아 놓았던 거즈가 밀려 나오더니 다시 코피가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좔좔 쏟아졌습니다. 또 119 신세를 졌습니다. 그래본들 응급실에서는 고작 앞서와 같은 처치를 반복하는 것이 다였습니다. 전문의도 없는 응급실 따위를 운영하면 뭐하나, 라고 의료체계에 분통을 터뜨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암만 병원에 가본들 별수 없어서 거즈가 밀려 나오면 직접 틀어막기를 거듭하며 날을 샐 수밖에 없었습니다.
 
날이 새자 부랴부랴 종합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뇌 사진을 찍고 콧속을 레이저로 지지고 법석을 떨어도 소용없었습니다. 결국엔 지름 5㎜에 길이 5㎝ 정도 크기의 젤리막대 같은 걸로 땜질을 하고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습니다. 그놈의 막대기가 비싸기는 엄청 비쌌습니다.
 
그렇게 황망한 일이 있고 나서는 얼마간 탈이 없다가 어느 날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중에 또 코피가 흘렀습니다. 다행히 계속 흐르지는 않고 휴지를 가져다 대면 약간 비칠 정도로 끝나 안도를 하였습니다. 그날 이후로는 지금까지 술을 안 마시거나 피치 못해 술자리에 앉더라도 지레 졸려서 한두 잔 입에 댈까 말까 합니다.
 
이런 판국에 조각가 K 선생이 전화를 해서 생뚱맞게 "에이! 오랜만에 우리 옛날처럼 망년회 한 번 합시다"하였습니다. 그것 참! 상대방이 민망하게 "나 술 끓었소"하고 거절할 수도 없어 술잔을 놓고 제사를 지내는 셈치고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급히 연통을 받고 나온 지인 몇이 주점에 모여 앉았습니다. 술이 두 어 순배 돌고 나서 문득 K 선생이 전화할 때 말머리에 에이, 라고 한 것이 기억나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 주정이 선생 작업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서재.
K 선생의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K 선생은 그동안 해 놓은 작품들 중에 몇 점이 마뜩잖게 보여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숫자가 더 불어나서 이제는 마뜩잖다는 정도를 넘어 목구멍의 가시 같이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모진 마음을 먹고 고물상을 불러 작품을 넘겨 버렸답니다. 물론 고물상 손으로 넘어간 작품이 나돌리기라도 할까봐 일일이 절단을 하거나 망치로 두들겨 구겼답니다.
 
K 선생이 그렇게 없앤 작품 무게가 여러 톤(t)이 되다 보니 고철값으로 300만 원 넘게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돈이 생긴 김에 얼굴들도 한 번 보고 술이나 한 잔 할까 해서 연통을 넣었다며 또 에이, 에이, 소리를 연발하였습니다. 고물 값으로 300만 원이면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작품을 뜰 때 주물공장에 준 돈은 족히 열 배는 더 넘었을 것입니다. 그도 그렇지만 작가가 자신의 분신 같은 작품을 폐기한 기분이 어떨지는 다들 아는 처지입니다. 갑자기 술 좌석의 분위기가 자못 숙연해질 정도가 돼서 모두 에이, 에이, 소리를 해대며 대취하였습니다. 술자리를 파하고 헤어질 적에 K 선생이 산골서 먼 길 왔다며 호주머니에 넣어준 택시비가 그의 살점 한 점처럼 느껴졌습니다. 택시비는 다른 돈으로 지불하였습니다.
 
한 문필가가 '글을 쓴다는 것은 고치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것이다'라고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미술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K 선생 역시 브론즈로 뜨기 전 석고작업에서는 고치기를 수없이 반복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브론즈로 뜨고 나서는 표면 연마나 미세한 세부에 대한 작업만 용이할 뿐 더 이상의 개작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같은 브론즈 작업의 한계 때문에 애써 만든 작품이 마음에 안 들어도 개작을 할 수 없다 보면 부득이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우가 작가들에겐 마치 작업 과정의 일부처럼 다반사입니다. 이는 작가들의 작품 완성도에 대한 엄정함에 기인한다 할 것입니다. 
 
손을 꼽아 보니 27년 전 이맘 때입니다. 산행에 동행한 당시 부산일보 B 문화부장이 "새해부터 새로 시작하는 연재소설이 진주지역 백정들이 봉기한 형평운동을 다루는 내용입니다. 삽화를 목판화로 하면 궁합이 맞겠습니다. 목판화를 매일 한 점씩 한다는 것은 어렵겠지요"라며 속을 떠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야 화료만 넉넉하게 준다면야 못할 것도 없지요"라고 말하고는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새 연재소설 시작을 알리는 신문사 사고(社告)가 덜컥 나와 버렸습니다. '연재소설 최초로 목판화 삽화 시도'라는 부제까지 달았습니다. 소설가와 작가를 소개하는 2차 사고를 만들기 위해 소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대동면 어느 산기슭에서 촬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목판화 삽화를 시작했습니다.
 
▲ 부산일보에 실린 연재소설 삽화 작가 소개 기사.
대개 신문에 실리는 삽화는 5~7㎝ 정도입니다. 그러나 실제 원판은 A4 용지 1.5배 크기로 제작했습니다. 통상 신문 소설의 연재 기간이 1년인 데 '일어서는 혼'은 4년이어서 그 기간에 실은 삽화가 무려 1천40매나 됐습니다. 작업장에는 목판화 원판이 엄청 쌓여 있었습니다.
 
지금은 목판 원판이 고작 20여 장 남아 있습니다. 맘에 안 차는 목판을 한 장씩 골라내 없앴기 때문입니다. 묵은 목판은 바싹 말라 있어 난로 불쏘시개로 쓰기 그만입니다. 남은 20여 장의 원판도 올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난롯불 속으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작업장의 난로가 난방용 말고도 목의 가시를 빼는 일종의 장치로도 소용되는 셈입니다. K 선생 같은 작품 완성도에 대한 엄정함이랄까? 이는 필자도 별반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오래 전 신문에 실었던 작업 메모입니다.  
 
'한밤에 잠이 깨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마당에 내린 달빛이 잔설처럼 드문 한 어둑새벽입니다. 나는 잠이 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자는 편입니다. 잠을 자다가 도중에 깨는 경우는 크든 작든 무슨 연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누운 채 멀뚱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머릿속을 뒤져 그 연유가 무언지 더듬어봅니다. 한참을 그래도 천장의 서까래 선은 언제 봐도 보기 좋다, 라는 엇 생각만 들고 딱히 짚이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 불현듯 어제 한 작품이 마음에 그리 차질 않고 뭔가 아쉬웠던 기억이 났습니다.
 
▲ 화로에 목판화를 집어 넣는 주 선생.
아무래도 그게 가위 눌린 모양이었습니다. 소소한 일이라도 마음에 걸리면 그대로 넘어 가지 못하는 성격이 가만 있지 못합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작업장으로 건너갔습니다. 난로에 불을 지피고 앉아 어제 한 작품을 꺼내놓고 찬찬히 살펴봅니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버리기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으나 결국엔 작품을 구겨 난롯불 속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작업대 위에 있던 원판도 손도끼로 쪼개어 난롯불 속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난롯불 속에서 내 판화가 타고 내 판화원판이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어제의 내가 재가 되고 있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가 다가옵니다.
 
'영구신년의 전령에게 명한다. <김해뉴스> 독자 여러분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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