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찌개·돼지볶음·수육’ 3가지 식단
투박·간단하지만 가격 싸고 맛도 제대로
아삭아삭한 콩나물 곁들이니 제 맛

김 교장 지난해 말 삼문고로 발령
“돼지볶음은 고향서 먹었던 그 때 그 맛”

재료인 고기 매일 도축장서 경매로 가져와
‘국산’ 표기 대신 고기 영수증 벽에 빼곡

삼문동 김해삼문고등학교 앞이다. 학생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학교 정문 앞에 대학 합격자 명단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오늘은 삼문고 김대수(59) 교장과 함께 점심을 하기로 돼 있다. 그가 향한 곳은 삼문동 개미공원 옆에 있는 '텃골 생돼지찌개'. 정확한 식당 이름은 '경남 거창 가조 텃골 생돼지찌개'다.
 
점심시간이 멀었는데도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하다. '맛집'에는 이렇듯 정해진 식사 시간이란 게 없다. 식단을 본다. 투박한 나무판에 '돼지찌개', '돼지볶음', '수육' 등이 적혀 있다. 이 세 가지가 주요 메뉴다. 손으로 직접 썼는지 필체가 둔하다.
 

▲ 김대수 교장이 비빔그릇에 밥과 콩나물을 넣고 있다.

김 교장은 돼지볶음 2인분을 시켰다. 가격은 저렴한 편이다. 이 곳을 찾은 이유를 물었더니 "맛있어서"란 답이 돌아왔다. 그는 그러더니 웃으면서 "동창이 하는 집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아까 봤던 상호 '경남 거창 가조 텃골'이 생각났다. 김 교장은 거창 가조면 텃골마을에서 태어났다. 화목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식당 주인인 배원득(59) 씨는 김 교장의 중학교 동창이다.
 
밑반찬이 나왔다. 김치, 고추, 마늘, 콩나물 무침, 미역냉국이었다. 이어 서 돼지볶음이 나왔다. 배 사장은 불 위에 냄비를 올렸다. 내용물은 파, 양파, 고기, 양념장으로 간단하다. 돼지볶음이 익기 시작하자 냄비 사이로 냄새가 삐져나온다. 밥도 큰 그릇에 담겨 나왔다. 그릇의 크기는 식사의 방향을 친절하게 잡아준다. '돼지볶음이랑 비벼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고기는 금방 익었다.
 
김 교장은 냄비 뚜껑을 열고 밥그릇에 돼지볶음과 콩나물을 넣는다. 취향에 따라 콩나물은 넣어도, 넣지 않아도 된다. 그는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이 있어야 제 맛"이라고 한다.
 
밥을 한 숟갈 가득 떠서 입 안에 넣는다. 매콤한 양념장과 부드럽고 두툼한 돼지고기가 잘 어울린다. 단맛이 나는가 싶었는데 끝 맛은 맵다. 시원한 미역냉국을 마신다. 얼얼해진 혀를 미역냉국이 깔끔하게 잡아준다.
 
▲ 매콤한 맛의 돼지볶음. 소박하게 차려진 밑반찬.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의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땀이 나는 사람, 콧물이 나는 사람, 심지어 눈물이 나는 사람도 있다. 김 교장은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다. 기자는 콧물이 나는 체질이다. 김 교장과 화장지 한 통을 거의 다 비웠다. 김 교장은 "매운 음식을 먹으면 땀이 뻘뻘 난다. 감기 기운이 오면 일부러 먹어서 효과를 보기도 한다. 돼지볶음은 맛도 있고 감기 기운도 물리친다. 여러모로 건강한 음식"이라고 한다.
 
김 교장은 어릴 때부터 공부, 특히 수학에 관심이 많았다. 성적이 좋아 동네 친구들을 모아 놓고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한다. 교사가 천성에 맞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교사의 길을 택한 건 가정 형편 탓도 있었다. "옛날에는 다들 형편이 넉넉지 못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지요. 사립대학은 등록금이 비싸 입학할 엄두를 못 내었어요. 국·공립대학, 그 중에서도 사범대는 가장 부담이 적은 편이었습니다."
 
김 교장은 교직을 택한 데 대해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김해에서는 대동중학교 교감으로 1년 반, 장학사로 3년 반을 근무했다. 이어 장유고등학교에서 교감으로 1년 반 근무했고, 지난해 말에는 삼문고 교장으로 발령받았다. 처음에는 삼문고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생활지도를 하기 힘든 학교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2004년 개교했을 때 창원에서 학교부적응 학생들이 대거 건너왔죠. 첫 4~5년은 삼문고의 암흑기였어요. 한 해에 80명 정도가 학교에서 이탈했을 정도였습니다."
 
2~3년 전부터 삼문고의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김 교장은 "2~3년 전부터 학업 중도 포기자가 줄어들었다. 지금은 연간 10명 이내다. 지금은 삼문고가 도약기에 접어들었다. 성적도 올해가 가장 높다"고 한다.
 
▲ 가게 벽면에 붙은 영수증.
배 사장이 다시 들어왔다. 그는 "텃골의 돼지찌개는 국물이 걸쭉하고, 돼지 앞다리살을 사용하는데 두텁게 썰기 때문에 씹는 맛이 좋다. 앞다리살은 다른 부위에 비해 부드럽다"고 설명했다. 돼지고기는 매일 도축장에서 작업한 고기를 경매를 통해 가져온다. 다른 식당에서는 원산지 표시로 '돼지고기-국산'이라고 써 놓지만 이 집은 다르다. 그날그날 구입한 고기의 영수증을 아예 가게 벽에 붙여놓았다. 그러고 보니 벽면이 영수증으로 가득 차 있다. "뭐 굳이 국산이라고 써 놓을 필요가 있나요? 이렇게 영수증을 붙여놓으면 다들 알 수도 있고 신뢰도 가고 좋지."
 
배 사장은 간단한 메뉴를 '맛집의 기본'라 여긴다. 그는 "식단이 다양한 식당은 안 간다. 요리사가 누구든 식단이 많고 복잡하면 정성이 떨어진다. 주요 식단이 '달랑 이거 하나다'라는 식당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한 번 먹어봐. 우리는 이 걸로 승부한다'라고…."
 
김 교장은 이 식당을 찾을 때마다 고향 생각이 난다고 한다. 그에게 이 곳은 '10월의 흑백사진' 같은 곳이다. 돼지볶음은 고향에서 먹었던 '그때 그 맛'이다. 그는 한 번도 고향 거창에서 교사로 근무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마산, 창원, 진해, 김해에서만 학생들을 가르쳤다. "정년이 되기 전에 고향의 학교에서 근무해 보는 게 꿈"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김 교장의 목표는 삼문고의 발전이다. 그의 교육 목표는 '바른 인성을 함양하는 것'이다. 인성이 반듯하면 학구열은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그는 믿는다. 그는 삼문고에서 'PESS'(Physical(신체)·Emotional(정서)·Spiritual(영성)·Study&Service(지식&봉사))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 텃골 생돼지찌개 전경.
학생들은 월요일마다 교사의 지도에 따라 주간 PESS 계획표를 작성한다. 금요일에 5~6명이 한 조를 이뤄 조별로 자료를 읽고 느낀 점을 발표한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도 생깁니다. 사고력 함양에도 도움이 되고, 어딜 가도 발표를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 3학년 학생이 '왜 우리는 1학년 때부터 안 시켜줬습니까'라고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1년 정도 했는데도 확실히 성과가 있었습니다."
 
김 교장은 "앞으로 삼문고는 더 발전하고 변화할 것"이라면서 마지막 한 숟갈을 들어 올렸다. 

▶텃골생돼지찌개/번화2로 28번길 4(삼문동 581-1), 055-313-1616, 찌개 1인분 5천500원, 볶음 1인분 6천500원, 수육 1만 원.

 김해뉴스 /어태희 기자 tt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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