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너는 골목을 닮아간다>
김하연 글·김초은 그림·이상·304쪽

서글프고 자유로운 ‘길의 방랑자’
10년간 찍은 사진 모아 책 발간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힘겨운 아침의 발걸음을 한 차례 내디딘다. 맨발바닥이 가뭄의 흙처럼 갈라져 아스팔트의 냉기를 깊숙이 빨아들인다.
 
푹신한 흙을 밟는 상상을 하는 길 위의 고양이들, 따스한 햇살에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잔디의 냄새를 맡으며 초록 잎에 배를 쓸리는 꿈을 꾸는 길고양이들이 있다.
 
길고양이들의 삶은 서글프면서도 자유롭다. 흔히 길 위의 방랑자라고도 불린다. 그들의 자유에 따르는 대가는 참혹할지 모르지만, 누구도 탓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원망을 돌리지 않은 채 살아간다. 누군가의 잣대로 보면 그들은 더럽고 혐오스러우며 귀찮은 존재다.
 
그들은 어두운 골목을 누비고 차 밑으로 숨어든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조각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여유롭다. 배고픔만 없다면 온종일 낮잠을 잘 수도 있고, 내딛는 걸음이 방향을 잃어도 상관없다.
 
돌아갈 집이 필요하지도 않고 항상 곁에 있어 줄 누군가가 필요치도 않을 것이다. 그저 조금만 포기하면 방랑의 삶이 낭만이 되는 것이다.
 
길고양이는 길 위에 피어나는 꽃송이와 같다. 골목길 구석 시멘트 벽 사이 혹은 쓰레기 더미 안 곳곳에서 피어나고 자라서 비가 오면 목을 축이고 볕 좋은 날 몸을 말린다. 그러다 누군가에게 밟혀 상처를 입으면 날카롭게 가시를 다듬고서 가시 속에 몸을 움츠려 숨는다.
 
최근 큰 쟁점이 되었던 '캣 맘 살인 사건'이 있었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 준다는 이유만으로 길고양이에 대한 증오를 사람에게 돌린 범죄였다.
 

결국, 한 초등학생의 실수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한동안 이 사건은 인터넷 공간 속에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고도 미움을 살 수 있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캣맘은 어떻게 보면 길고양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하연의 <어느새 너는 골목을 닮아간다>는 겉표지에 앉아 아련한 눈빛을 보내는 고양이의 모습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애달픈 고양이들의 삶을 10년 동안 기록해 왔다. 이른바 '캣 대디'다. 게임 월간지 기자 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신문 배달을 하면서 길고양이 사진을 찍어 왔다.
 
그러다 최광호 작가가 주최한 '1019 사진상'에 덜컥 당선됐고, 개인전을 열었다. 2008년 매그넘코리아 사진 공모전과 2009년 내셔널지오그래픽 국제사진 공모전 국내 예선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후 본격적으로 길고양이를 찍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그렇게 모은 사진으로 2007, 2009년 2회에 걸쳐 '고양이는 고양이다'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가졌다.
 
2015년 끝자락에는 그간의 행적들을 모아 책을 발간했다.
 
계절을 바꿔 가며 길의 모양에 따라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의 흔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스하다.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고양이의 삶 속에 인간의 세상을 그려 놓았다. 인간은 내일을 알지 못한 채 행복을 논하거나, 한 치 앞을 가늠하지 못하면서도 자연 앞에서 거만하다.
 
작가는 길고양이들의 두려움과 소외 그리고 배고픔을 때로는 연민으로, 때로는 보호자로 화면에 담으면서 인간상의 단면을 겹쳐 보여 주고 있다.
 
'잎보다 먼저 나왔구나 꽃보다 먼저 피었구나 어쩌면 니가 봄이구나/ 코끝에 봄이 대롱대롱 거리면 눈은 감겼어요/ 꽃이 떨어지고 나서야 꽃이 있음을 알았다/ 배고프면 여기서 먹으라고 엄마가 그랬는데 낯선 기척에도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슬며시 내민 고개를 가로등에게 들켜 버렸다/ 꽃 속에서도 낮은 숨 편히 내쉴 수 없구나'
 
작가가 길고양이의 사진 설명으로 얹어 놓은 짧은 글귀들이다. 작은 철학이 엿보인다. 자연의 빛과 모양새를 놓치지 않고 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잘 버무려 놓은 작가의 위트가 참신하다.
 
김해뉴스 /강보금 인턴기자 amon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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