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책읽는곰·48쪽
1만 2천원
분실물보관소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 시대의 아버지·청년·학생
그들에게 선물한 ‘공감과 배려’
올해 2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일주일에 두 번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고 있다. <이상한 분실물 보관소>를 읽어 주고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들로 글을 이어가 볼까 한다.
"얘들아, 이 책 읽어 줄까?"
"네~"
"이 책은 지금까지 읽어 준 것과 달라.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책이거든."
손에 들린 그림책을 보고 스물 일곱 꼬물이들이 하나 둘 이야기 자리로 모여 들었다.
"제목 같이 읽어 볼까. 표지 그림에 뭐가 있어?"
"문이 많아요. 민들레 홀씨. 파리요. 무당벌레 같은데…. 나비도 있어요. 사과도 있어요."
아이들은 그림을 자세히 살핀다. 한 장을 넘기자 아이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
"어, 문 손잡이다."
"왜 손잡이가 있지?"
"문 열고 들어가라는 거 아니에요?"
"그래 그럴 수 있겠다. 그럼 문 열고 들어가 보자."
한 장을 더 넘기니 주인공 인해가 놀이터 앞에 서 있다. 멀리 뒤편에는 오래된 정자와 묘하게 대비되는 아파트가 보인다. 그리고 정자를 둘러싼 신비로운 빛이 반짝거리며 눈길을 끈다. 김영진 작가의 또 다른 책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에서는 너무나 익숙했던 현실적인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분실물 보관소>에서는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 장을 더 넘겼다. 드디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루리아 분실물 보관소'라는 이름이 새겨진 정자 앞. 신비로움에 끌린 듯한 인해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분실물 보관소가 왜 저런 집으로 되어 있지'라는 의문으로 아이들과 다음 장을 넘겼다. 모양도, 색도 다양한 여러 개의 문으로 가득한 방이 나타났다. 그 앞에 양복을 입은 채 지쳐 보이는 판다곰 아저씨가 서 있다. 아이들은 판다곰 아저씨 얼굴 위로 흐르는 땀까지 찾아내는 매의 눈으로 책 속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인해는 뭘 잃어 버렸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판다곰 아저씨에게 "할머니가 이것을 먹으면 기운이 난 댔어요"라며 청포도 사탕을 건넨다. 아저씨가 사탕을 받아먹는 순간 마법이 일어난다. 문으로만 가득했던 방에 문 두 개만 남고 포도가 주렁주렁 달리게 된다. 아저씨는 그제야 포도를 좋아했던 자기 아이들 냄새와 밥 짓는 냄새에 이끌려 문을 열고 들어간다.
판다곰 아저씨가 밤늦도록 일만 하고 자기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조차 모르는 이 시대의 아버지라 느껴진다.
인해가 남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 넘어 꾸역꾸역 책을 먹고 있는 덩치가 산만한 언니가 있다. 인해는 맛도 없는 책을 먹고 있는 언니에게 동물젤리를 건넨다. 언니가 동물젤리를 맛있게 먹어 치우자 책 속에서 꽃과 나무가 자란다.
언니는 아름드리 나무 앞에서 문을 발견하고 자신이 잃어버린 날개 달린 신발을 찾아 기뻐한다. 한때 공부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책상 앞에 앉아 공부에 몰두하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드디어 인해는 분실물보관소의 머리 큰 할머니 소장을 만난다. 소장과 분실물 정리를 하던 중 인해는 엄마와 아빠의 잊어버렸던 추억을 보게 된다.
이 장면은 일회용 필름, 넥스트 테이프, 오랜 된 일기장 따위로 가득 차 있다. 부모가 된 어른이라면 이 장면에서 멈춰 잠시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도 좋으리라. 결국 할머니를 암시하는 소장의 안내로 그토록 찾던 말랑이를 만나게 된다. 맨 뒤 속표지는 인해가 말랑이를 안고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아이들은 마치 함께 꿈속을 다녀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기성세대가 어릴 때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는 가정이 많다. 인해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사탕은 어릴 적 할머니 주머니에서 나오는 박하사탕이나 쌈지 돈처럼 느껴진다.
물질이 풍요롭지 않은 시절에 할머니 주머니에서 나오는 사탕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마법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30~40대 어른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리라고 생각한다.
책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어린이들이 지닌 마음의 힘이다. 인해는 공감과 배려라는 작은 사탕으로 세상을 바꾸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작인 <나로와 펄럭이>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나로 역시 상상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어 간다.
시간이 된다면 이 시리즈도 함께 읽기를 권하고 싶다. 전작의 주인공 나로와 이 책의 주인공 인해를 합치면 '나로 인해'가 된다. 두 아이는 자기가 지닌 마음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어 간다는 점이 닮았다.
작가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자신이 지닌 마음의 힘을 찾아 그 힘으로 세상을 바꾸어 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을 것이다.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이란 책에 있는 말로 맺고 싶다. '무엇보다 그림책이 소중한 이유는 그 속에 아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까닭은 단순히 지적 능력이나 학습 능력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림책은 오로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이와 소통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오늘도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는다. 김해뉴스
백기열
김해 봉황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