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생각 하는 걸까, 타향살이의 슬픔에 겨운 걸까. 컨테이너 기숙사 창틀 속에 비춰진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 카링티안 씨와 친구의 모습이 처량하다. 사진=박정훈 객원기자

춥고 불결한 주거환경 "죽지 못해서 사는 것"
외국인 근로자 80% 같은 처지…화재위험 높아

창문을 연다. 춥다. 창문을 여나 닫으나, 밀려드는 칼바람을 막을 순 없다. 카링티안(27·가명·파키스탄) 씨는 그래서 겨울이 싫다. 겹겹이 쌓인 두꺼운 이불 사이로 다시 몸을 숨겼다. 이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 3.3㎡(1평) 남짓한 직사각형 컨테이너에도 어김없이 저녁은 찾아온다. 벌써 오후 8시. "밥 먹을 시간이네." 혼잣말을 한다. 이불 사이로 몸을 내밀자 하얀 입김이 새어나온다. "친구들이 곧 돌아올텐데 저만 어떻게 누워 있어요. 제가 저녁이라도 준비해야죠." 삐그덕거리는 문을 연다.
 
그는 얼마 전 작업을 하다 어깨를 다쳤다. 그러나 병원에 갈 돈이 없다. 대신 작업반장에게 휴일을 달라고 했다. 휴일 대신 조퇴를 얻었다. 고작 1시간. 대신, 욕을 먹었다. 그는 빵공장에서 일한다. 오전 8시부터 하루 12시간. 말 그대로 '죽도록' 일한다. 휴식은 점심시간이 전부다. 그래서 공장에서 카링티안 씨처럼 아픈 사람은 흔하다. 그는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말한다. 아픈 몸을 끌고 공장에 나가 일하다보면 정신까지 병이 드는 기분이 든다는 사실을.
 
음식 찌꺼기가 눌러 붙은 냄비를 하나 꺼내 들었다. 바닥에 도마도 내려놓았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오래된 냉장고. 손질하다 만 양파 1개, 대파 2뿌리, 꽁꽁 언 돼지고기가 전부다. 5분 쯤 지났을까. 손이 차다 못해 벌겋게 부어오른다. 야채를 씻는 건 이미 포기했다. "밥 먹는 시간조차 괴로워요." 하지만 곧 체념한 듯 냄비에 물을 채웠다. 가스레인지를 켜자 짧은 순간 그나마 훈기가 느껴진다.
 
카링티안 씨는 "김해에서 일하는 파키스탄 친구들이 300여 명 되는데 80%는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주머니 속에 든 것을 만지작거렸다. 휴대전화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생각할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들이 진짜 보고 싶어요."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툭 치면, 바로 흘러내릴 것같은 눈물. 그리움이 보인다. 한국에 온 지 벌써 4년. 아내와 10살, 8살짜리 딸아이는 파키스탄에서 산다.
 
"보고싶다는 말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는 가족사진이 저장된 휴대전화를, 팔을 뻗어 멀리 들어 올렸다. 눈물이 시야를 가려 사진이 희뿌옇게 보여서다. 큰 눈을 껌벅이자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창문을 연다. "가족이 보고 싶을 때나, 아플 때나, 화가 날 때나, 가슴이 답답할 때나 창문을 열어 깊게 숨을 들이마셔요. 그러면 마음이 좀 후련해져요." 어느새 냄비에서 물이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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