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기>
리디 살베르 지음·백선희 옮김/
뮤진트리·293쪽

역사의 소용돌이 속 개인의 성장
사상·종교의 가식적 측면 그려
프랑스 최고 권위 콩쿠르 상 수상

1936년 스페인. 파시즘에 반대하는 인민전선 내각이 들어서자 프랑코를 필두로 한 파시스트 세력과 우익단체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1939년까지 3년 동안 35만 명이 죽고 50만 명이 망명한 결과 프랑코의 승리로 끝난 스페인 내전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두 사람이 있다. 열다섯 나이에 하녀가 될 뻔한 몬세. 겸손해 보인다는 주인의 한 마디에 격분해 추후에 사과를 받아내고야 마는 당차고 아름다운 소녀다. 그녀에게는 빨갱이이자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인 오빠 호세가 있고 순종을 미덕으로 여기며 평생 일만 하는 부모님이 계신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베르나노스. 그는 왕정주의자이고 가톨릭 신자이며 프랑스 전통의 계승자를 자처한다. 정신적으로는 돈을 가진 부르주아 계급을 증오하는 지식인이다.
 
두 사람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현장을 목도한다. 그 현장을 사랑과 기쁨과 자유와 환희의 순간으로 증언하는 몬세. 그녀는 그 현장이 모든 기억을 잃더라도 가장 말짱하게 간직된,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베르나노스에게는 무자비한 학살과 공포의 현장이었다. 그는 <달빛 아래의 대 공동묘지>라는 책을 써서 그 잔학하고 추악한 행위들을 고발한 뒤 영영 유럽에 등을 돌린다.
 
2014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콩쿠르 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아흔의 어머니가 작가 리디 살베르에게 들려주는 실제 경험담을 한 축으로 하고 있다. 열다섯의 몬세가 지금은 아흔이 된 작가의 어머니이다. 그리고 화자가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달빛 아래의 대 공동묘지>에서 접하는 증언이 또 하나의 축을 이룬다. 몬세의 이야기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단단해지고 성장해 가는지를 보여준다면 베르나노스의 책 구절은 이념과 사상과 종교가 전쟁 속에서 얼마나 가식적이고 타락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잔인한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어찌 보면 픽션적인 요소보다 논픽션적인 요소가 더 앞설 수도 있지만 작가는 두 사람의 시선을 절묘하게 교차시키면서 깊이 있고 울림 있는 서사를 구성해낸다.
 
처음 만난 프랑스 남자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던 그해 여름, 몬세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 빛나는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한 채 사랑하지 않는 남자 디에고와 결혼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불행해지지 않는 법을 터득하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 옆에는 그녀를 오랫동안 사랑했던 공산주의자 디에고가 있고 빨갱이이자 아나키스트인 오빠 호세가 있다.
 
열정적인 호세를 질투했고 부러워했고 그래서 미워했지만 그의 죽음에 마음 아파하며 스스로 피폐해진 디에고. 어느 누구보다 시대에 당당하게 맞서며 혁명을 낭만적이라고 말하지만 곧 사탕발림과 같은 허상임을 깨닫고 좌절하는 호세. 결국 두 사람은 공산주의자와 아나키스트로 대립하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만 이 소설이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자꾸 잊히는 것들에 대한 오마주처럼 느껴진다. 
 
육체의 노쇠 속에 기억을 잃어가는 현재의 몬세처럼 작가 리디 살베르는 어쩌면 망각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역사 속에 깊숙이 관여하면서도 모든 역사를 잊어버리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울지 않고 이를 악물며 그 역사를 증언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고 몬세는 베르나노스는 말하고 있다.
 
E.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절대 우연일 수 없고 반드시 필연적이며 수많은 인과적 사실들이 씨실과 날실로 촘촘히 짜여 있다고 한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많은 일들이 있다. 지금의 기록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저항은 말하자면 참여였다. 그의 의지와 그의 결정을 뛰어넘는 참여, 억누를 수 없는 참여, 사랑만큼이나 위험하고 많은 조건이 따르는 참여, 모든 피와 모든 것이 연루되는 참여.



김해뉴스


서명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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