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눈으로 시간의 지나감을 볼 수는 없지만, 마음의 눈으로는 볼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가 그러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열심히 만납니다. 상대의 실체를 보지 못한 채 자신의 생각 속에서만 상대를 봅니다. 그러면서 속상해 하거나 아파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 마음의 눈으로 다시 상대를 보면 상대의 본질을 이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 본질 속에는 누구나 다 독특한 관계방식이 있고, 사람을 사랑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습니다.
 

연구소에서 상담한 K의 이야기는 이러한 관계방식을 잘 보여 줍니다. K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K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자주 때렸고 결국 어머니는 집을 나갔습니다. 그 뒤 그는 친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친할머니는 K를 가엾게 여기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K는 아버지가 집에 오는 날을 무서워했습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여자가 따로 있었다. K의 어머니가 K를 임신해 어쩔 수 없이 결혼했다"며 늘 술을 마시고 푸념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K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가출하였습니다.
 
가출해 살던 K는 입대 영장을 받고 인사를 하러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아버지는 "집 나간 녀석은 자식도 아니다"라며 K를 문전 박대했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따뜻하게 안아주면 좋으련만…. 그는 다시 마음에 상처를 입고 홀로 입대했습니다. 훈련소에서는 부모에 대한 감사와 효도를 강조했지만 K에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느껴졌습니다.
 
5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수료식을 하던 날, 동기들은 부모들을 기다리며 들떠 있었습니다. K는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한 사람이 그의 눈에 띄었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울컥했습니다. 수료식이 끝나자마자 달려가 아버지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훈련이 힘들어서, 혹은 떨어져서 지낸 서러움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원망하던 아들을 보기 위해 연차휴가를 내고 부산에서 인천까지 왔을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사내 자식이 왜 질질 짜고 그러냐. 보기 싫게."
 
끝까지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 주지 않은 아버지. K는 그제서야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그리워했듯 아버지도 나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그는 그때부터 자신이 먼저 아버지를 꼭 안아 드리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제대 후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K는 대학 생활을 하면서 자신도 여자친구에게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속상해 하였습니다. 그는 사랑 표현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주고받는 방법을 부모가 확실히 가르쳐 줘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는 '나는 사랑스럽고 중요하며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생깁니다.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른 사람도 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와의 관계가 힘들었던 사람들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그들의 관계방식, 사랑방식을 보고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사랑 충동>의 저자 마리 리즈 라봉테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생명에 탄생의 순간이 존재하듯이 사랑에도 탄생의 순간이 존재한다. 여러분이 사랑받았던 방식은 여러분이 사랑하게 될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사랑은 생이 시작될 때부터 우리를 둘러싸서 생을 끝마칠 때까지 우리와 동행하는 놀라운 떨림이다."
 
이제 부모, 형제, 친구, 동료, 이웃 등 누구를 지나치게 탓하지 말고 여러분이 그러하듯이 그 사람들 나름대로의 사랑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합시다. 내가 누구를 탓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탓하겠습니까? 내가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데 누가 나를 미워하겠습니까?


김해뉴스
박미현
한국통합TA연구소 관계심리클리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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