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반의 한방에 날려버린 ‘숨은 맛집’
검은색 죽 가운데 청둥오리가 통째로
각종 한약재 들어가 고기엔 잡내 싹
함께 나온 죽, 덤 아닌 또 하나의 요리
곡물의 다양한 식감이 입 안에 가득

김 회장, 2009년부터 자전거에 푹
신어MTB클럽서 매주 산악 라이딩

"한 번 오면 계속 오게 되는 김해의 '숨은 맛집'입니다."
 
김해시자전거연합회는 김해지역의 15개 자전거클럽, 500여 명의 동호인이 가입돼 있는 단체다. 지난해 12월에 새로 취임한 김해시자전거연합회 김진긍(52) 회장과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그가 추천한 곳은 삼계동의 백숙집 '송림산장'이었다. 진례면 평지마을은 워낙 '백숙촌'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삼계동에 대단한 백숙집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 터라서  반신반의하며 송림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송림산장은 정말로 '숨은 맛집'이었다.
 

▲ 김해시자전거연합회 김진긍 회장이 청둥오리흑숙에서 고기를 들어 올리고 있다.

삼계사거리에서 한림면으로 난 간선도로의 왼쪽 편 산 쪽에 자리 잡은 송림산장은 자그마하고 아늑한 집이었다. 조금만 내려가면 차도가 있었지만 가게 내부로 들어가니 산 중턱의 어느 집에 온 것처럼 창밖으로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김 회장은 "찾아오느라 고생했다"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가게가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나도 처음 소개를 받았을 때는 잘 찾질 못했다. 지난해에 한 지인이 알려줘서 오게 됐는데 맛에 반해 그 후로는 가족들과 자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자 송림산장의 이경화(52) 사장이 따뜻한 당귀차를 한 잔씩 내어 왔다. 추위 탓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몸이 한결 느긋하고 편안해졌다. 몸이 녹으면서 자연스레 메뉴판에 눈이 갔다. 송림산장의 주 메뉴는 유황청둥오리흑숙었다. 백숙이란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흑숙이란 이름은 생소했다. 김 회장은 "여기서는 백숙이 아니고 흑숙이다. 검은 쌀과 검은깨가 들어가 있어서 색깔이 검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미리 주문해 놓은 흑숙을 기다리면서 자전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 회장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그는 "운동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산악자전거는 남자답고 멋이 있어 보여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속한 '신어MTB클럽'의 동호인들은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모여서 함께 자전거를 탄다. 수요일에는 일과를 마친 후에 만나 1시간~1시간 반 동안 야간 라이딩을 하고 일요일에는 오전 전체나 하루 종일 라이딩을 즐긴다.
 
김 회장은 자전거 전도사나 다름없었다. 그는 "실내 운동을 오래 하면 지겨워질 수 있는데, 자전거는 새로운 공간에서 풍경을 즐기면서 타기 때문에 전혀 지겹지 않다. 페달을 밟기 때문에 다른 운동에 비해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전거를 한 번 타보라는 권유도 잊지 않았다.
 
한참 '자전거 삼매경(?)' 빠져 있는데, 드디어 흑숙이 등장했다. 김 회장이 말한 그대로 검은색이었다. 검은색의 죽 한 가운데에 청둥오리 한 마리가 통째로 놓여 있었다. 보통의 오리는 닭보다 몸집이 큰 편인데, 청둥오리는 닭보다 작았다. 이경화 사장은 "청둥오리는 닭이나 일반 오리에 비해 맛이 더 좋다. 다만 가격이 비싸고 크기도 작아 잘 쓰지 않는다. 그래도 맛을 보면 그 차이를 알게 될 것"이라며 웃었다.
 
▲ 14가지 곡물과 어우러져 검은 빛을 내는 청둥오리흑숙.

청둥유황오리는 몸에 매우 좋다고 알려져 있다. 청둥유황오리는 콜레스테롤을 억제하고 혈액순환과 몸속 노폐물 제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체내에 쌓인 독을 풀어주거나 중화시키면서 원기를 북돋워주기 때문에 '해독보원'의 으뜸으로 꼽힌다.
 
김 회장은 청둥오리의 다리 한쪽과 죽을 떠서 건넸다. 검은색 죽에 먼저 손이 갔다. 일반적인 백숙의 죽을 기대하면서 먹었는데 한 입 먹자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백숙에 이어 덤으로 나오는 죽이 아니라 별개의 요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소하고 담백했다. 김 회장은 "다른 집에서는 고기를 먹고 난 다음에 죽을 주는데 여기는 고기와 죽을 같이 제공한다. 고기에 잡곡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별미다"라고 말했다.
 
이경화 사장은 죽 안에 흑미, 찹쌀, 율무, 수수, 구기자, 해바라기 씨, 호박씨 등 14가지 곡물을 넣는다고 말했다. 당귀, 황기, 엄나무 등 각종 한약재 가루를 함께 넣기 때문에 오리의 잡내가 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맛있다며 죽부터 찾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죽만으로  따로 메뉴를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죽은 한 입 한 입 떠먹을 때마다 새로운 곡물을 찾는 재미를 선사했다. 여러 가지 모양과 식감의 곡물들이 부드럽게 입 안에서 헤엄쳤다.
 
곡물의 고소한 맛은 청둥오리고기에도 그대로 배어 있었다. 통상 백숙을 먹을 때면 간을 맞추기 위해 고기를 소금에 찍어 먹는데 흑숙은 따로 소금이 필요하지 않았다. 짭짤하지는 않았지만 고소한 맛 때문에 일반 백숙에서 느껴지는 밋밋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고기는 가슴살, 다리, 날개 어느 부위도 퍽퍽한 게 없이 쫄깃해서 식감이 매우 좋았다. 반찬으로 함께 나온 갓, 취나물 장아찌는 고기의 사소한 느끼함마저도 잡아줬다.
 
▲ 흑숙에 들어가는 곡물을 씻는 송림산장의 이경화 사장.
맛있는 한 끼를 끝낸 뒤 김 회장은 "이렇게 맛이 있는데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경화 사장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손님이 적었는데 오는 3월에 김해시장애인복지관이 인근으로 이사를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김 회장은 '숨은 맛집'이 이제 소문이 나 손님이 많아질 것 같다고 덕담을 건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김 회장에게 김해시자전거연합회 회장으로서 의 포부를 물었다. 그는 "전국산악자전거대회가 2007년에 김해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국제규격을 갖춘 신어산 MTB코스, 해반천길 등을 바탕으로 김해의 자전거 인구가 증가해 왔다. 그러나 자전거 인구에 비해 자전거 관련 인프라는 부족한 실정이다. 자전거도로, 교육장, 대회 유치 등 숙원사업을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언 몸으로 찾았던 송림산장을 나섰을 때, 길은 들어올 때와 달랐다. 훈훈한 인사와 건강한 대화, 맛있는 음식 덕에 길은 넉넉하고 편안해져 있었다.  

≫송림산장 / 김해대로 1706-46(삼계동 1191-1). 055-312-9252(예약 필수). 유황청둥오리흑숙4만5천 원, 옻오리(닭)탕 4만5천 원, 유황청둥오리불고기(1마리) 4만 원, 영양밥 3천 원.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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